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즈음 된 아기와 초보 부모... 당황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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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100일의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아빠입니다 에서 이어집니다.)
생후 6일째 되던 날, 별헤는 방에서 거실로 처음 진출했다.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휘둥그레지는 눈을 보고서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공간의 변화를 인식한다며 그저 신기해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넘도록 별헤에게는 잠깐의 환기 때 들어오는 공기와 두터운 이중창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광경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80일쯤 되었을 때 '이제 슬슬 진짜 자연을 맛보게 해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교육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아빠의 갑갑함도 한 몫했을 것이다. 아기에게는 혹한의 상황인 데다가 생애 최초의 외출이다 보니 신경 쓸 것이 참 많았다. 갖가지 정보를 찾아보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첫 나들이 준비
조카들이 거쳐 간, 누나에게 물려받은 유모차를 점검했다. 물려받기를 즐겨하는데,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용하던 이의 삶과 물려주는 마음이 깃들어있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 간단히 청소하고 영상과 책자를 이용해 사용법을 익혔다.
여전히 부드럽게 잘 굴러갔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부분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인조 가죽으로 된 안전바 싸개였다. 재질이 재질인지라 해진 부분이 가루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호환되는 제품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이내 화면을 덮고 반짇고리를 꺼냈다. 안전바의 길이가 수건의 가로와 얼추 비슷해 보여 돌돌 말아서 꿰매면 기존 제품보다 더 폭신한 촉감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죽용 실은 나름 익숙했는데 얇은 실은 오랜만이라 도중에 엉켜서 두 번이나 끊고 다시 시작하는 바람에 프랑켄슈타인 캐릭터의 이마 봉합선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기능적으로는 의도한 바를 벗어나지 않아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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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을 완성하여 옷을 입힌 안전바
ⓒ 안사을
어른의 여행이야 뭔가 부족하면 대충 때우면 되지만 3개월을 겨우 지나고 있는 아기를 데리고서는 빈틈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적절한 온도의 살균된 물로 분유를 타야 하는 것부터 일이었다.
처음 병원에 갈 때는 젖병 두 개에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 물을 살균된 상태로 가져가서 배합 했다. 온도계도 챙겨갔다. 참으로 번거롭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배터리로 작동하는 보온 물병을 하나 장만했다.
대망의 첫 나들이 전날 밤, 꼼꼼한 아내에게 챙겨야 할 목록을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새벽 교대 시간 식탁을 보니 아래와 같이 친절한 설명서가 마련되어 있었다. 보이기 쉬운 곳에 부착해두고 지금도 애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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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만든 간이 설명서
ⓒ 안사을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
출발하자마자 당황했다. 신생아 시절 병원에서 집으로 왔을 때나, 첫 번째 예방 접종 때 병원을 오고 갔을 때나, 바구니형 카시트에만 앉혀 놓으면 그곳이 집안이든 차 속이든 잠에 빠져들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날은, 아니 이날부터 지금까지 쭉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찡찡거리더니 차가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생각해 둔 목적지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야 잠이 들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잠든 아이를 깨울 수 없었던 것이다.
차를 최대한 속도 변화 없이 천천히 몰았다. 둑길이라 가능했다. 깨지 않을 정도로 곤히 잠든 듯하여 우리의 점심거리도 살 겸 햄버거 가게 앞에서 잠깐 멈춰 먹거리를 주문했다. 3분 쯤 흘렀을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째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멈춘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 아들 녀석이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카운터에 문의하니 10분 내로 포장이 완료된다고 했다. 다시 차로 뛰어갔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최대한 일정한 속도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다시 돌아와 음식을 받기 위해 잠깐 멈출 때는 깨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미궁에 빠졌다. 어쨌든 정속 주행으로 차를 움직이면 그나마 숙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이가 자야 할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곳에서 한참을 벗어난 곳까지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치명자산 성지였던 목적지를 지나, 신리역, 상관면 일대, 다시 신리역, 화심마을을 거쳐 소양면 위봉사까지 가게 되었다.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밥 때가 되어(오후 3시) 차에서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잘 먹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 돌린 것도 잠시, 아이의 엉덩이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세 번에 걸친 분출. 소리만 들어도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아내의 나지막한 외침이 들렸다. 아이가 놀랄까 봐 상당히 음량을 낮췄지만 분명히 비명에 가까웠다.
"똥 샌다!"
기저귀 뒤편, 그러니까 등까지 똥이 올라와 옷을 적시고 있었다. 입으로는 먹고 있고 뒤로는 산사태를 내고 있는, 하지만 표정은 평온한 아이. 그리고 조금만 더 압력을 가하면 용암처럼 주루룩 흘러내릴 기세라, 자세를 고치지 못하고 사색이 된 아내의 얼굴이 시트콤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
당연히 기저귀와 여분의 옷을 챙겨왔지만, 차에서 엉덩이를 닦고 똥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평소에 들고 다니던 담요가 있어서 깔고 아이를 눕혔다. 자칫하면 먹은 분유가 역류할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원래 똥을 싸면 바로 물로 씻겨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물휴지로 뒤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아기는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담요에 묻은 대변이 다시 몸으로 회귀할 수 있기에 좁은 차 안에서 똥과 사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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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의 전투 후 평온을 찾은 모습
ⓒ 안사을
사태가 진정되자 아이와 놀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아내가 예전에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초등학교가 근처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카시트에 다시 아이를 태우고 갖가지 짐을 갈무리하여 10분 거리인 송광초등학교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이와 산책하기 딱 좋은, 아담한 정원이 있었다. 바닥도 블록이 깔려있어 유모차를 밀기에도 편했다. 생애 처음으로 타지에 나온 아이의 표정이 다채로웠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를 유심히 보던 아이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 웃는 표정
절기상 봄이었지만 기온과 체감온도가 낮아 겨울옷으로 무장했다.
ⓒ 안사을
당황했던 경험이 쌓여 노하우로
그렇게 첫 나들이의 과정은 매우 요란스러웠지만, 보람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후 나갔던 두세 번의 여정 또한 순탄치는 않았으나, 앞으로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되었다. 피해야 할 것,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고 효율적인 시간 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 최근에는 평화로운 소풍에 성공했다.
100일을 넘긴 요즘 하루에 한 번은 꼭 집 근처를 산책한다. 공기 질이 좋은 날은 아기띠만 하고 동네 마트에 다녀오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길게 이동하여 우거진 숲을 거닌다. 편도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다. 본격적으로 자야 하는 시각이 되기 전 시내를 미리 통과해두면 이동하는 시간에 아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낮잠을 잘 수 있다.
▲ 간단한 요령
평소 집에서의 시간과 나들이 때 적용하는 방법을 정리한 표
ⓒ 안사을
아이가 부모의 품이나 주행 중인 카시트 없이도 낮잠이 들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게 되면 좀 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할 듯하다. 그때까지는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움직여야 하겠지만, 어떻게든 함께 자연을 만나고자 머리를 짜내는 이 과정 또한 재미와 추억이 된다.
조만간 봄꽃이 만발하고 새로운 연둣빛이 온 나뭇가지 끝에서 터져 나올 것이다. 세상에 새싹으로 태어난 이 녀석이 대자연의 새 단장을 처음으로 경험할 날을 기대한다. 그때 이 아이의 눈동자는 또 얼마나 신비한 빛을 띨 것인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