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독서만세 306]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모든 것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 그 반대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과학기자 출신 작가 룰루 밀러의 인상적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제가 바로 이것일 테다.
누군가는 에세이라 하고, 누구는 평전이라 하며, 다른 누구는 소설이라 말하는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출판계는 이를 논픽션 에세이라 구분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중 어느 하나만은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에세이 앞에 구태여 논픽션이란 말을 붙인 건 책이 차라리 저널리즘 논픽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까.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 실제적 변화, 그러니까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캠퍼스 내 동상이 철거되고 이 학교뿐 아니라 여러 학교며 공공기관 건물 이름도 바뀌었단 건 유명한 이야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일으킨 변화는 도대체 무엇일까. 책은 어떻게 독자를 움직여 세상을 바꿔낼 수 있었을까.
책은 삶 가운데 고난을 겪고 실의에 빠져 혼란스러워하던 과학기자인 저자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옛 학자의 기록을 찾아가며 그 삶을 복원하는 이야기다. 옛 인물의 삶을 추적해 정리한다는 점에서 평전처럼 보이지만 주된 형식은 에세이에 가깝다. 그건 룰루 밀러가 제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주한 사건과 사상, 자기인식까지 사실적으로 풀어내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인물을 추적하는 이유가 저자의 삶 가운데 자연스레 드러나니, 책이 에세이로 출발하여 평전에 닿는단 평이 가능하겠다. 그리고 책은 이쯤에서 멈추려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까닭이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표지
ⓒ 곰출판
온 세상이 흔들릴 때 부여잡은 한 가지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57p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생화학자였던 아버지가 어린 제게 "너는 중요하지 않아. 우주 전체로 보면 너는 점보다 작은 존재고, 네 고통이나 기쁨도 결국 화학 작용일 뿐이야"하고 말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와 같은 과학적 인식이 소위 낙관적 허무주의, 집착하지 않고 삶을 즐기는 철학사조와 통한단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낙관' 뒤에 '허무'가 붙는 이유를 무시해선 안 될 일이다. 룰루 밀러의 삶에서 쉽지 않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점보다 작은 하잘것없는 나'란 자기인식은 해방이 아닌 무의미와 혼란으로 스스로를 이끌어간다. 그렇다. 사람에겐 삶의 기둥이 간절할 때가 있다.
힘겨웠던 시기, 그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빠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위대한 찰스 다윈과 40여 년 차이를 두고 태어난 조던이다. 그는 당대의 학문이었던 생물학, 그중에서도 분류학에 투신해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현존하는 어류 수만 종 중 그가 식별해 목록화한 것이 2500여 종에 이를 정도다. 책은 식물에 매료된 어린 시절부터, 동물학을 공부한 학생 시절, 학자가 되어 어류 분류학으로 일가를 이루기까지 조던의 전 생애를 차근히 다룬다. 그 과정 가운데 꽤나 감동적인 구석도 없지 않아서 좀 낯선 형식의 평전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다. 그러나 책은 어느 순간 그와 같은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낸다.
조던은 학자일 뿐 아니라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총장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한 스탠퍼드 대학교는 수많은 창업가를 배출해 실리콘밸리, 나아가 미국의 혁신적 기술기업 생태계에 지대한 역할을 맡아왔다. 19세기 미국에서 철도왕이라고까지 불린 갑부 출신 정치인 릴랜드 스탠퍼드가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뒤 막대한 재산을 출연해 학교를 설립한 이야기는 태평양 건너 한국서도 유명하다. 죽은 아들 대신 캘리포니아의 청년들을 제 자식으로 삼겠다던 그의 선언은 어찌나 감동적이었나.
책은 두 가지 큰 사건으로 조던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조명한다. 하나는 스탠퍼드 대학교 초창기 대위기였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어렵게 포집한 수천 종의 희귀어류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순간, 전 인생을 갈아 넣은 작업이 참담하게 무너진 절망적 상황을 조던은 놀라운 뚝심으로 극복해 낸다. 그 모습이 삶 가운데 표류하던 룰루 밀러에게 적잖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스탠퍼드 대학교 이사장의 석연찮은 죽음
다른 사건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릴랜드의 아내로, 남편이 죽고 난 뒤 이사장이 된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제인 스탠퍼드 사이에 있었던 무시할 수 없는 불화의 흔적들을, 또 제인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러 하와이까지 다녀온 조던의 의뭉스러운 행적까지를 하나둘씩 독자 앞에 풀어낸다. 책이 확실히 조던이 제인 스탠퍼드를 살해한 진범이라 적고 있진 않다지만, 가장 둔감한 독자조차 룰루 밀러가 조던을 제인의 살인범으로 확신하고 있단 걸 알아챌 정도다.
