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방탄'의 '방'도 못 봤지만, 그날 광화문에서 내가 본 것

¬ìФ´ë지

미국서 온 동생과 함께 간 BTS 공연 광화문 현장 방문기...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에 다가가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역사적인 날을 그냥 보낼 순 없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마침 미국에서 온 동생한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줄 절호의 기회였다.

"광화문 갈래?"

지난 21일 오후 5시 30분께, 나는 의아해하는 동생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 광화문에서 BTS의 역사적인 공연이 열리는 날이잖아."

▲ 광화문 중앙 광장을 향하여

중앙 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과 한참을 서 있다 돌아서야 했던 장소

ⓒ 윤태정

친정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출발. 광화문으로 가는 지하철이나 버스는 이미 통제되었으니 사직공원에서 내려서 광화문까지 걸어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버스 운전 기사님은 사직공원 대신 서울역으로 우회한다고 알려주었다. 차에 올라타는 사람마다 "광화문 가요?"를 물었다. 목적지가 같은 이들끼리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한 배를 탄 기분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나는 길 찾기 지도를 유심히 살피다가 서울역보다는 '서대문'에서 내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기사님께 슬쩍 말씀드렸다. 기사님이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광화문에 가려면 서대문에서 내리세요."

나는 곁에 서 있던 외국인들에게도 "팔로우 미(Follow me, 저를 따라 오세요)"를 건네며 씩씩하게 앞장섰다. 서대문역에서 우르르 나를 따라 내리는 사람들. 걸음이 워낙 빨라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인솔하는 안내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광화문에서 마주한 풍경

부지런히 걷는 동안 야광봉을 든 안전 요원과 경찰관들을 마주쳤다. 삼십 분 남짓 걷자 저 멀리 광화문이 보였다. 급한 마음에 걸음이 더 빨라졌다. 오래 걸어서 숨이 찼지만 조금만 더 가면 광장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

광화문과 가까워질수록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다. 공권력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뉴스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길가 카페 유리창에 붙은 '경찰관, 공무원 20% 할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긴장된 현장 속에서도 따뜻함을 베푸는 상인의 마음씨가 고맙게 보여 얼른 사진으로 남겼다.

▲ 카페 유리창의 할인 문구

고생하는 공무원과 경찰의 노고를 위해 할인해준다는 광고

ⓒ 윤태정

애초부터 무대를 보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늦은 시각에 출발했기에 그저 먼 발치에서라도 역사적인 공연의 현장에 있었다는 '인증샷' 한 장 건지면 족했다. 운이 좋아 전광판으로라도 공연 무대를 보게 된다면 계획은 무조건 성공작이 될 터였다. 몇 발짝 걸음을 떼면 다다를 광화문을 바라보면서 실행에 옮기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아, 중앙 광장이 바로 코앞인데 경찰관들이 우리 앞길을 막아섰다. 얼른 세종문화회관 뒷길로 발길을 돌렸다.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도착하니 당당하게 문을 통과한 티켓을 소지한 이들이 검색대를 지나며 몸수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지런함으로 티켓 발매를 시도한 그들의 행운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기어이 광장 근처까지 가보고 싶어 걷고 또 걸었다. 월드컵 때나 탄핵 집회 때 찾아왔던 광화문 거리의 추억이 떠올라 기대감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2002년 월드컵 경기할 때의 이곳은 축제 분위기로 자유로웠고, 대통령 탄핵 집회 때는 비장함이 감돌던 곳이었다.

이날 광화문 거리는 세계인들이 한 곳에 모여 하나의 마음으로 공연을 즐긴 날로 기억되리라. 빌딩 숲을 돌아 도착하는 곳마다 제지를 당했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걷기를 계속했다. 함께 걷는 이들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는데 하나둘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우리는 방탄소년단이 내세운 희망의 메시지처럼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다. 아, 높은 빌딩을 사이에 두고 빙 둘러 도착한 곳에 또 경찰관들이 막아섰다. 허탈함에 고개를 드니 높은 건물 위에서 넷플릭스의 붉은 로고만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바짝 애가 탔다.

