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가공인물 같은 실존 인물 영월군수, 그리고 왕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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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 쇼박스
3.1절 연휴 마지막 날 오전, 요즘 장안의 화제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했다. 조조할인이 되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영화표를 끊으며 은근히 내가 혹시 천만번째 관객일 수도 있겠다는, 자못 엉뚱하고도 황당한 기대를 품기도 했다.
지금껏 장르와 상관없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빠짐없이 관람했다. 역사 교사로서 의무인 양 여겼고, 사실과 허구를 가려내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이 작품 역시 영화의 첫 시작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내용'이라는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비극적 최후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지금껏 상업 영화뿐만 아니라 TV 대하드라마와 소설 작품의 단골 소재였다. 내용 전개상 선악의 대비도 명확할뿐더러 악역을 맡게 될 역사의 실존 인물도 사실상 정해져 있다. 한명회 아니면 신숙주, 둘 중 하나다.
묘미는 영화 속 가공인물의 역할이다. 기실 이들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관객들에게 마치 실존 인물처럼 여겨지도록 해야 하고, 최소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역할이다. 자고로 주연 같은 조연이 있어야 잘 만든 영화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단역을 제외하곤 가공인물이 거의 없다. 엄흥도(유해진 분)의 아들(김민 분)과 그가 촌장으로 있는 마을 주민들 외엔 드물다. 눈에 띄는 이가 있다면, 유배지까지 따라와 노산군 이홍위(박지훈 분)를 모시다 함께 생을 마감하는 궁녀 매화(전미도 분) 정도다.
단종과 엄흥도, 한명회(유지태 분)의 비중이 너무 커서일까. 다른 영화에서라면 너끈히 주연으로 삼았을 금성대군(이준혁 분)도 카메오로 몇 장면에서만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어 가공인물처럼 느껴진다. 사실로서의 역사에 최대한 충실하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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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엄흥도, 한명회(유지태 분)의 비중이 너무 커서일까. 다른 영화에서라면 너끈히 주연으로 삼았을 금성대군(이준혁 분)도 카메오로 몇 장면에서만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어 가공인물처럼 느껴진다.
ⓒ 쇼박스
영화 속 왕방연과 실제의 왕방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영화 초반 한명회가 동강 건너편 절벽 위에서 청령포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불현듯 떠올랐던 시조다. 조선 초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표현한 연군가(戀君歌)로, 학창 시절 매번 시험에 출제되던 작품이다. 단종의 사사를 집행한 금부도사 왕방연이 쓴 시조로 알려져 있다.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단종과 엄흥도, 한명회 외에 두 사람의 실존 인물이 조연으로 등장하리라 봤다. 위 시조를 남긴 왕방연, 그리고 관풍헌에서 단종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았을 당시 영월군수. 주제를 더욱 부각할 수 있는 인물들이어서다.
왕명을 집행해야 하는 관리로서의 왕방연의 도덕적 고뇌는 맥락상 엄흥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데다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한다. 영화 말미에 왕방연과 엄흥도의 '케미'를 기대했는데, 헛물만 켠 셈이 됐다. 영화 속에선 자결했다는 실록의 기록을 감독의 상상력으로 윤색했다.
왕방연은 단역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딱 한 번 등장한다. 그마저 사약을 앞에 두고 어명을 받으라는 대사가 전부다. 그의 시조 속에 절절히 담긴 단종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 일부 기록에서 그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땅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전한다.
되레 역사 속 왕방연을 영화에선 엄흥도가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허구일지언정 단종의 마지막 명을 받아 엄흥도가 이를 행하는
장면은 영화의 압권으로, 왕방연의 시조를 음미할 때보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 다수가 울컥하며 눈물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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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쇼박스
영월군수에 대한 역사기록
영월군수(박지환 분)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흡사 주연 같은 카메오다. 단종, 엄흥도와 한명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순간순간 누그러뜨리는 영화 속 감초 같은 존재다. 그로 인해 급작스러운 장면의 전환과 이야기 전개의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 덕분이다.
그런데,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를 희화화한 건 개인적으로 옥에 티라고 본다. 백성 위에 군림하고 권력에 아부하며, 관할지 내에 선왕이 유배를 온 와중에도 정사를 게을리하고 주색을 탐하는 탐관오리로 그려진다. 당시 영월군수의 행적에 관한 역사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단종의 죽음을 한양에 보고한 인물이었다는 점과 그 후 영월군수에 부임해 온 관리마다 비명횡사하는 등의 해괴망측한 일들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사와 야사 기록뿐만 아니라 단종의 무덤인 장릉 입구에 세워진 '낙촌 비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낙촌 박충원은 단종이 사사된 지 80여 년 뒤에 영월군수로 부임했다. 그가 오기 전까지 영월은 군수들이 잇따라 변을 당하자, 모두가 부임을 꺼렸다고 전한다. 반복되는 변고를 단종의 원한으로 여긴 그는 방치돼 온 단종의 묘소를 정비하고 제사를 지내며 그의 원혼을 달랬다.
이후 군수를 향한 저주는 사라졌고, 후임자들이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게 바로 '낙촌 비각'이다. 이후 단종에 대한 배향은 이어졌고, 그가 사사된 지 140여 년이 지난 숙종 때 이르러서야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복권됐다. 시호와 동시에 장릉이라는 묘호도 받았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엄흥도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 충신으로 천거한 것도 역대 영월군수의 공이 컸다. 엄흥도가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절공의 시호를 받은 건 단종이 복권되고도 거의 한 세기가 더 지난 영조 때였다. 역사적으로 단종과 영월군수는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역사와 풍부한 설화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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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 쇼박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단종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전한다.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숙부 금성대군이 자신을 복위시키려고 도모했다가 실패한 뒤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절망해 자결했다는 거다. 백성들의 도덕적 비난을 회피하려는 세조의 의도가 엿보인다.
역사란 본디 승자의 기록일진대 단종의 자살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다른 기록에서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사를 집행했다는 내용이 다수이며, 지금 역사학계에서도 이를 정설로 간주하고 있다. 이 영화의 직접적인 제작 동기이자 가장 극적인 장면도 단종의 죽음일 터다.
당시 영월군수는 단종의 죽음을 보고했고, 달랑 한 줄짜리 실록의 기록으로 남았다. 이후 그의 삶은 단종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테다.
선왕의 사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눈앞에서 직접 겪었는데도, 그의 행적은커녕 이름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일설에는 단종이 죽은 뒤 그를 따라 자결했다고도 하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단종의 원혼에 의해 급사했다는 정반대의 이야기도 있다.
단역으로 존재감이 없는 왕방연, 탐관오리로 희화화한 영월군수로 인해, 실존 인물 중엔 단종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이는 엄흥도뿐이다. 되레 영화 속 가공인물인 마을 주민들과 궁녀 매화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래선지 영화가 한명회와 엄흥도의 대립 구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월군수를 향한 저주만 괴담처럼 전하는 상황에서, 가공인물 대신 역사에서 지워진 영월군수가 엄흥도 편에 서서 이야기의 한 축을 끌고 갔다면 한층 더 사실에 가까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과도한 영화적 상상력이 불편한 한낱 역사 교사의 푸념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