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타고 유럽] 모젤강 따라 가본 엘츠성과 코헴성
3월 1일부터 9일까지 중부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대중교통 대신 렌터카를 선택해 다양한 지역을 달렸습니다. 여정 중 만난 인상적인 풍경과 이색적인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작년 중순, 우연한 기회로 올해 3월 출발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항공권을 저렴한 가격에 구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이번 여행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계획하고 싶었다. 잘 알려진 도시 대신 렌터카를 이용해 좀 더 다양한 지역을 찾아가기로 했다.
여행지를 찾아보던 중, 모젤강 여행에 대한 글을 접했다. 아름다운 강물과 그곳을 따라 자리한 고성들. 사진으로 본 풍경은 동화처럼 느껴졌고 그 길을 직접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젤강은 프랑스에서 시작해 룩셈부르크를 거쳐 독일 서부를 따라 흐르다 라인 강으로 합류한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포도밭과 곳곳에 자리한 고성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나는 모젤강의 대표적인 두 고성, 엘츠성과 코헴성을 방문했다.
850년 간 함락되지 않은 성, 숲 속의 엘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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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강으로 향하는 길, 강변에 다다르자 안개가 파도처럼 몰려오더니 차를 덮쳤다
ⓒ 최한결
이른 아침,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곧바로 모젤강 방향으로 향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넓은 평야가 펼쳐졌고, 어느 순간 강에 가까워졌는지 안개가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안개를 뚫고 산길을 달려 약 1시간 20분 만에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주 비어헴(Wierschem)에 위치한 엘츠성(Burg Eltz) 주차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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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엘츠성으로 걸어가는 길, 빽빽한 나무 사이로 푸른 계곡이 흐른다
ⓒ 최한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표지판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높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새들이 끊임없이 지저귀는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빽빽한 나무 사이 아래로 푸른 물이 흐르는 모습은 우리나라 산의 계곡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숲 길을 걷자 마침내 엘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잔잔하게 남아있는 안개와 뿌옇게 번지는 햇살 사이로 갑자기 나타난 엘츠성은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살 것 같았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엘츠성은 1965년부터 1992년까지 독일 지폐에 등장하기도 했다.
▲ 엘츠성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엘츠성, 아름다운 모습으로 한때 독일 500마르크 지폐에 등장했다.
ⓒ 최한결
1157년 완공된 엘츠성은 약 850년의 시간 동안 단 한번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성 가운데 하나다. 직접 마주해보니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성문으로 향하는 단 하나의 다리를 제외하면, 사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아래로는 모젤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완공 이후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엘츠 가문이 성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여러 시대의 변화 속에도 한 가문이 33대에 걸쳐 성을 소유하고 거주해왔다는 점은 유럽에서도 드문 사례라고 한다. 엘츠성은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 역시 과거 가구와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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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츠성으로 향하는 초입 표지판. 3월 29일까지 내부는 관람 불가다
ⓒ 최한결
다만 이날은 내부 관람이 불가능했다. 엘츠성은 매년 겨울이면 휴관에 들어간다. 중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난방이 어렵고 숲 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안전 문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시설 점검과 유지보수가 진행된다. 이때에도 성 외부에 보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부 관람은 오는 29일부터 재개된다.
비록 내부 관람은 못 했지만, 성 외부를 둘러보려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았다. 또 계곡과 숲을 따라 걷는 하이킹 코스 덕분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즐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 정면에서 바라본 엘츠성
정면에서 바라본 엘츠성. 외곽 보수 작업을 하는 중이다
ⓒ 최한결
강변에 우뚝 솟은 코헴성의 전망 포인트
엘츠성 관람을 마치고 코헴(Cochem)으로 향했다. 엘츠성에서 코헴까지는 모젤강을 따라 약 40분을 달리면 닿는다. 코헴은 규모 작지만 로마 제국 시대부터 유명한 와인 산지로 이름을 알려온 유서 깊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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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사이 우뚝 솟아있는 코헴성
ⓒ 최한결
모젤강을 내려다보는 코헴성(Reichsburg Cochem)은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11세기에 지어졌으나, 17세기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현재의 코헴성은 1868년에 재건된 모습이다. 숲 속에 숨겨진 엘츠성과 달리, 탁 트인 강가와 포도밭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코헴성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다만 나는 성 내부보다는 코헴성과 모젤강을 한눈에 담고 싶어 다른 전망 포인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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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크로이츠로 올라가는 길. 리프트가 있지만 동절기에는 운휴다.
ⓒ 최한결
코헴성을 마주 보고 있는 산, 해발 225미터 높이의 전망대 피너크로이츠(Pinnerkreuz)다. 아직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어서, 구글 지도에도 정보가 많지 않다. 원래는 마을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리프트가 운영되지만, 겨울에는 강풍 등 안전 문제로 운행이 중단된다.
정상에는 십자가가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1820년대 이곳에서 양과 염소를 돌보던 목동 '핀'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위험한 곳에 올라간 양을 구하려다 그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의 이름을 따 '피너크로이츠'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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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크로이츠. 목동 '핀'에 대한 이야기와 그를 기리는 십자가
ⓒ 최한결
직접 걸어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팔랐지만, 30분 남짓 이어지는 오르막 끝에 그만한 보상이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코헴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강을 따라 이어진 마을과 포도밭, 그리고 그 위를 굽어보는 성까지, 중세 마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특히 모젤강을 따라 오가는 기차와 강 위를 천천히 가로질러가는 화물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이 왜 과거부터 중요한 요충지였는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헴이 '모젤강의 작은 보물'이라 불리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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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헴성과 코헴 마을. 강을 따라 화물선이 수시로 오간다
ⓒ 최한결
모젤강 근처에는 엘츠성과 코헴성 이외에도 메테르니히 성(Burg Metternich), 튀랑트 성(Burg Thurant) 등 수많은 고성이 자리하고 있다. 강을 따라 운전하며 예상하지 못한 순간 또 다른 성을 마주하고 뒤늦게 이름을 찾아본 경우도 있었다. 이 지역이 과거부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성들은 동절기에 운영을 중단했다가 3월 말, 4월부터 다시 문을 연다. 고성에 관심이 있다면, 봄을 맞아 모젤강을 따라 직접 달려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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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크로이츠 전망대에서 바라본 코헴성. 누군가가 사랑을 기리는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 최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