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5번, 성인은 10년마다... 잊혀진 파상풍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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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이게 뭐지?"
"왜, 어디 다쳤어?"
방 정리를 하던 딸이 갑자기 욕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갔더니 세면대에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뭐가 있었나 봐. 상자가 너무 커서 발밑이 안 보였어."
피가 보이는 데도, 딸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물로 상처를 씻어 냈다.
딸은 어려서부터 웬만큼 아파서는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넘어져 다쳐도 열이 펄펄 끓어도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두 돌을 좀 넘긴 때였다. 혼자서 블록을 가지고 신나게 놀던 아이가, "엄마, 추워"라고 하길래 열을 재 보니, 39도가 훌쩍 넘어 40도에 육박했다. 깜짝 놀란 나는 아이를 업고 동네 소아과로 달려갔다.
그런 딸이 '어어!' 이렇게 소리를 낸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딸의 방에 가봤더니 바닥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다. 미련한 건지 정말 아프지 않았던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나는 냉큼 거실 한쪽 구석에 있는 약상자를 가져왔고, 남편은 딸이 다친 이유를 찾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 딸에게 큰 상처를 준 슬랩 롤러(Slap Roller)
슬랩 롤러는 도자기를 만들기 전 흙덩이를 고르게 펴주는 역할을 한다.
ⓒ 김효숙
남편은 딸의 방에서 둥글고 긴 봉 두 개가 계단처럼 달린 기계를 들고 나왔다. 슬랩 롤러(Slap Roller)라고 하는데 흙덩어리를 평평하게 펴줄 때 쓴다. 2년 동안 도자기 공방을 하다 얼마 전에 문을 닫고 말았는데 그때 처분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온 녀석 중 하나다. 커다란 상자를 옮기다 롤러가 옆으로 넘어진 줄도 모르고 손잡이에 연결된 쇠 막대를 콱 밟았다고 했다. 내 눈에 매끈해 보였는데 딸의 얘기를 듣고 슬쩍 만져보니 모서리 부분이 날카로웠다.
남편은 쇠에 찔렸으니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펄펄 뛰었다. 딸은 별일 아니라며 소독하고 약 바르면 된다고 맞섰다. 남편은 피가 나는 딸의 발가락을 보더니 상처가 덧나기 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난리였다. 딸은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질병관리청에 접속해서 회원가입을 하고 예방접종 이력을 찾아보았다. 딸은 최근에 주사를 맞은 것 같다고 우겼지만, 2007년 이후로는 접종 기록이 없었다.
딸은 스마트폰으로 파상풍에 관해 알아보더니 그 부분이 녹슬지는 않았지만, 주사를 맞는 게 마음 편하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무서운 파상풍균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파상풍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는 흙에 있는데 피부나 점막의 상처로 들어가서 발생한다. 녹슨 못에 찔리거나 동물에게 물려도 감염될 수 있으며 상처가 나거나 피어싱이나 문신을 통해서 또는 곤충에 쏘였을 때도 감염될 수 있다. 파상풍균에 감염되면 두통이나 미열, 오한 등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근육이 뻣뻣해지거나 호흡이 곤란해져 사망할 수도 있다.
만약의 경우이긴 하지만 파상풍균은 생각보다 무서운 녀석이었다. 그러니 태어나 두 달부터 두 달 간격으로 세 번, 아장아장 걸을 무렵에 한 번, 아이가 입학할 무렵에 또 한 번 그리고 중학교 다닐 때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도 끝이 아니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도우미는 성인이 되고 나서 10년마다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딸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평소처럼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우리 모녀가 일주일에 딱 한 번 필라테스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딸은 상처를 앞세워 슬렁슬렁하려고 했지만, 강사님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 상체 운동을 하면 된다면서 한 시간 내내 기구에 앉아 팔과 어깨 배를 이리저리 비틀고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진땀을 한 사발은 빼고 나서야 운동이 끝났다. 우리는 괜히 국물부터 마셨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밖으로 나오니 11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나는 멀쩡해 보이는 딸과 그냥 밥이나 먹고 집에 가려다 귓가에서 울려대는 남편의 잔소리 때문에 동네 소아청소년과로 향했다. 처음에는 근처에 새로 생긴 내과로 갈까 하다가 10여 년 전 우리가 이사 왔을 때부터 함께한 의사 선생님에게 주사를 맞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우리는 걸음을 서둘렀다.
▲ 사계절 문전성시를 이루는 우리 동네 소아청소년과
딸과 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간 동네 소아청소년과
ⓒ 김효숙
병원에 도착하니 11시 45분. 병원은 한산했다. 간호사에게 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왔다 하니, 그동안 주사 맞고 부작용은 없었는지 오늘 몸 상태는 어떤지 묻는 질문지에 답을 적어 내라고 했다. 그런 종이를 받으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리 떨리는지 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 이상 증상이 있는 건 아닌지 이번 주사에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간신히 빈칸을 다 채우고 나자, 우리 이름을 불렀다.
딸 덕분에 언제 할머니가 되어도 걱정이 없다!
진료실에서 차트를 보던 선생님은 우리 모녀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두 분은 어떤 일로 같이 파상풍 주사를 맞으려고 하시나요?"
딸이 어제 쇠로 된 물건을 밟아 피가 났다고 하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녹이 슬었나요? 상처는 얼마나 깊은가요?"
딸의 상처를 본 선생님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감돌았다. 그 순간 잔뜩 힘이 들어갔던 내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갔다. 의사 선생님은 파상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진짜로 녹슨 못에 발바닥을 찔리거나 하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 다음엔 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곤 나를 쳐다보았다.
"전 딸이 오기 싫다고 할까 봐 같이 왔어요. 예방 차원으로 좋을 것도 같고요."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웃으면서 잘 왔다고 했다. 한 번 맞으면 10년 동안은 지저분한 흙이나 녹슨 못, 그리고 반려동물에게 물려서 상처가 생겨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요즘엔 손주를 봐주는 조부모들이 많은데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삿바늘이 어깨에 들어갈 때 따끔했지만 독감 주사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붙여주는 귀여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동그란 스티커를 붙여주며 오늘 하루만 술 마시지 말고, 샤워도 참으라고 했다. 10년 동안 마음 편히 살 수 있다는 데 그 정도쯤이야 참아줄 수 있다.
한 사람에 5만 원씩 1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지만 뿌듯했다. 남들보다 먼저 혜택이 아주 많은 보험을 들어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내 딸이나 아들은 아직 결혼 예정은 없지만 언제 어느 때 손주가 생겨도 덥석 안아줄 수 있겠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딸내미 덕에 준비된 할머니가 되었다.
내 주변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도 많고, 자식이 결혼한다고 연락하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때문에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반려동물과 건강하고 즐겁게 살려면 그리고 귀여운 손주를 안아주려면 파상풍 주사부터 맞는 게 순서라고 친구들에게 빨리 알려주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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