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눔이 만든 따뜻한 한 끼... 거창하지 않아도 따뜻함 주고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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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당근에 올린 "봄동 비빔밥 먹고싶어요"
ⓒ 박보현
"당근!"
알림 소리에 습관처럼 폰을 들여다보니 "재료부족) 봄동 비빔밥 먹고 싶어요"라는 게시물이었다. '오, 이런 나눔도 올리네? 봄동 비빔밥이 진짜 유행이긴 한가 보다' 하고 흘려보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제발 부족한 재료 좀 나눠주세요'라는 절절한 호소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아 다시 들여다보니 댓글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 보자. 멸치액젓, 매실청... 마침 집에 있는 재료들이라 주섬주섬 챙겨 메시지를 보내고 문을 나섰다.
길을 걷다 보니, 문득 내 이십대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나는 보증금 100만 원, 월세 10만 원짜리 방에서 살았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어 첫 직장에서 월급을 가불받아 보증금을 마련했고, 경남 진주시 비봉산 자락 단독주택 한구석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가끔 지네가 나타나 놀라기도 했지만 커다란 정자나무와 정겨운 할머니들이 반겨주는 곳이었다.
지금보다 먹성이 한 다섯 배는 더 좋았던 그 시절, 밥할 줄도 모르고 귀찮아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차, 직장 상사의 마음씨 좋은 아내분이 하시던 '소박한 밥상'에서 반찬을 얻어먹곤 했다. 연근조림, 갓 담근 김치, 부침개까지. 2000년대 초반, 반찬을 사 먹던 시대가 아니었던 만큼 그 반찬들이 얼마나 맛있고 소중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나를 먹여 살린 어른들의 손길 덕분에 청춘의 고단함이 퍽 잠잠해졌으리라.
"당근에 나눔을 올려보자"
진주시 칠암동의 한 카페에서 지우(가명)씨를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나눔을 한다는 상황이 어쩐지 좀 낯설고 무섭기도 해 친구 두 명과 함께 나왔다고 했다. 경계심과 고마움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는 매번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상이 지겨웠고 한 끼에 만 원 넘는 외식은 부담스러워 학생 식당을 이용하지만 허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강호동이 봄동 비빔밥 먹는 걸 보는데 진짜 너무 맛있게 먹더라고요, 나도 해 먹고 싶었어요."
결국 봄동 비빔밥의 유혹을 참지 못해 큰마음 먹고 마트에서 봄동 한 포기를 샀지만 액젓과 매실청, 계란은 없었단다.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자취 살림에 다양한 양념을 갖추는 일이 쉽지 않을 터, 고민 끝에 봄동을 라면에라도 넣어야 하나 하던 중 친구가 "당근에 나눔을 올려보자"고 했단다.
지우씨는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에서 생활하며 수업이 있는 가좌캠퍼스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해 교통비를 아끼고 있었다. 관리비 없는 방세는 저렴했지만 생활비 부담은 여전히 컸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술집 주변 소주 판촉 아르바이트였다. 어떤 점이 힘든지 물었다.
"정해진 시간 없이 내가 가능한 시간을 체크하면 그만큼만 일할 수 있어 좋고, 걸어 다니면서 운동 겸 일하는 거라 사장님 눈치 안 보고 더 좋아요. 최저시급보다는 몇천 원 더 많고요. 겨울이 오히려 더 좋아요. 걸어 다니면 몸에 열이 오르면서 따뜻해지거든요. 여름이 진짜 힘들죠.
다니는 곳이 술집이다 보니 술기운이 오르면 사람들이 '술맛 떨어진다', '저리 가라'고 말할 때면 기가 죽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요. 그래도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따뜻하게 말해주는 분들도 있긴 해요. 그런데 생활비와 주거비 부담이 조금만 줄어도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펙도 쌓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기대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작은 나눔이 이어지는 사회
지우씨에게 청년 월세 지원 제도를 신청했는지 묻자 씁쓸하게 말했다.
"작년에 신청했는데 떨어졌어요. 매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생애 딱 한 번만 지원하는 거라. 저는 소득이 없지만 부모님 소득 기준 때문에 떨어졌어요. 다음에 또 해봐야죠, 뭐."
우리나라 청년 중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2022년 기준 약 36만 명. 전체 환자의 36%를 차지한다. 취업과 진로, 일상 모두 어렵다. 단순히 나약하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청년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쉽게 건네지지만, 월세와 생활비, 학비를 감당하며 하루를 버티는 현실 속에서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느껴지는지, 지우씨의 모습이 말해주었다. 소셜미디어에는 화려한 일상이 넘쳐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벅차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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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씨가 완성한 봄동비빔밥
ⓒ 박보현
그와 헤어진 뒤 몇 시간 만에 사진이 도착했다. 친구들과 봄동 비빔밥을 해 먹었다며, 잘 비빈 비빔밥 위로 손 하트를 한 모습이었다. 청춘은 이렇게도 아름답다.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은 생계가 어려운 국민에게 먹거리와 생필품을 지원하는 '그냥드림사업'을 확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는 "배고픈 게 얼마나 서러운지 가족들 끌어안고 죽는 사람도 있다"며 "신속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신청 여부나 소득 제한 없이 1인당 3~5개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지원하는 이 사업은 꼭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호다.
작은 나눔이 이어지는 사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고 거창하지 않아도 따뜻함을 주고받는 당근에서 만난 지우씨의 봄동 비빔밥 한 끼가, 그리고 내 스무 살 무렵 반찬 한 접시가 건네준 온기가 그런 풍경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디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