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가르치러 갔다가 배우고 돌아온 인문학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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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에 담긴 커피
ⓒ 연합뉴스
교육학자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정해진 답,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답, 표준화된 답을 눈치 빠르게 잘 맞추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점이다. 좋은 답만큼 좋은 질문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챗GPT는 질문을 잘하면 답도 잘하고, 질문이 엉성하면 답도 엉성해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물론 돈을 많이 내면 답도 잘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병폐를 쏙 빼닮은 모습을 지니긴 했다.
커피 역사 분야의 첫 책을 출판한 이후 커피 역사 강연 혹은 강의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강의는 대학, 평생교육관, 시민대학 등에서 수강생을 사전에 모집해 여러 주에 걸쳐 진행하는 것이라면, 강연은 박물관, 서점, 카페, 독서 모임, 백화점, 기업 등에서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진행하는 저자 초청 행사나 특별 이벤트를 말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강연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미국 뉴욕에서 1995년 교육학자 얼 쇼리스(Earl Shorris)가 시작한 '클레멘트 코스'의 이념을 이어받은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였다. 클레멘트 코스는 노숙인과 마약중독자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통해 자존감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반응을 얻었다. 같은 취지로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에 문을 열었다.
노숙인들을 만나는 강연을 앞두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주최 측의 권고로 서울역에서 내려 강연장이 있는 숙대입구역까지 걸었다. 불과 1킬로미터 남짓 짧은 거리였지만 저녁 무렵의 이곳 갈월동의 풍경은 우리의 현대사 70~80년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뒤돌아보면 서울역 맞은편의 고층 빌딩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연탄구이집, 세탁소, 인력센터, 여인숙, 장애인보호센터 등이 늘어서 있다.
왼쪽으로는 듬성듬성 서 있는 전봇대에 의지해 잠들어있는 사람,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는 사람들, 주변 식당에서 무언가를 받아 들고나오는 사람, 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 나는 이곳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걷고 있었다. 큰길 맞은 편에는 프랜차이즈 카페, 자동차 판매점, 은행, 치킨집, 병원 등 일상적인 도시 모습과 그곳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모두 무심해 보였다.
지하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미리 도착한 분들과 같이 도시락을 받아 앉았다. 대부분 등산용 배낭이나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남성분들이 많았지만, 여성분들도 더러 보였다. 도시락에는 밥과 생선구이, 그리고 나물 두 종류와 국이 들어있어서 먹을 만했다. 내가 오랫동안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영위원장을 경험하며 맛본 분당 지역 학교 급식보다 못하지 않았다.
물론 도시락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함께 식사하는 노숙인들이었다. 이분들은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을까, 무슨 말을 시켜야 할까, 이분들에게 나의 말은 위로가 될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음식이 맛있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앞에 있던 분이 가끔은 치킨도 나오고 불고기도 나온다고 하며 웃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앞에 있던 분이 일어서며 커피 마시겠냐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빈 도시락과 자신의 빈 도시락을 가져다 쓰레기통에 넣더니 한쪽에 마련된 자판기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아다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커피가 앞에 있으니 말할 거리가 생겼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지, 커피 마시면 잠은 잘 오는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질문이 이어지고 대화도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피였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둘러보니 참석자들이 꽤 많았다. 쉰 명 정도는 돼 보였다. 나의 편견이 작동했다. 하루하루 먹고 자는 게 힘든 노숙인들이 이렇게 인문학 강의에 관심이 있다고? 커피 역사 강의라는 것은 알고 왔을까? 공짜로 주는 밥 때문에 왔겠지? 내 강의를 알아들을까? 혹시 재미없다고 졸지는 않을까? 끝까지 듣지 않고 나가는 분들이 많겠지? 강연을 마치면 질문은 할까? 이런 걱정에 가까운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편견이 무너졌다
강연을 시작했다. 주제는 '링컨과 커피'였다. 링컨의 첫사랑, 링컨의 양다리 작전, 링컨의 결혼, 링컨 아내 매리 토드의 커피에서 시작된 링컨의 정치 인생, 그리고 링컨의 커피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으로 이어졌다. 간간이 미국의 역사 이야기도 섞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중간에 들어오는 분들은 있었지만 나가는 분이나 조는 분, 강의에 방해가 될만한 행동을 하는 분은 한 명도 없었다. 식사 직후에 하는 강연을 졸지 않고 듣기는 어려운 일인데도 그랬다. 나의 편견은 하나하나 무너졌고, 마음속에서 생기던 질문들에 대해서는 이분들의 수강 태도가 답을 하고 있었다.