책은 그로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또 다른 면모를 펼쳐낸다. 그가 남긴 다양한 기록들, 회고록과 동화, 각종 에세이와 강의계획서, 신문에 발표한 칼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을 통하여 세상에 대한 탐구심 많던 아이가 어떻게 거리낌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를 은폐하며 대학교를 장악하는 악당이 되어가는지 내보인다. 그 중심엔 단순한 기질과 성격을 넘어 철학과 사상, 세계관이 자리한다. 비대한 자아로 성급하게 확신하는 이의 실수며 실패가 낙관적 허무주의와는 또 다른 문제들을 드러낸다.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한국계 과학자 캐럴 계숙 윤이 제 저술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통해 풀어낸 '분류학적으로 물고기란 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생을 물고기 분류에 쏟아부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이어낸다. 무엇보다 조던이 지금은 학문의 자리에서 쫓겨난 우생학을 신봉하며 미국 내에 적극 전파했단 사실을 언급하며 그 삶 전체가 오판과 실패로 귀결됐음을 확인한다. 진화, 또 퇴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인종 간, 또 인종 내 생물학적 우열이 있다는 발상으로 이어진 것. 그러나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듯, 확고하다 믿은 사실 또한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단 걸 조던은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 분류학적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래와 돌고래가 어류가 아닌 포유류라는 사실만을 상식으로 받아들이지만, 캐럴 계숙 윤이 썼듯 현대 과학은 이미 모든 어류를 한 무리로 묶을 수 있는 유전적 공통특질이 없단 사실을 확인한 지 오래다. 장어와 상어, 연어와 폐어, 그밖에 수많은 물고기가 그저 물에 살기 위해 발달한 지느러미며 비늘 등의 외적특징만 공유할 뿐, 차라리 표범이나 인간하고 더 가깝단 사실 말이다. 고래가 붕어보다 오랑우탄과 훨씬 더 가깝듯이. 진화의 가지에서 물고기는 한 가지에서 나온 형제일 수 없다.
현실을 긍정하는 룰루 밀러의 방법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지식과 믿음을 갖고 우생학을 퍼뜨린 조던의 실패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낙관적 허무주의와 조던에게서 보았던 확신 어린 믿음 사이에서 결국 헤맬 만큼 헤매다 보니 삶에도 세상에도 정답은 없더라는, 모든 건 바뀔 수 있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그리고 저자가 이 글을 쓴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 저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아리스토스의 천동설과 목적론적 세계관은 기독교적 질서며 창조론과는 무리 없이 맞닿았으나 코페르니쿠스 이하 과학자들의 현실 관측과 어긋나 공존할 수 없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대체되며 인간은 더는 세계의 중심일 수 없었으나, 그로부터 끝을 알 수 없는 신비하고 장엄한 우주를 얻었다.
뿐인가. 출항하여 저 멀리 바다 끝까지 나아간 배가 세계의 끝에서 추락하리라 믿던 때가 있었다.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아가고 나아간 배들이 마침내 지중해 전역을 밝히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새로운 세계로 나갔다. 끝까지 마주불기만 하는 바람을 신이 나아가길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항해사들은 삼각돛을 활용하면 바람이 꼭 뒤에서 불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단 걸 깨달았다. 폭풍의 곶이 희망봉이 되고 오늘을 연 이들의 세상은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로, 인도양으로, 다시 대서양과 태평양, 전 지구로 확장됐다. 과학뿐 아니라, 역사도 이를 증명한다.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우생학과 관련해 조던이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단 걸 몰랐다면, 어류가 분류학에서 부인된 사실을 몰랐다면, 책이 반영하고 있는 철학과 과학, 역사적 상식들을 몰랐다면 말이다. 물론 이 모두를 알았다 해도 조던의 인물됨과 그 학문적 성과 및 분류학의 발견까지를 꿰어내는 솜씨가 탁월하여 적당히 재미있다. 다만 이 모두가 책이 출간되기 한참 전부터 너무나 유명한 것으로 책 가운데 화자인 저자가 이를 하나씩 새로 알아가며 깨닫는다는 전개는 책이 표방하고 있는 논픽션이나 에세이라기보다 소설에 더 가깝다는 비판이 마땅하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