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은 겪게 되는 연명 치료의 윤리적 딜레마... 마지막 길 평온하게 보내드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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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두 번의 고관절 수술을 견뎌내신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향하셨지만, 기대했던 '회복'이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찾아온 것은 흐릿해지는 의식과 곡기를 끊어버린 육신이었다. 생명의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잡고, 우리 자식들은 이제 잔인한 선택 앞에 서 있다.
서로의 눈을 피하는 형제들
의료진은 '콧줄'이라 불리는 L-튜브(Levin tube) 삽입을 권했다. 스스로 음식을 삼킬 수 없는 환자에게 강제로 영양을 공급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아버지를 위한 '식사'일까, 아니면 심장의 박동을 억지로 이어가기 위한 '처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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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뿐인 여명을 강제로 늘리는 것이 과연 아버지가 원하시는 마지막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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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관이 코를 통과해 식도를 타고 위장에 닿는 순간, 아버지는 생명을 연장하시겠지만 그만큼의 고통도 함께 연장될 것이다. 의식도 없이 침대에 누워 콧줄에 의지해 기계적으로 들어오는 영양액을 받아내는 삶. 자식의 눈에는 그것이 과연 '살아 있는 삶'인지 묻고 또 묻게 된다. 현직 간호사로 일하는 나조차도 그렇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생명을 내 손으로 거두는 듯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곁에 모시고 싶은 마음은 'L-튜브'라는 선택지를 '효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통뿐인 여명을 강제로 늘리는 것이 과연 아버지가 원하시는 마지막 모습일까 생각하면, 그 선택은 지독한 '이기심'이자 '불효'가 된다.
"이 고통을 끝내 드리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단 하루라도 더 숨을 쉬게 해 드리는 것이 맞을까."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형제들은 서로의 눈을 피한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든 결론을 가슴에 묻은 채,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채운다. 우리는 아버지를 사랑해서 붙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를 보내드린 뒤 찾아올 죄책감이 무서워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 부디 지혜를 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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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맨다.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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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시스템대로 움직인다. 수술을 하고, 약을 쓰고, 안 되면 줄을 꼽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아버지는 한때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뜨거운 꿈을 가졌던 청년이었으며, 우리를 품어주던 넓은 바다였다.
그런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기계의 부속품처럼 연명 장치에 의지해 '생존'만을 이어가는 모습은 자식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된다. 우리가 서로를 챙겨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환자의 '의지'가 아닌 시스템의 '관성'에 삶을 맡긴다면 간호와 돌봄은 그저 희생과 고통의 반복일 뿐이다.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고, 그저 '살아 있음'만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남겨지는 것은 아버지에게도 우리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울게 될 것이다. 콧줄을 끼우고 고통스러워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울 것이고, 콧줄을 거부하고 서서히 꺼져가는 아버지의 숨결을 보며 오열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모시느냐가 아니라, 아버지가 얼마나 평온하게 마지막 길을 가시느냐에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맨다. 오늘 밤도 아버지의 마른 손을 잡고 기도한다. 아버지, 부디 우리에게 지혜를 빌려주세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그 길이 무엇인지, 자식들이 후회 없는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