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년 동안 한 실험...인공지능이 나보다 잘 쓴다 한들, 내 손으로 쓰는 일 포기하지 않을 것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이제까지 내가 쓴 글의 95%는 챗GPT가 쓴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페이스북에 내가 쓴 10년 치의 글을 하루 5개씩 주고 챗GPT를 학습 시켰다. 그것을 기반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나 문체의 특징, 그리고 지향하는 바 등등을 함께 꽤나 깊게 이야기 나눴다.
그 후에 내가 주제를 던져주었고 쓰게 했다. 챗GPT가 글을 쓰면 내가 합평을 해주었다. 이런 부분은 좋고, 이런 부분은 아쉽고, 이런 부분에서는 무척 나 같고, 이런 부분은 나와는 다른 지점이다 하면서 굉장히 꼼꼼하게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들여서 이 작업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제 챗GPT는 내가 주제만 던져줘도 거의 나와 같이, 아니 나인양 글을 쓴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겠냐?'라고 한다(진짜겠냐? 그랬겠냐?...). 그럴 리 없다는 뜻이다. 나도 그렇다. '내가 쓴 글의 95%는 챗GPT가 쓴 것'이라는 말은 다분히 과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과장할 만큼 내가 한 실험은 진지했고, 또 사실이었다. 하루에 다섯 편씩 내 글을 읽히고, 그걸 바탕으로 챗GPT가 쓴 글을 내가 합평해주고, 왜 나 같고 왜 나 같지 않은지를 오래 붙들고 이야기 한 것 말이다.
챗GPT가 쓴 글, 내가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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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나를 대체할 '대필봇'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글을 쓰고 최종 검토할 때 챗GPT에게 맞춤법 체크를 부탁하고 피드백을 요청하기는 하니까, 그런 식으로 내 글을 학습시키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던 와중에 호기심으로 몇 번 테스트 삼아 '나처럼' 글을 써보라고 했는데, 분명 나처럼 쓴 것 같아 보이기는 한데, 문제는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나 맥락을 제법 구사하나 그걸 로봇처럼 읽는 필체가 나온다고 할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오늘도 삶의 무게를 느끼며 글 앞에 앉는다. 글쓰기는 나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도구이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결국 글이란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우리는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쓴 것 같지는 않다. 너무 반듯하고, 너무 안전하고, 무엇보다 틈이 없다.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걸 보며 사실 실망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더 진했던 것 같다.
휴, 아직은 내가 쓰는 게 훨씬 낫긴 하구나라면서. 물론 '파나마 프로젝트(수백만 권의 책을 잘라 한 장씩 스캔해 AI를 학습시킨 앤트로픽의 대규모 데이터 구축 작업)를 거친 클로드로 진작 이 짓을 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장강명의 르포 <먼저 온 미래>로 독서토론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작가님은 책도 쓰시고 글쓰기 모임도 하시고 교습소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글쓰기도 가르치잖아요. 쓰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인데 만약 AI가 계속 발전해서 문학이나 에세이 같은 분야에서도 높은 퀄리티를 낸다면 그때도 계속 글을 쓰실 건가요?"
사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명징해진 지 오래다. AI가 나보다 글을 잘 쓰는 것과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건 마치 메시나 호날두가 나보다 축구를 잘하는 것과 내가 오늘 저녁 동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이 아무 상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축구는 직업이고 생계이며 기록이고, 어쩌면 역사상 최고라는 이름에 닿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다. 하지만 나에게 축구는 그저 한 주를 버티게 해주는 기쁨이고, 몸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가 축구를 더 잘한다 해서 해서 내가 축구를 그만둘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AI가 더 잘 쓴다는 게 내가 글을 그만 써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내일도 나는 내가 쓸 것이다
AI가 소위 '고전' 반열에 들어가는 문학 작품을 1분에 100개씩 쏟아 놓으면 과연 이 생태계는 어찌 될 것이고, 소설가는 어찌 되는 것이며, 그 창작을 통해 입증되는 '창의성'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성역에 대한 위협은 어쩌란 말인가, 라는 이런 전망들이 내가 오늘 하루치의 글을 쓰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누구와 겨루기 위함이 아니다. 이 인류의 활자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싶음도 아니다. 그저 나의 존재 방식으로서, 오늘 쓰는 것이 쓰지 않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믿기에 하는, 행복을 향한 확실한 다가감일 뿐이다.
물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글을 쓸 것이고, 누군가는 인정받기 위해 쓸 것이며, 누군가는 막막한 첫 문장을 넘기기 위해, 혹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AI의 도움을 깊이 받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사용할 때도 있다. 다만 오늘 하루의 일용할 글만큼은, 끝내 내가 내 손으로 쓰는 것으로 지키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쓴다. AI가 100편을 쓰는 동안 고작 나는 한 편을 쓰는 날이 와도, 여전히 내가 썼으면 한다. 그 한 편은 내가 살아낸 기록이니까.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여기까지 써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나는 내가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