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리무진 버스-택시로 딸네 집까지... 치열하게 지금을 붙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주도 출신 아이돌이 누구인지, 요즘 어떤 유명인이 화제인지 나보다 소식이 더 빠른 우리 엄마. 올해 팔순인 엄마는 스마트 기기를 쓸 줄 알아야 젊어진다며 늘 휴대폰 사용법을 물으신다. 매일 유튜브로 건강 강의를 챙겨보고 네이버 뉴스를 정독하는 엄마는, 가만히 앉아 자식들이 해주기만을 바라는 노인이 아니었다.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엄마의 이런 '치열함'은 이번 육지 나들이에서 빛을 발했다.
홀로 용인에 오신 팔순 엄마
제주도에 사는 친정엄마는 작년 무릎 수술을 하였다. 자식들은 다 외지에 나가 살고 있다. 병원에서 간병을 한다고 해도 보호자가 상시 볼 수 없는 상황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내가 사는 근처 병원에서 수술을 하였다.
이후 정기 검진 차 우리 집에 오신다. 병원 일이 아니더라도 자주 올라오시긴 했다. 엄마가 오실 때마다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김포공항에 가서 모셔왔다. 그런데 이번 검진 때는 공교롭게도 상황이 달랐다.
▲
제주도에 사는 팔순의 친정엄마가 서울에 혼자 오셨다.
ⓒ finn_staygold on Unsplash
남편이 어깨 수술로 당분간 운전이 불가능하고, 나는 직장에 얽매여 있고 다른 자식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혼자 오시겠다는 말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지,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상황을 알려드리니 이번에는 공항버스를 타고 본인이 직접 찾아가겠노라 하시며 방법만 알려 달라셨다. 그동안 자식들이 왕복 5시간이 넘는 시간을 빼앗는 것도 걸렸고, 혼자 하는 방법도 배워야 치매 예방에 좋다면서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공항 리무진버스 예약은 예약제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을 주면 내가 온라인 예약을 하는 것으로 1차 미션이 시작됐다. 혹시라도 타이밍이 어긋날까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나 이 지금 공항에 도착했쪄."
전화를 받고 리무진버스 예약분 캡처를 보내드리니 승강장을 찾아 정해진 좌석에 탑승 성공이다.
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엄마의 홀로 이동을 응원해 드렸다.
"엄마는 똑똑하니까 잘 찾아올 수 있을 거야."
▲
낯선 곳에서도 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대화
ⓒ 김은희
종점까지 가는 버스이니 중간에 하차하지 말고 편하게 한숨 주무시란 말씀을 드렸더니 리무진 버스가 비행기 좌석보다 더 좋다 하시며 진작 왜 이 생각을 못했냐 하신다. 나름 성공에 대한 기쁨과 함께 갔던 시청 앞과 오일장을 지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으로 전해주셨다.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면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지만 탑승장 위치와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까지 걸어가기엔 무리인 듯하여 택시로 방향을 잡았다. 차량번호를 등록해야 로비까지 들어올 수 있어서 택시를 타자마자 차량 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이 2차 미션이다.
용인터미널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즐비하게 있으니 탑승하고 아파트명만 알려주면 끝이기 때문에 덜 복잡할 듯했다. 이후 택시 탑승 후 차량번호 등록을 위한 전화가 왔다. 택시 기사님께 차량번호를 받아 적고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렸다. 차량 등록까지 마쳤다. 출입구 비밀번호와 현관문 비밀번호는 이미 엄마 에 저장 중이다. 이후 집에 들어왔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의 메모장에서 발견한 것
다음날, 병원 진료를 마치고 엄마와 같이 쇼핑을 했다. 이럴 땐 출근시간이 늦은 나의 직업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쇼핑을 마치고 이번엔 시내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는 미션이다. 버스를 타고 전날 택시를 탔던 장소에 내리면 전과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직접 집까지 택시를 태워 드린다는 것을 만류하고, 거리가 멀어 버스를 타고 택시를 갈아타면 3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수입이 없는 사람에게는 낭비라며 말이다. 엄마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제는 시내 구경하는 재미도 느끼고 싶다고 하셨다. 결국 엄마 뜻대로 회사 근처에서 버스를 태워 드렸고, 이후 택시 탑승까지 모든 미션을 무사히 완료했다.
어느 날, 우연히 엄마의 메모장에서 자식들이 태어난 날과 시간을 정성껏 기록해 놓은 것을 보았다. 나이 들어감에 뒤처지지 않고 이렇게 치열하게 지금을 붙들고 계신다는 걸 알았다. 낯선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딸네 집 방문 미션을 완수한 용기도 결국 이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
팔순의 엄마가 혼자 해낸 하루를 떠올리며, 나의 20년 뒤를 상상해 본다. 나도 엄마처럼 지금의 용기로 노년을 정면 돌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