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딱 맞는 반숙 달걀을 위한 시도들... 작은 차이 덕분에 다양한 맛 경험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번에는 단단하게 익어 있었다. 냄비 속의 물이 끓어올랐다. 계산된 시간에 맞춰 불을 끄고 찬물을 부었다. 조심스럽게 껍질을 깠다. 손끝에 전해지는 말랑한 감촉을 느끼며 탱글탱글한 노른자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매번 실패했던 건 아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며칠 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달걀의 속사정은 알 수 없다.
▲ 삶은 달걀
끓는 시간에 따라 반숙 정도가 각기 다르다. 껍질과 흰자를 매끄럽게 벗기는 일도 쉽지 않다.
ⓒ 신극채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는 3월 아침, 며칠째 반숙이 되는 시간을 찾고 있다. 아침마다 냄비 속 물 끓이는 시간을 달리 해가며 맞춰가고 있다. 달걀 삶는 시간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게시자마다 편차가 있었다.
그 가운데 두세 개를 골라 시도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각자 다른 조건에서 삶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변수가 시간에 영향을 주었다. 물의 양이나 불의 세기, 달걀의 온도와 개수 같은 요인에 따라 시간은 들쑥날쑥했다. 내 조건에 맞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불확실한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가기로 했다. 마치 가설을 설정하고 결과를 찾아가는 연구자가 된 듯했다. 냄비에 붓는 물의 양을 일정하게 맞추고 인덕션의 화력을 고정하여 변수를 줄여갔다. 물은 언제나 찬물을 사용했고 달걀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차가운 상태로 하여 물과 달걀의 초기 온도의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 중에 다른 조건은 상수로 두고 오직 시간만 남도록 했다.
몇 가지 조건 가운데 '시간'이라는 변수만 남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았다. 처음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다. 그저 시간만 맞추면 원하는 반숙을 먹을 것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실수를 반복하면서 변수가 하나씩 드러났다.
첫 번째로 물의 양이었다. 달걀이 전부 물에 잠길 때도 있고 때로 그렇지 않으면서 매번 일정하지 않았던 것을 알았다. 냄비를 하나만 사용하면 눈대중으로도 물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쉽다는 사실도 차츰 깨달았다. 들쭉날쭉했던 불의 세기가 일정해야 한다는 것도 터득하고 나서야 변수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시간만 통제하면 되었다.
반복되는 시도 끝에 시간의 폭도 점차 좁혀졌고 마침내 내게 맞춤한 시간을 찾았다. 그런 중에 흥미로운 일도 있었다. 매번 일정한 시간을 삶아도 노른자의 반숙 정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어느 날은 쫀득했고 어떤 날은 가운데 부분이 익지 않아 흘러내리듯 했다. 그런 미세한 것까지 잡아내려 애썼으나 그걸 맞추기도 어렵고 의미도 없는 문제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작은 차이는 껍질을 벗길 때마다 찾아오는 기분 좋은 기대감이 되었다. 물렁한 흰자 속에 가려진 노른자에 대한 궁금증과 예상을 살짝 비껴간 결과가 주는 뜻밖의 즐거움이 있었다.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 작은 차이 덕분에 매일 아침 다양한 반숙의 맛을 보기도 했다.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남은 숙제 하나가 있다. 껍질을 깔끔하게 벗기는 일이다. 삶은 달걀을 찬물에 바로 담그면 대개 쉽게 벗겨지긴 하나 때로 껍질과 흰자가 서로 달라붙어 말썽을 부린다. 물에 담그는 시간이 영향을 주는지, 어떤 다른 요인이 작동하는지 모른다.
식초나 소금을 넣어 삶으라는 조언을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번거로운 과정을 더하고 싶진 않다. 껍질이 매끄럽게 떨어지지 않아 흰자가 버려지고 달걀 표면이 울퉁불퉁하더라도, 아침 한 끼를 채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에 반숙을 위해 시간을 맞추고 재빨리 찬물에 담그지만, 결국 노른자가 익는 정도나 껍질이 얼마나 매끄럽게 벗겨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다.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물이 끓는 시간을 재고 삶아진 달걀을 찬물에 담가 기다리는 일뿐이다. 나머지 속사정은 달걀에게 맡겨둔 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