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생존기] 눈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된 홋카이도에서 겪은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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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말 신치토세 공항 인파
1월 26일 신치토세 공항의 인파. 버스와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열차가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모습이다.
ⓒ 김용국
일본을 찾는 관광객 수가 가장 많이 나라는 어디일까. 중국도, 미국도, 대만도 아니다. 바로 한국이다. 2025년 기준으로 945만 명(일본정부관광국 통계)이나 되었다. 2024년보다 7%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인구 대비로 보면 압도적 1위다. 일본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데다 엔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일본 여행이 마냥 저렴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닌 듯싶다. 만만찮은 숙박 요금과 한국보다 몇 배 비싼 대중교통 요금은 익히 알고 있으리라. 최근 줄줄이 인상되는 입장료와 숙박세·출국세 등 각종 세금도 관광객에겐 달갑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단적인 예로, 일본은 2028년 시행을 목표로 무비자 입국자를 상대로 입국심사제도를 도입하고,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외국인 입국이나 체류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정비하겠다는 취지인데, 일본이 갈수록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 여행에서는 단순히 조금 싼 항공권을 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값싼 왕복 항공권 '덜컥' 예약했다가
▲ 1월말 신치토세 공항의 인파
1월 26일 신치토세 공항의 인파. 버스와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열차가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모습이다.
ⓒ 김용국
우연히 값싼 비행기표를 보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홋카이도 왕복이 10만 원대, 그것도 1월 말 성수기 요금이라니. 주변에서 다들 '겨울 여행 하면 홋카이도'라고 부추겼다. 얼떨결에 항공권을 '덜컥' 예매했다. 그것이 재앙으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으랴.
항공권이 싼 몇 가지 사연이 있었다. 먼저, 한국 출발이 아니었다. 간사이공항과 신치토세공항을 오가는 일본 국내선이었다. 지난해 연말 오사카 연구원으로 확정되고 난 뒤 나의 일본 여행 출발지는 오사카였다. 일본 가면 홋카이도는 한 번쯤 가야 한다는, 아무 근거 없는 생각에 한국서 표를 산 것이다.
이 항공권은 수하물 제한도 있었다. 기내 수하물 7kg까지만 무료였다. 초과하거나 짐을 따로 부치려면 무게에 따라 몇만 원씩 추가 요금이 부과됐다. 일본 저가 항공이었는데 온라인 체크인도 안 되고 좌석 선택도 유료였고, 좌석도 극도로 좁았다.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호텔을 알아봤더니 괜찮은 곳은 하루 숙박료가 한 명 기준으로 25~30만 원을 호가했다. 마치 값싼 항공권이 미끼상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초기 오사카에 정착할 시기라 시간이 그다지 많지도 않을 때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눈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특히 눈 내린 뒤 질퍽거리는 길에 신발이 젖거나 빙판길에 넘어지는 것이 싫었다.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항공권은 취소·변경 불가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첫날은 오타루로, 나머지는 삿포로로 적당히 저렴한 가격의 숙소를 예약한 뒤 홋카이도행 비행기를 탔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옷과 필수품만 담았는데도 가방은 7kg 기준을 겨우 통과했다. 2시간의 비행 끝에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자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유난히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오타루로 가는 버스와 열차가 모두 운행 중단이었다. 원인은 폭설.
첫날,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가는 교통수단 두절
▲ 폭설속 천진난만한 아이들
폭설로 대중교통이 마비된 삿포로 시내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어딜 가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멀리 삿포로 TV 타워가 보인다.
ⓒ 김용국
첫날부터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고민 끝에 일단 삿포로 시내까지 가보기로 했다. JR 열차를 이용해 눈 내리는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막막했다. 오타루까지는 자동차로도 1시간 거리다. 여행안내소 직원은 "오늘은 기차가 운행할 가능성이 제로니 버스 편이 있는지 알아보라"라고 했다.