90분 정도의 강의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질문이 없으면 강의를 더 해서 예정된 120분은 채워야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드는 분들이 이어졌다. 그중에 첫 번째로 질문을 한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수강생은 이날 밤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질문은 간단했지만 잊을 수 없다. "저는 하루에 믹스커피를 쉰 잔쯤 마시는데 괜찮을까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다섯 잔도 아니고 어떻게 쉰 잔씩 마셔요?" 그분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네, 저와 비슷한 사람들 좀 있는데요. 배가 고프면 식당 입구에 있는 공짜 자판기에서 커피로 허기를 달랠 때가 있죠.
한 군데서 한 번에 쉰 잔은 아니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손님 없을 때 열 잔도 마시고, 열다섯 잔도 마시고 그럽니다. 하루에 서너 곳에서 그렇게 마시면 얼추 쉰 잔이 되거든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찌 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그러시군요. 근데, 카페인 아시죠? 커피에 들어 있는 물질인데 믹스커피 네다섯 잔이며 하루 권장량을 넘깁니다"라고 하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한 마디 덧붙였다. "카페인이 몸속에서 반으로 줄어드는 데 보통 다섯 시간 정도 걸리니까, 너덧 잔 마시고 나서 적어도 다섯 시간쯤 후에 두세 잔 마시는 정도로 해보세요." 질문도, 대답도 난감한 대화이기는 했다.
한 여성분은 이런 질문을 했다. "뜨거운 믹스커피에 밥을 말아 먹으니까 먹을 만하던데. 괜찮은가요?" 역시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난감한 질문이었다. "커피 마시는 데 특별한 방법이 정해진 건 없습니다. 입에 맞는 대로 마시는 거죠. 아까 저분처럼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것만 안 하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니 나도 모르게 뜻 모를 한숨이 나왔다.
질문이 이어졌다. "저는 커피를 한 모금만 마셔도 하루 종일 잠을 못 자는 데 몸이 안 좋다는 징조인가요?" "저는 밤에 자다 깨서 잠이 안 오면 커피를 마시거든요. 그러면 오히려 잠이 잘 오던데 왜 그래요?" "커피값이 왜 이렇게 비쌉니까? 삼천 원짜리 김밥 한 줄 먹는 게 전쟁인데, 커피 한 잔에 오천 원인 게 말이 됩니까?"
오히려 나에게 깨달음을 준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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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이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예정된 아홉 시를 조금 넘겨서야 강의를 마쳤다. 그러자 강의실 입구 쪽에 긴 줄이 생겼다. 그날 행사에서 사용하고 남은 도시락을 나누는 중이었고, 그것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것이었다. 꽤 차분하게 줄이 생겼고 혼란은 없었다. 순서대로 도시락을 받아 가방에 넣고 인사를 하며 나갔다.
하루에 쉰 잔의 믹스커피를 마신다는 분도 뒤에 가서 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분은 뒤에 서는 아주머니에게 무어라 말을 하더니 자리를 양보하고 뒤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분이 뒤에 줄을 서니 이번에도 그 분에게 무어라 말을 한 후에 다시 양보하고 뒤로 옮겨가셨다. 왜 저러시지? 궁금한 생각에 다가가서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저는 어제도 받아 갔거든요. 그래서 뒷사람에게 어제 왔었는지 물어본 겁니다. 안 왔다고 해서 양보했습니다. 남은 도시락 숫자를 보니까 저한테서 끝나겠더라고요."
결국 그분 앞에서 도시락 나눔은 끝났다. 그분은 앞 사람과 나에게 인사를 하고 웃으며 계단을 올랐다. 나는 다시 서울역을 향해 왔던 길을 거슬러 걸었다.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는 늦가을 밤 아홉 시 반, 노숙인들이 잠자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그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나는 30대 초반에 미국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곧바로 교수를 하며 오랜 세월을 살았다. 우리나라처럼 미국 박사, 대학 교수를 이유 없이 존경하고 대우하는 나라가 있을까? 나는 그런 넘치는 대우를 당연한 듯 누렸다. 게다가 교육학 교수다 보니 늘 남의 행동이나 말에서 문제를 찾아내 가르쳐야 한다는 직업의식에 투철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의 지적이나 가르침에 상처를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들의 반성 없이 우리나라 교육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10년 전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교육학 교수를 해온 30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교육학 교수도, 교사도, 교육부나 교육청 관료도 없다. 나는 가르칠 시간이 아니라 반성할 시간이라고 느꼈다. 마침 손에 들어온 커피 역사 공부에 매진하게 된 배경의 하나가 교육학자로서의 반성이었다.
이날 서울역 노숙인 강연은 나에게 다시 이 땅의 교육을 생각하게 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은 따로 있나?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보다 우월한가? 답이 있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인가? 교육에서 답보다 질문이 존중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루 쉰 잔의 믹스커피를 마신다는 그분에게 맛있는 커피 한잔 대접하며 세상 사는 이치를 다시 배우고 싶다. 가르치러 갔다가 배우고 돌아온 인문학 강연이었다. 커피의 힘일지도 모른다.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5).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싱긋.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