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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에서 오줌을 누다가... 뱀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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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오늘] 장유정 '뱀이 나갔다'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기자말>

뱀이 나갔다

- 장유정

오래전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 눈 적 있다.

사타구니에서 구불거리며 빠져나간 뱀, 그날 이후 몸엔 부르르 떨리는 진저리만 남았다

뼈마디가 쑤시고 아팠다

몸속에 남아 있는 뱀의 허물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친 뱀을 다시 불러들이고 싶었다

안마사는 손끝으로 뱀을 찾아낸다고 한다

밝은 손끝으로 뱀의 허물 찾아 그 허물 속에 한동안 뱀을 풀어놓는다고 한다

우거진 숲길을 기어 꿈틀거리며 등바닥으로 기어 왔다

먹이 앞에 두고 몸 잔뜩 도사리고 있는, 휘어진 모습이 풀숲의 모퉁이 같다

한여름 비구름 뭉쳐 있는 하늘 아래

내뿜지 못한 울화 한꺼번에 토하듯 아가리 벌려 혀 날름거렸다

한번 나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오싹한 해후

쑤시고 결리던 혈사(血蛇)들이 어깨로 옮겨 왔다

그 후로 다리를 벌리고 앉는 습관이 생겼다

뱀의 허물 기둥에 가로걸려 있다

어혈 풀어지듯 얼룩덜룩한 무늬 있는 옷 입고 몸 굽어 감으면서 기어오르고 있는 승천(昇天)이다

그리고 오늘 산책길에서 뱀을 보았다

쪼그려 앉을 장소도 없고 오줌도 마렵지 않았지만 뱀을 다시 불러들이고 싶었다

풀숲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뱀 문득, 내 속치마 자락이 흔들렸던 것도 같다.

출처_시집 <저녁이라 불러서는 안 돼요>, 천년의시작, 2024

시인_장유정 :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늘이 말을 걸다> <저녁이라 불러서는 안 돼요>가 있다.

몸속에 남아 있는 뱀의 허물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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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단정하고 정해진 질서에 따라 구축되지만, 그 이면에서는 여전히 날것의 에너지와 통제되지 않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원초적 생명력을 잃게 되면, 우리의 몸은 뼈마디가 쑤시는 지독한 결핍과 무기력을 앓게 됩니다. <뱀이 나갔다>는 바로 이 내밀한 순간 몸을 빠져나간 '뱀'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 안에서 펄떡이던 야성이 상실되는 경험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풀숲의 뱀을 다시금 속치마 자락 아래로 들이고 싶어 하는 화자의 서늘한 충동은, 회복과 치유를 위한 간절한 제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상의 숨 막힘 속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을 때, 혹은 원인 모를 피로에 어깨가 짓눌려 무력하게 느껴진다면, 한 번쯤 내 안에서 빠져나간 뜨거운 '뱀'의 행방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은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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