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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화재 참사 23년, '소방영웅길'에서 만난 실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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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현장, 이제는 시민 의식을 깨우는 명예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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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용소방대원과 대화

의용소방대원과 대화 중에 '소방영웅길'에 대한 안내판을 보며 훈련의 의미를 새기는 필자

ⓒ 윤태정

지난 4일 수요일, 그날은 평범한 오후였지만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골목은 평소와 달랐다. 갑작스러운 '차량 통제'라는 팻말이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뒤이어 큰길에서 갈라진 좁은 길목으로 소방대원과 등에 '의용소방대'라 쓰인 주황색 조끼를 입은 분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그분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도로변에 세워진 소방차들을 보자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불이 났나요?"

다급하게 묻는 내게 의용소방대원 중 한 분이 친절하게 답했다.

"불이 난 게 아니라 훈련 중이에요."

긴급 출동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해 강제 처분하는 '실전 훈련'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만히 보니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 왜 하필 이 좁은 골목에서 훈련을 하는 걸까? 궁금해서 물었다.

"이곳이 바로 '소방영웅길'이거든요."

의용소방대원의 답변에 내가 걷는 이 길이 아주 특별한 장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모르고 지나쳤다. 이곳이 순직 소방관들을 기리기 위해 '소방영웅길' 명예도로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아파트 앞 큰길에서 좁은 길로 내려오면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가의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운동장에 '긴급 출동 방해 차량 강제 처분 실전 훈련'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서울고은초등학교를 몇 번이나 다녀갈 일이 있었는데도 '소방영웅길'을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서 언덕길 초입에 세워진 안내판에 적힌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 대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훈련 본부

대학교 안에 훈련 본부를 설치해 놓고 훈련에 힘쓰는 소방대원의 모습

ⓒ 윤태정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은 2001년 3월 4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제동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안에 아들이 있다"는 다급한 주민의 외침 소리에 망설임 없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2층 창문으로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순간, 건물이 무너지면서 화재의 잔해 속으로 아홉 분의 소방관이 매몰되었다. 그중 여섯 분은 끝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대한민국 소방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이름, '홍제동 화재 참사'로 기록되었다.

순직한 여섯 분의 희생으로 우리나라 소방대원들의 열악한 근무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이 입고 있던 옷이 방수복에서 방화복으로 바뀌고, 장비가 대폭 보강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그 위험한 터전에 제대로 된 장비 없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처우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명예 길이 조성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일이 지난 2024년 3월이었다. 3월 4일,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이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도 왠지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소방대원들은 여기저기 좁은 골목 안에 주차한 차들을 살펴보고, 방송을 통해서도 '불법 주차'에 대한 홍보를 시작했다. 의용소방대원은 행인의 통행에 불편이 없는지 친절히 훈련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잠시 멈춰 서서 훈련을 지켜보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으로 운동장의 몇 배나 되는 산이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겨울철 부주의한 행동이나 양심을 저버린 방화로 지난 겨울에도 얼마나 많은 불로 마음을 졸였던가.

더군다나 불이 난 주택가의 좁은 골목에 주차한 차들이 소방차 진입을 막아 시간을 지체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많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발을 구르는 안타까운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던진 소방대원들의 이야기는 늘 안타까움을 더해왔다.

화재는 좁은 길이든 넓은 길이든 구별하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온다. 좁은 골목길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늦어져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도 무감각해지는 나부터 반성한다. 소방 도로를 막고 좁은 길에 불법 주차하는 것은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직접적인 행위이다.

영웅들이 지키려 했던 이 길 위에서,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다짐이 나왔다.

"나부터 좁은 골목에는 잠시라도 주차하지 않으리라."

무심히 지나쳤던 '소방영웅길'과 헌신

▲ 의용소방대원들

의용소방대원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훈련이 잘 진행되고 있음

ⓒ 윤태정

어린 시절 학교에서 열리던 '불조심 강조 주간' 행사도 떠올랐다. 표어를 짓고 포스터를 그리며 새겼던 경각심이 지금 우리에게는 희미해진 것은 아닐까. 요즘 학교에서는 화재 대피 훈련은 있어도 학생들의 '불'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행사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실전 훈련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감각해진 나의 의식을 깨우는 따끔한 일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번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의용소방대원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용소방대는 소방관은 아니지만, 일반 주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화재나 구조, 구급, 예방 등 소방 업무를 보조하는 자원봉사의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데 다시 한번 놀랐다.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회를 위한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소방을 돕는 분들이 자랑스럽고도 든든해 보였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소방청과 함께 개발한 '원격 무인 소방 로봇' 소식이 떠올랐다. 소방 로봇은 섭씨 500~800도의 고온 속에서도 사람을 대신하여 화점(火點)을 찾아 들어가고, 시야 확보가 어려운 연기 속에서도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현재 4대를 소방청에 기증했는데, 앞으로 100대를 목표로 기증할 예정이라니 그 시기가 빨리 앞당겨졌으면 한다. 로봇이 상용화되고 AI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요즘, 소방관의 파트너를 개발한 연구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든다. '25년 전의 홍제동에 이 로봇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상상도 해 봤다.

그동안 '소방영웅길'을 무심히 지나쳐 다녔던 나의 무관심에 깊이 반성한다. 기술은 진보해도 그 기술을 움직이는 바탕은 결국 '생명을 구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중요하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소방대원들의 헌신에 고개 숙인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을 소방대원들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훈련에 열중하는 대원들을 보며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의용소방대'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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