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악(惡)을 위한 약(藥)
▲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저자, 잭 엘하이 / 영화 "뉘른베르크"의 원작 논픽션
ⓒ 히포크라테스
"우리가 이 잔혹한 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어온 모든 것을 나는 의심하게 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나치 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을 호송하던 미 육군 항공대 보 포스터 대위가 남긴 회고다. 그는 비좁은 파이퍼 L-5 비행기에서 괴링과 55분간 독대하며 중요한 사실을 직감했다.
바로 인류 최악의 악으로 규정된 이들이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수백만을 학살한 주범들의 뇌 구조가 일반 시민과 유사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악인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80년이 지난 현재, 이 섬뜩한 결론은 전 세계를 뒤흔드는 전쟁의 현장 위로 그대로 겹쳐진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에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한 전쟁을 500일 넘도록 이어가는 중이다. 이 둘을 지지하는 국민은 자국 내에서도 다수를 이룬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을 통해 선거를 미루고 있고,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강력한 결집 속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유가가 오르는 지금도 미국 시민의 40% 정도 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 많은 세계 시민들은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악이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학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일부 사람들은 어째서 죽음을, 악(惡)을 지지할까? 이들도 정말 악한 걸까?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이와 같은 의문에 경고 어린 답을 던진다. 더글라스 켈리 박사는 자신이 맡았던 나치 고위층 포로들을 약 1년에 걸쳐 심층 면담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치 제국 2인자 헤르만 괴링의 정신을 집중해서 추적했다.
기록은 상세하다. 괴링이 중독됐던 파라코딘 알약의 개수, 켈리와 함께 진행했던 로르샤흐 검사(잉크 반점 검사)의 순간, 그의 가족에게 쓴 편지의 문체까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 안에서 괴링은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켈리 박사마저 매료시킬 정도로 인간적인 매력을 갖춘 자였다.
게다가 나치들은, 그 가운데 가장 엘리트이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들조차도, 괴물도 아니고 악행을 저지르는 기계도 아니었으며 영혼과 감정이 없는 로봇도 아니었다. 가족을 걱정하는 괴링, 시를 사랑한 시라흐, 압박 속에서 두려움을 드러낸 칼텐브루너의 모습은 켈리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가 다루었던 옛 수감자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는 감정과 반응을 지녔다는 점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면담 과정을 통해 나치 전범들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감방 안에서 불안과 기억상실, 망상에 시달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가족을 걱정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대담하게 자신의 범죄를 '국가를 위한 헌신'이라며 항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전쟁을 벌이며 내보내는 이란의 핵 억제나 긴급한 위험 같은 메시지와 묘하게 겹친다.
누구라도 악을 이끌 수 있고, 누구라도 악을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지위를 잃지 않는다. 학살자들에 대한 분노나 증오 대신, 냉철하고 건조한 분석을 유지한다. 켈리의 시각에 따르면 나치는 특별한 악의 조건을 갖춘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나 품고 있는 욕망과 야망을 '제 3제국 건설'이라는 특수 프로젝트를 위해 통제 없이 가동한 집단일 뿐이었다. 켈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히틀러가 없으면 이 사람들은 비정상도 아니고 변태도 아니며, 그렇다고 천재도 아닙니다. 이들은 공격적이고 영리하며 야심 차고 냉혹한 여느 사업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사업이 세계 정부를 세우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이 문장에 주어를 트럼프나 네타냐후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다. '세계 정부'는 더 강한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치환될 수 있다. 옛날 독일 국민의 잔상은 현대의 미국과 이스라엘 국민에게서 묻어난다. 그는 나치 정권을 지지한 독일 국민들의 특징을 소개한다.
나치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정신병도 특정하지 못한 채, 켈리는 마지못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전범들처럼 행동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은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악의 버튼은 특정인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머릿속에 시한폭탄처럼 내재해 있다. 켈리 박사는 훗날 괴링과 마찬가지로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했다. 켈리와 괴링은 교차점이 많았다. 카리스마와 야심, 목표를 향한 무서운 집착 등. 뉘른베르크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던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정신마저 공유했다.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은 괴링, 타인과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악의 실체를 대면하다가 파멸한 켈리의 끝은 같았다.
그의 죽음은 악과 선의 교집합을 찾아낸 자가 마주한 절망의 깊이를 보여준다. 누구라도 악을 이끌 수 있고, 누구라도 악을 따를 수 있다.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는 참극은 악을 이끄는 자와 악을 따르는 자들이 펼치는 과거의 재현이다.
감정의 중추인 시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지적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로 사고할 수 없다는 점은 확립된 과학적 사실이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 전체를 뇌의 감정 중추인 시상으로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괴벨스, 슈트라이허, 라이 같은 선전가들의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혐오의 정치는 지도자 개인의 악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야망을 승인하고, 내면의 이기심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대중의 지지가 있을 때 비로소 악은 가동된다. 감정에 매몰되어 이성으로부터 눈을 감아버린 집단은 악이라는 공장의 공장장이고 노동자다.
80년 전 뉘른베르크의 나치 면담 기록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지지하는 그 야망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직시할 준비가 되었는가.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2가지로 갈리는 약을 줬다. 준비되어있다면 병을 고치는 쓴 약이, 외면하면 청산가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국제 사회가 이 약을 더 늦기 전에 삼키길 바란다. 중동에서 재현된 악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시민들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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