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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 '가치'의 길... 사육신과 생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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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의 역사 이야기] 영화 속 엄흥도만이 아니다... 단종 위해 헌신한 이들

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국내와 해외의 주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말>

▲ 김시습.

'생육신'으로써 충절의 대명사로 불린다.

ⓒ 불교중앙박물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대중은 단종과 엄흥도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숙부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오지인 강원도 영월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단종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다. 또한 자신과 가족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올바른 도리를 선택한 엄흥도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다. 앞으로도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대로 전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사육신과 생육신

다만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단종과 엄흥도 못지않게 주목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육신'과 '생육신'이다. 사육신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발각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을 말한다.

사육신의 용기와 충절은 거사를 계획한 것 뿐만 아니라 거사에 실패한 후 혹독한 고문을 받을 때에도 빛났다. 이들은 세조가 직접 국문할 때 굴하지 않고 당당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한 상황에서도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으리"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결국 육신이 갈갈이 찢기는 형벌을 받았지만, 그 마지막 모습이 결코 비굴하거나 비참해 보이지 않았다.

사육신이 죽음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면, 생육신은 죽음이 아닌 삶의 길을 택함으로써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시습, 원호, 조려, 성담수, 남효온, 이맹전 등이 있다. 이들은 세조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의 유교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반역으로 규정했다. 다만 사육신처럼 죽음을 무릅쓰지는 않았다. 대신 벼슬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해 버렸다.

특히 김시습의 경우 삭발하고 승려가 돼서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방랑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성삼문이 죽었을 때에는 한밤 중에 몰래 시신을 수습해 서울 아차고개 남쪽에 묻고 장사지냈다. 세조 정권에서 상당한 회유가 들어왔지만,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양녕이 김시습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세조에게 천거했을 때, 김시습은 곧바로 거부했다. 군사들이 와서 억지로 데려가려 했지만, 김시습은 똥이 가득 들어있는 통에 들어갔다. 스스로 미친척하면서까지 세조를 거부했던 것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켜야 할 가치

사육신과 생육신의 역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심대한 교훈을 선사한다. 한쪽은 죽었고 또 다른 한쪽은 살았으나, 추구하는 가치는 한결같았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용기와 신념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결단력이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버텼다. 이들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정의가 세워졌고, 역사는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역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신의 목숨과 안위를 버리면서까지 올바른 가치를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위인이 위인일 수 있는 이유는, 이 같은 물음에 행동으로 응답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이들이 위인일 수는 없다. 반드시 위인이 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사육신과 생육신의 고귀한 행동에 공감하고 지지하면 될 일이다. 최근 <왕사남>을 관람한 1000만 명 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가치를 지키는 또 다른 방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경식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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