삿포로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보는데 한결같이 외면한다. 마치 관광객들을 상대해 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듯 그들의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내가 투명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눈 속에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버스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타루 숙소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당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선택하라"는 추상적인 답장이 왔다. 그 뒤에 "당신이 오지 못하더라도 규정상 숙소 취소는 어렵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절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결국, 난생처음 캡슐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 호텔은 내가 묵은 층에서만 약 150명이 잠을 잘 정도로 성냥갑 같은 2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 삿포로 캡슐호텔
비행기로 홋카이도에 도착하였으나 오타루행 교통수단이 끊겨버렸다. 결국, 삿포로로 이동하여 캡슐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 김용국
다음 날이 되니 남은 일정도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눈은 소강상태이지만 이미 쌓인 눈이 만만찮고 언제 다시 폭설이 찾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따로 대비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닥치면 다시 해결하자는 심정으로, 삿포로에 온 이상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로 했다.
열차를 타고, 전날 가지 못했던 오타루로 향했다. 오타루 운하, 삼각시장, 오르골당을 지나면서 경치를 감상했다. 그 와중에도 다시 열차 운행이 중단되지 않을까 무척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무사히 삿포로로 복귀했다. 저녁에는 일본 '신 3대 야경' 중 한 곳인 모이와 산에 올랐다. 해발 531미터의 전망대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폭격처럼 쏟아진 눈이 장관을 연출하다니 역설이 아닐 수 없었다.
▲ 오타루 전경
오타루 상점가 옥상에서 바라본 오타루 시내 전경
ⓒ 김용국
▲ 모이와산에서 바라본 삿포로 야경
삿포로시 중앙에 위치한 모이와산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해발 531m의 모이와산은 화려한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 김용국
새벽녘 다시 폭설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이란 말이 비유가 아님을 삿포로에서 깨달았다. 눈밭에 눈이 더해지니 백색 세상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시내 한복판에서 차도가 어디인지 인도가 어디인지 구별이 안 된다. 뉴스를 보니 이날 적설량이 1미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날은 오전에 버스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출발 장소가 있었다. 전날 사전 답사를 해두긴 했지만 설마 이런 날 버스가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혹시 몰라서 눈길을 뚫고 출발 장소에 가보았더니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하긴 눈을 보겠다고 고생을 감수하며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인데 폭설에 굴복할 리가 있으랴. 관광버스는 눈길 속에서도 예정대로 관광지를 전부 돌고 왔다. 도로 사정이 나빠서 장장 12시간이 걸렸다.
▲ 숙소에서 바라본 삿포로 도로
숙소에서 바라본 1월말 삿포로의 도로이다. 1미터가 넘게 쌓였는데도 눈은 그칠 줄 모른다.
ⓒ 김용국
▲ 폭설속의 버스투어 참가자들
삿포로 시내 교통이 마비된 날도 버스투어는 강행되었다. 폭설 속에 버스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관광객들의 모습.
ⓒ 김용국
전날부터 버스와 기차가 전부 멈춰선 상황이었다. 7천 명 이상이 공항에 묵이고, 반대로 공항으로 가려던 사람들도 노숙하게 되었다. 공항과 삿포로역 근처에선 수천 명이 노숙까지 하면서 무작정 운행 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이나 홈페이지에선 운행 중단 안내만 반복할 뿐 언제 재개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이 몰려서 다음날은커녕 그다음 날 표도 구하기 어려웠고, 숙소 예약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홋카이도를 떠나려는 사람도, 홋카이도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속수무책이었다.