그 와중에도 동생은 거리의 인파가 신기한 듯 연신 셔터를 눌렀다. 가는 곳마다 돌아가라고 길을 막는 바람에 우리는 광장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인파 가운데 일부는 '집으로 가는 길인데 왜 막느냐?'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화문 근처가 집인데 왜 서대문으로, 정동으로 빙 돌아가야 하느냐며 목소리도 나왔으나 안전요원은 그들의 임무에 충실했다.

무대를 볼 수도 없고, 음악도 들리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어야 하나, 집으로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뒤편 치킨집 작은 TV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면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방어벽을 뚫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이미 공연이 시작된 것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RM이 발목 부상을 입었다 해서 걱정했는데 일곱 명 모두 멋진 공연을 보여줘 다행이었다. 곁에서는 한 유튜버의 시끄러운 선동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가만히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당연히 전광판도 무대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알고 보니 일곱 대의 전광판은 주로 광장 안쪽에 설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통제된 외곽 지역에도 화면 하나 쯤 설치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TV 화면 속 방탄소년단을 지켜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다니. 콘서트라면 보통 2시간인데 이번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단 1시간 뿐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시각이었다. 사람이 몰리면 위험하다는 경찰관의 제지에 뒤늦게 집을 나선 나의 실책을 후회하며 발길을 옮겨야 했다.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하려 애쓴 날

▲ 광화문에서 마주한 이모저모

1.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만난 태국 소녀들의 사진을 찍어주다 2. 안타까운 마음으로 먼 발치에서 목적지를 향해 바라보는 필자 3.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가려는 인파에 둘러싸인 현장의 열기 4. 가게에서 틀어준 TV 화면 속 BTS의 공연을 시청함

ⓒ 윤태정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는데 마당에 설치된 낡은 전차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태국 소녀들을 만났다. 광장 진입을 포기한 그들은 여기서라도 한국의 정취를 즐기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서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나는 그들의 예쁜 모습이 추억으로 남을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주었다.

솔직히 나는 BTS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190여 개국에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문화 대사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공백 기간이 길었음에도 '아미(ARMY)'의 결속을 그대로 유지한 방탄소년단의 역할은 중요하다.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로 유명해진 BTS를 알게 된 건 2021년 유엔의 초청으로 총회에서 연설했을 때였다.

스무 살에 노래를 시작한 그들이 3년 9개월이라는 공백 기간을 넘어 이제는 서른에 완전 합체를 이뤘다는 사실. 해체하기는 쉬워도 합체하기는 어려울 텐데도 초심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컸을까.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신곡을 발표하고 춤과 노래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연습에 연습이 이어졌을 것이다. K컬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혼신을 기울이느라 발목 부상을 입었음에도 이상 없이 공연이 진행되어 다행이었다.

큰 경제 효과를 가져오고, 우리의 얼이 담긴 '아리랑'을 전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한 젊은 그들이 대견하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들게 해준 그들의 역할을 새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광화문 거리를 세계 만방에 보여주는 위대한 일을 한 젊은이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밤낮으로 안전에 힘쓰느라 고심했을 경찰관, 소방관, 공무원과 안전 요원의 땀 흘린 노고에도 감사한다.

공연을 둘러싸고 들려오는 온갖 쓴소리도 잘 수렴하여 앞으로 더욱 멋진 공연의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쪼록 건강을 잘 챙겨서 고양시와 부산시에서 있을 공연과 세계 34개국으로 이어질 공연도 성황리에 마칠 수 있기를 응원한다. K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대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그들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며, 한국의 위상도 더욱 높아지기를 바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은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언니, 그래도 광화문 공기를 마시고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다는 게 어디야!"

나는 이날 광화문에서 방탄의 '방'자도 못 보고, 신곡 스윔(Swim)의 '스'자도 못 듣고 왔다. 하지만 긍정의 화신답게 생각하련다. 그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을 함께하려 애썼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던 하루였다고.

¹ì‹ 2026´ëª…궁금˜ì‹ ê°€

지ê¸ë°”로 AI가 분석˜ëŠ” 가•교¬ì£¼ 리포¸ë 받아보세

´ëª… œë‚˜ë¦¬ì˜¤ •인˜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