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사 한 마디면 족한데... 왜 가족의 수고에는 이토록 인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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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마치고 '수제 돈가스 대량 생산 대작전'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지난밤, 육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다진 마늘과 와인에 재워 둔 고기부터 꺼내 놓았다. 넓은 접시에 고기를 담고, 큰 그릇을 꺼내 달걀을 풀어놓았다. 밀가루와 빵가루를 넉넉하게 준비하여 순서대로 늘어놓으니 꼭 공장 라인 같았다. 누가 봐도 감탄사가 터져 나올 법한 비주얼이 아닌가. '와, 오늘 돈가스 잔치 열렸네!'
완벽하게 준비를 끝냈어도 곧바로 일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그래, 나는 지금부터 공장을 가동하는 거야.'
먼저 공장장이 된 나의 사기를 북돋워 줄 식구들의 동태부터 살폈다. 남편은 남의 집 결혼식장에 갈 준비를 미리 하느라 바빴고, 아들은 출근 준비로 방에서 시간을 지체했다. 나는 식구들의 시선이 식탁 앞으로 다 모여들 때까지 일부러 굼뜬 행동으로 주위를 서성댔다.
기대했던 아들이 보인 반응
▲ 돈가스 생산 준비
와인과 마늘즙으로 재어 둔 돼지고기로 돈가스 만들 준비를 해둠
ⓒ 윤태정
화장대 앞에 선 남편의 몸단장 시간이 오늘따라 길게만 느껴졌다. 평소에는 화장품 좀 꼼꼼하게 바르라는 잔소리도 건성으로 듣더니만. 잠시 후 안방에서 나온 그는 식탁 옆을 지나며 물 한 컵을 마셨다. 분명히 산처럼 쌓인 고기 더미를 봤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평소 무던하기가 바윗덩어리 같은 사람이라 고기 더미 보기를 돌 보듯 하는 건가 싶었다.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장의 수고를 남편이 알아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식탁 주위를 몇 번이나 스쳤는데도 바람만 일으킬 뿐, 감탄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철문보다 더 견고하게 닫힌 남편의 입이 자연스럽게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망부석이라도 되어버릴 처지였다.
'아, 저러다 현관문 열고 나가면서 '다녀올게' 한 마디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데.'
하지만 우리 집에는 믿을 만한 '감탄사 제조기'가 한 명 살고 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보며 감탄을 연발하는 녀석이었다. 참깨가 뿌려진 윤기 흐르는 오징어덮밥 하나에도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말했다.
"세상에, 엄마 손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손인가요? 흐물거리는 연체동물을 가지고 어떻게 이런 멋진 음식을 만들 수 있나요?"
그때 아들이 보인 반응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여 미소를 짓게 한다. 고기 반찬을 내놓을 때마다 반응하는 감탄사는 따로 있다.
"와, 저는 홈스테이 호스트 배정을 정말 잘 받은 것 같아요."
능청을 떠는 아들의 말솜씨는 축 처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기다림에 지쳐 목이 빠질 무렵, 드디어 '감탄사 제조기'가 방에서 나왔다. 어떤 말이 나올지 은근히 기대하며 숨을 죽였다. 나는 일부러 돈가스 더미가 아들의 눈에 잘 띄도록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들마저 묵묵부답이었다. 아들을 불러 고기 앞으로 유인하니 그때야 '영혼 없는' 입바른 소리만 남긴 채 출근해버렸다.
"돈가스를 이렇게나 많이 했어요?"
감탄사가 빠진 밋밋한 문장에 맥이 탁 풀렸다. 엄마의 가사 노동에 대한 대가를 꽃가루 뿌리듯 향기로운 감탄사로 뿌려주던 그 아들이 아니었다. '세상에'라는 감탄사 대신 과장된 몸짓 하나에도 내 노고는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을 텐데. 어느새 아들도 효율과 성과만 따지는 냉철한 사회인이 되어버린 건가. 엄마의 정성 대신 그저 '대량 생산된 돈가스'로만 보인 건가.
'아차, 황금 같은 토요일에도 사무실로 출근하는 심정이어서 그랬겠구나. 그래, 아들은 이해해 줘야 해.'
월급에는 고개를 숙이면서, 정성에는 무감각
이제 모든 화살은 남편을 향해 날아가야 할 차례였다. 나는 식탁에 앉아 돈가스 더미와 마주 보면서 중얼거렸다.
"감탄사 한 마디면 세상만사가 다 해결되고도 남을 텐데, 쯧쯧쯧."
그제야 눈치를 챈 남편이 굳게 닫힌 철문을 급하게 열어 보이느라 허둥지둥했다.
"와! 맛있어 보인다, 돈가스 공장이 따로 없네."
엎드려 절 받기요, 억지 춘향이가 따로 없는 남편의 행동을 나는 단칼에 잘랐다.
"시효가 이미 끝났네요."
▲ 식사 타임
하루 세끼를 준비하는 주부들의 '정성'이라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시기를
ⓒ 윤태정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지만, 멈추는 순간 바로 티가 나는 묘한 성격의 노동이다. 우리는 밖에서 받는 월급에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집안에서 묵묵히 지켜내는 '정성'이라는 노동의 가치에는 무감각하다.
나는 결혼해서부터 퇴직한 이 순간까지도 가족을 위해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려왔다. 그동안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차려준 밥상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게 한 건, 바로 나였다. 나의 미숙함이 남편을 '감탄사 제조기'로 길들이지 못했다.
늦었지만 앞으로는 잘한 일에는 생색을 내고, 칭찬도 당당히 요구하는 똑똑한 주부로 거듭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잠깐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감탄사'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왜 가족의 수고에는 이토록 인색한가에 대하여.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방이라는 공간에 꼭 필요한 것은 '감탄사'라고 다시 한번 소리높여 강조했다.
"팀원이 제출한 서류에 '와, 대단한데!' 건넨 팀장의 한 마디가 밤샘 근무를 견디게 하듯, 남편이 건넨 '와, 맛있겠네!' 한 마디가 아내의 사기를 올린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줘."
"여보, 나는 원래 무뚝뚝한 태생이라 그래. 속으로는 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남편은 어린애처럼 금방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심하겠노라 납작 엎드렸다. 남편의 수긍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잘한 건 없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감탄사를 수시로 날리면서 정작 가족에게는 인색했던 것 같다.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가족한테 더 많은 칭찬과 감탄을 쏟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남편이 외출하자 나는 머리를 굴리며 슬슬 고민에 빠졌다. 오늘 저녁은 어떤 요리로 그의 철문에 갇힌 감탄사를 술술 끄집어낼 수 있을까. 우리 집 식탁 위로 마법 같은 꽃가루가 다시 뿌려지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