버스도 열차도 모두 중단...이틀째 도시 마비
▲ 도로인지 인도인지
1월말 삿포로 시내 도로의 모습. 1미터가 넘게 내린 폭설로 차도와 인도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
ⓒ 김용국
하늘은 자비가 없었다. 1미터가 넘게 쌓인 삿포로에 눈은 그칠 줄 모른다. 삿포로가 마치 저주받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일본의 관광상품이니 내가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현지인들은 출근하고, 가게는 장사를 하고, 일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수천 명의 관광객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
이틀째 도시가 마비가 되었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삿포로역에는 열차 재개를 기다리는 수천 명이 밤새워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내일 돌아가야 한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잠을 잘 때가 아니었다. 만일 제때 '탈출'하지 못한다면 노숙하거나 숙소를 잡아야 한다. 비행기표도 새로 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역으로 가서 대기행렬에 동참하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택시를 타야 한다. 삿포로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50km가 넘는다. 왕복 항공권보다 비싼 택시 요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수요가 한꺼번에 몰려 택시 예약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일본 여행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홋카이도에 온 한국인들의 고생담이 쏟아지고 있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출국 비행기를 놓친 사람, 호텔을 예약해 놓고도 이틀째 공항 노숙 중인 사람, 갑자기 운행이 중단된 열차 안에서 밤새도록 떨고 있는 사람의 사연까지... 특히 노인이나 아이를 동반한 여행객들은 더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여행객 A씨의 게시물을 보았다. '겨우 택시 예약에 성공하여 아침 삿포로에서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A씨는 가족이 3명이라고 했다.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신속하게, 그러나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 자리가 남아 있다면 택시에 함께 탈 수 있을까요. 택시 요금은 분담하겠습니다."
곧 답장이 왔다. '캐리어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함께 탈 수 있겠다'고. 가방 외에 무거운 짐이 없던 나는 쾌재를 불렀다. 아침에 A씨 가족이 묵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 비행기였지만 시내에서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삿포로에서 공항까지 택시요금이...
▲ 공항까지 택시
버스와 열차 등 대중교통이 마비된 삿포로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는 2시간을 달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요금은 2만 5천엔(약 23만 4천원)이 나왔다.
ⓒ 김용국
오전 예약 시간이 되었건만 택시는 도착할 기미가 없었다.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눈길에 다른 손님을 공항에 실어 나르느라 시간을 맞추지 못한 듯싶었다. 실망하고 있을 무렵, 택시 한 대가 손님을 내려주고 있었다. 얼른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하던 A씨 가족도 불렀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A씨 가족과 함께 오른 택시가 출발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택시 기사는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삿포로에 손님을 내려주자마자 다시 우리를 태우고 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만 벌써 세 차례 공항과 시내를 왕복했다니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만 횡재를 하는 날이었다.
택시 기사는 "버스와 전철이 모두 중단된 경우는 몇십 년간 나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도로 상황으로 보아 전면 중단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지만, 외국인인 나로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눈이 일상화된 도시에서 제설작업이 안 되어 교통이 마비된다는 사실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택시는 2시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요금은 2만 5천 엔(약 23만 4천 원). A씨 가족은 1/n을 제안했다. 삿포로에서 인심 좋은 한국인을 만나 비교적 부담 없는 비용으로 홋카이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간사이공항에 도착하니 내 집에 온 것처럼 푸근하게 느껴졌다.
대중교통 마비, 만일 한국이었다면
▲ 폭설이 내리는 삿포로
1월말 삿포로 시내 도로의 모습. 1미터가 넘게 내린 폭설로 차도와 인도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
ⓒ 김용국
만일,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폭설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었다면 아마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나섰을 것이다. 공항을 오가는 임시 전세버스라도 운행하고, 관광객이나 주민들에게 음식과 잠자리 등 편의를 제공했을 것이다. 속보로 실시간 상황을 알리고 대책 마련에 바빴을 것이다. 시민들도 사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운행 재개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국에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일본.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했다. 현지인들도 당혹스러울 만한데 아무 내색을 하지 않는다. 불만을 가져봐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다. 관광객들의 하소연에도 "안됐네요"하고 맞장구를 치는 게 전부다. 사태가 언제 정상화될지 그 누구도 질문도 답변도 하지 않는다.
1990년 1월, 스무 살 내가 처음 상경한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서울에 큰 눈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21년 만의 대설이라고 했다. 30cm 가까이 쌓인 눈에 경악했다. 남쪽에 살던 나는 그전까지 그런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1미터가 넘는 폭설을 실컷 보았다. 충분하다. 이제 다시는 제 발로 눈 구경 갈 일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