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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산후조리원 비용 대겠다는 아내,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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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돕겠다는 마음도,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도 사랑... 은퇴 부부의 서로 다른 삶의 기준

‘이종범의 은퇴이몽’은 퇴직 4년차로서 은퇴 전후의 현실을 기록합니다. 숫자만이 아니라 몸, 관계, 생활기술, 돌봄, 역할의 전환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봅니다. <기자말>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한 관계자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아들, 산후조리비는 엄마가 줄게."

3월 5일, 친손녀가 태어난 날 아내가 아들과 통화하며 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물었다. 그걸 왜 나와 상의도 없이 먼저 정하느냐고. 그러자 아내의 목소리 톤이 금세 올라갔다.

"내 친구들도 다 그렇게 했어."

친손녀의 탄생은 분명 우리 가족에게 큰 축복이다. 아들 부부는 부모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돈 이야기부터 꺼내야 했다. 겉으로는 산후조리비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자녀를 어디까지 도울 것인가, 그리고 긴 노후를 어떤 기준으로 버틸 것인가를 두고 부딪힌 셈이다.

[아내 입장]

부모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야지

아내의 생각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해줄 수 있으면 해주는 게 맞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슬러야 하는 시기인데 부모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돕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했고, 이런 때 손을 보태는 것이 가족의 정이라는 논리였다.

듣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새 생명을 맞이한 집에 온기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힘든 시기에 부모가 등을 받쳐줘야 한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내는 늘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먼저 본다고 할까. 오늘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오늘 도울 수 있으면 돕자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남편 입장]

소득은 줄고 건강은 나빠질텐데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의 몇 백만 원보다 그 뒤에 이어질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노후 40년이다. 퇴직하면 끝날 줄 알았던 돈 문제는 오히려 그때부터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소득 활동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반면 건강은 점점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돈 들어갈 일은 오히려 더 많아진다. 병원비, 돌봄비, 생활비,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까지 생각하면 "막상 닥치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내게 가장 두렵고 불안한 일이 된다. 닥쳤을 때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자녀에게 기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가 자녀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성격 탓으로만 흘릴 수 없다. 나는 이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아들의 학원 확장을 지원했고, 딸아이 결혼 자금도 보탰다. 그때는 부모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출발선에 설 때 등을 한 번쯤 밀어주는 일, 그것은 계산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는 일이었다.

나 역시 순수한 부모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막상 퇴직 후 삶을 접해 보니 그 선택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노후 자금의 한 축이라고 믿었던 퇴직금이 그렇게 사라졌다. 당시에는 괜찮다고 여겼지만, 막상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든든한 노후 주머니 하나가 없어진 일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퇴직 후의 삶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퇴직 후의 삶은 애초에 세워둔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끼어들었고, 그 대부분은 결국 돈이 필요한 문제로 이어졌다. 현직 시절에는 월급이라는 고정수입이 있었고, 웬만한 일은 다음 달 급여를 떠올리며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퇴직한 지금은 다르다. 들어오는 돈은 불규칙해졌고, 나가는 돈은 생각보다 더 자주 생긴다.

그렇다고 이것을 준비 부족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살다 보면 뜻밖의 일이 끼어들고, 나이가 들수록 감당해야 할 일은 오히려 늘어난다.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자녀를 돕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응원이고 어디부터가 내 노후를 깎아내는 일인지 경계를 세워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변의 또래들을 봐도 비슷하다. 자녀 교육이 끝나면 부담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결혼 자금이 생기고, 결혼이 지나면 출산과 육아 문제가 따라온다. 부모 역할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른 형태의 지원이 계속 이어진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에게 기대는 캥거루족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이제는 독립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리터루족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퇴직한 부모의 부담이 생각보다 오래 간다는 뜻이다. 결국 부모의 지갑은 퇴직과 함께 닫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열린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은퇴 부부의 삶을 덜 흔들리게 하는 기준 필요

▲ 친손녀

햇반이 출생(태명)

ⓒ 이종범

아내와 나는 결국 같은 가족을 바라보면서도 생각이 닿는 지점이 다르다. 아내는 현재에 집중한다. 지금 필요한 일, 지금 도울 수 있는 사람, 지금 놓치면 안 되는 마음을 먼저 챙긴다. 반면 나는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 아직 닥치지 않았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험,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흔들릴 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아내는 낙관적인 편이고, 나는 대비하려는 쪽에 가깝다. 아내가 오늘의 온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면, 나는 내일의 안전판을 먼저 챙기려 한다. 퇴직 전에는 이런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회사생활을 할 때는 생활의 기본 골격이 비교적 단단했고, 월급이 그 사이를 어느 정도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한 지금은 사소한 선택 하나에도 부부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손녀의 탄생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하지만 그 축복 앞에서 우리 부부는 노후를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 자녀를 돕는 마음도 사랑이고,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도 사랑이다. 문제는 어느 쪽이 더 따뜻하냐가 아니라, 긴 노후 앞에서 어떤 기준이 우리 부부의 삶을 덜 흔들리게 하느냐일 것이다. 퇴직 후 부부의 갈등은 돈 몇 푼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삶의 기준이 달라지는 순간 더 선명해진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현재를 먼저 보는 사람과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는 것. 노후는 결국 같은 방향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끝내 함께 감당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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