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 태극기 맡긴 이숙재 장흥고씨 학봉종가 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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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불원복 태극기. 흰색 바탕에 붉은 색실로 ‘不遠復’이 새겨져 있다. 불원복은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이돈삼
"불원복 태극기가 주인공 대접을 받는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가족으로도 뿌듯했고요. 박물관에서 유물을 정말 귀하게 다뤄줬습니다. 박물관에 맡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교육 자료로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 '불원복' 태극기를 맡긴 장흥고씨 학봉종가 이숙재(80) 종부의 말이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지난 3월 5일 전라남도 나주에 문을 열었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불원복 태극기는 가로 128㎝, 세로 82㎝ 크기로 흰색 바탕에 붉은 색실로 '不遠復'이 새겨져 있다. 불원복은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불원복 태극기는 고광순(1848~1907) 의병장이 을사늑약 이후 항일투쟁할 때 썼다. 의병장의 부인이 자수를 놓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고광순 의병장은 불원복 태극기를 의병부대 깃발로 사용했다. 의병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것이다.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의병장의 시신을 덮어준 데도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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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연곡사에 세워져 있는 고광순 순절비. 고광순 의병장을 추모하며 구례군민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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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종가 뒤편 언덕에 있는 학봉 고인후 묘. 장흥고씨 의열공파는 학봉 고인후를 뿌리로 430여 년을 이어온 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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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 의병장은 가국지수(家國之讐)의 깃발을 들었다. 집안과 국가의 원수를 동시에 갚자는 말이다. 그에게 일본은 나라의 적이면서, 집안의 원수였다.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 의병장과 고인후 의병장의 후손이다.
고광순 의병장은 일본군과의 장기전을 계획하고 지리산 피아골로 옮겨 일본군과 싸우다가 1907년 순국했다. 12대 할아버지 고경명 의병장이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나이 60살과 같았다. 의병 집안에서 의병 나온다는 말을 증명하고 있다. 장흥고씨는 의병 명문가로 통한다.
고광순 의병장의 집도 일본경찰에 의해 불태워졌다. 대를 이어 의병 활동을 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종갓집은 물론 고광순 의병장의 유품과 유물도 모두 불에 타 버렸다. 불원복 태극기를 제외한 유품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다. 고광순 순절비는 지리산 연곡사에 있다. 구례군민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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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재 학봉종가 종부(오른편)가 지난 3월 5일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개관식에서 유물(불원복 태극기) 기탁증서를 들고 김영록 전남지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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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복 태극기는 지난 2월까지 천안 독립기념관에 있었다. 고광순 의병장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기탁, 40여 년 동안 전시됐다. 불원복 태극기 전시 장소가 최근 전라남도 나주에 문을 연 남도의병역사박물관으로 바뀐 이유가 궁금했다.
"전라남도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왔습니다. 의병역사박물관을 짓는데, 그곳으로 유물을 옮겨 전시하면 더 좋지 않겠냐고요. 처음엔 서름서름했습니다. 자식들(1남 3녀)도 다 반대했어요. 일가친척들도 마뜩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숙재 종부의 말이다.
하긴, 정부가 만든 독립기념관이고 상대적으로 방문객도 많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당연히 유물을 보는 사람도 더 많을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인지상정이다.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필요로 한다는데, 지역에서 더 크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식들을 설득했죠. 독립기념관에서도 가족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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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재 학봉종가 종부가 자신의 집에서 '불원복 태극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종부가 들고 있는 태극기는 복제본이다. 지난 3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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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이숙재 종부가 진행하는 찻자리 체험. 장흥고씨 가문의 의병 이야기와 함께 진행돼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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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복 태극기는 지난 2월 25일 독립기념관에서 나와 '남행열차'를 탔다. 호주에 있는 아들을 대신해 종부가 직접 독립기념관까지 찾아갔다. 불원복 태극기는 그날 유물 전용 차량에 옮겨져 남도의병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불원복 태극기는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의 많은 유물 가운데 박물관을 대표하는 상징 유물이 됐다. 박물관 개관식에도 일가친척과 함께 다녀왔다. 재작년 작고한 종손(고영준)이 살아계셨으면 더 좋아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게 이숙재 종부의 말이다.
"고광순 의병장의 상소문도 독립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병박물관에서 얘기해줘 알았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유물도 가져와서 의병박물관에 전시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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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 의병장이 살았던 옛집 자리. 현재 학봉종가 의열공파 종갓집으로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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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포의사와 녹천기념관. 녹천 고광순 의병장을 기리는 사당과 기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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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재 종부가 사는 집이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있다. 고광순 의병장이 살던 집터에 새로 지은 학봉종택이다. 학봉종택은 장흥고씨 의열공파 종갓집이다. 의열공파는 학봉 고인후를 뿌리로 430여 년을 이어온 가문이다.
학봉 고인후 묘가 종갓집 뒷산에 있다. 녹천 고광순을 기리는 사당 포의사(褒義祠)와 녹천기념관도 가까이에 있다. 기념관 뒤편에 조선오란 호국충혼탑도 세워져 있다. 정묘호란, 임진왜란 등 5대 전란에 참가해 순절한 호남의병을 기리고 있다.
유천리는 전남대 홍매와도 엮인다. 고광순 의병장의 할아버지인 월봉 고부천과 관련된다. 고부천은 고인후의 둘째 아들이다. 인조가 고부천을 만나려고 세 번 찾아왔다고 마을 이름이 '인조대왕 삼고초려리'로도 불린다.
명나라에 간 고부천이 희종으로부터 홍매 한 그루를 받아 마을에 심었다. 대명매(大明梅)다. 그의 후손 고재천 당시 전남대 교수가 대명매의 분주를 1972년 전남대학교에 기증했다. 전남대 민주마루 앞에 있는 그 나무다. 전남대는 2024년 홍매 후계목을 유천마을에 기증하고, 표지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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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민주마루 앞에 있는 홍매화. 장흥고씨 의열공파 고부천 선생과 엮인다. 고광순 의병장의 할아버지인 월봉 고부천 명나라에서 가져와 마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명매(大明梅)로도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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