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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을 몰락시킨 맥주, 아사히 수퍼드라이에 이런 사연이? [윤한샘의 맥주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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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아사히맥주박물관 탐방기... 0.5%의 차이가 건넨 큰 선물

"아싸! 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일본어로 된 '예약'을 클릭하자, 마침내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두 달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안이한 마음이 문제였다. 오랜만에 떠나는 일본 오사카 여행, 크래프트 맥주를 둘러보고 아사히 맥주 박물관 투어를 가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예약제로만 가능한 아사히 맥주 박물관 투어. 분명 비행기를 예약할 때만 해도 3월 27일 투어는 비어 있었는데, 두 달 전 예약하러 들어가니 모든 투어가 만석이 된 게 아닌가.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그때부터 시작된 '새로 고침' 전쟁. 홈페이지를 띄워두고, 시간이 될 때마다 '새로 고침'을 눌러 '예약 취소'를 기다렸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아들과 함께 가려면 두 명이 동시에 취소하는 기적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퇴근 후 예약 사이트의 '새로 고침'을 하염 없이 누르고 있는데, 오사카 도착 당일 오후 3시에 두 좌석이 생긴 것 아닌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예약 클릭. 일본어로 도배된 홈페이지였지만 나에겐 구글 번역과 제미나이가 있었다. 잠시 뒤, 마침내 예약 확정 알림이 내 이메일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잡하디 복잡한 오사카 메트로

오사카에 있는 아사히 맥주 양조장 전경

ⓒ 윤한샘

알고 있다. 일본 지하철 시스템이 얼마나 복잡한지. 오사카를 처음 방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헷갈려도 너무 헷갈렸다. 숙소가 있는 닛폰바시 역에서 아사히 맥주 박물관이 있는 스이타 역까지는 그리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갈색 라인 사카이스지선을 타면 끝이다.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일까? 분명 스이타 역 방면으로 가는 사카이스지선 기타센리행 열차를 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이 싸했다. 안내 전광판 속에선 몇 정거장 뒤 스이타 역이 나와야 하는데, 다른 역이 보이고 있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 못되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조건 멈춰야 한다. 사카이스지선의 갈색 열차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내 본능은 열차가 멈추자마자 몸을 밖으로 밀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를 확인하니 스이타 역과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인 점은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출발했다는 것. 더 다행인 점은 하차한 역에서 걸어서 20분이면 아사히 맥주 박물관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날씨도 좋겠다. 관광객 한 명 보이지 않는 일본 소도시 작은 골목을 유유히 걷기로 했다. 예약부터 도착까지, 아사히 맥주는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일본 맥주 연대기

조용한 동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스이타 역을 알리는 표지가 보였다. 역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높은 빌딩과 넓은 도로가 나왔고 자동차와 사람도 북적였다. 아사히 맥주 박물관은 스이타 역 지하를 통과해야 만날 수 있었다.

역을 지나자 양조장이 얼굴을 내비쳤다. 거대한 발효조가 아니었다면 맥주 양조장이라는 사실을 모를 듯했다. 맥주 양조장을 처음 본 아들은 규모에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담을 따라 10분 정도 돌아가니 연식이 되어 보이는 붉은색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사히 맥주가 첫 담금을 시작한 곳이었다.

아사히의 전신, 오사카 맥주

ⓒ 윤한샘

일본 맥주 역사에서 아사히는 1876년 삿포로, 1885년 기린에 이어 1889년 세 번째로 등장했다. 삿포로와 기린이 각각 정부와 외국 자본에 의해 설립된 반면, 아사히는 순수하게 민간 자본으로 출발한 회사였다.

창립자 토리이 코마키치는 오사카의 유력한 상인이자 사케 양조업자였다. 그는 '일본 맥주는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기치 아래 '오사카 맥주 회사'를 주도했다. '아침 해'라는 뜻의 '아사히'는 3년 뒤 토리이 코마키치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맥주 업계의 새로운 태양이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었다.

후발 주자였지만 아사히 맥주는 오사카 지역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했다. 특히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크게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맥주는 값비싼 고급술이었다. 대량 생산 시설을 갖춘 맥주 회사들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경쟁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1906년 출혈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본 맥주 회사들은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합병으로 몸집을 키워 경쟁에 따른 비용을 줄이자는 것. 미쓰이 재벌 출신으로 '일본 맥주왕'이라 불리던 마코시 쿄헤이는 에비스, 삿포로, 기린, 아사히 맥주에게 몸을 합쳐 수입 맥주에 대응하자는 '대합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기린을 제외한 나머지가 이에 호응했다.

이렇게 태어난 거대 맥주회사가 '대일본맥주'다. 도쿄에 본사를 둔 이 공룡기업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합병을 거부한 기린은 1907년 또 다른 대기업 미쓰비시로 인수되며 자체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1933년 일제가 조선에 세운 맥주 양조장도 이 두 기업의 경쟁의 결과물이었다.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기린이 소하기린맥주를 영등포에 세웠고 나중에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의 전신이 된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며 일본 맥주 회사들은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전범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으로 전쟁이 끝난 뒤, 패전국 일본에서 새로운 질서를 맞이했다. 미군정은 일본 대기업 해체를 실시하면서 대일본맥주를 다시 삿포로와 아사히로 쪼갰다.

이런 미군정의 조치는 일본 맥주 회사의 순위를 재편했다. 삿포로와 아사히가 새로운 조직 구성에 힘을 쏟는 사이, 기린이 안정적인 품질과 유통을 내세우며 시장 1등 기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순위는 40년 동안 지속되었다.

마루에프 그리고 아사히 수퍼 드라이

아사히 맥주 박물관 입구

ⓒ 윤한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맥주를 대중 술로 만든 것처럼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일본 맥주 시장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위스키 회사였던 산토리도 이런 붐을 감지하고 1963년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를 출시하며 맥주 시장에 합류했다.

하지만 시장 1위는 여전히 기린이었다. 반면 아사히는 '아침 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는 해(석양 맥주)'라 조롱받으며 시장 점유율이 9.6%까지 곤두박질쳤다. 벼랑 끝에 선 아사히는 1984년, 사활을 걸고 신제품 개발에 착수하며 반격의 서막을 알렸다.

총 5000명의 설문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맥주가 무엇인지 조사했고, 그 결과, 대중들이 쓰고 무거운 맥주보다 목 넘김이 좋고 깔끔한 맥주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치밀한 조사와 분석 끝에 1986년 등장한 맥주가 '마루에프(マルエフ)'였다.

마루에프의 원래 이름은 '아사히 생맥주'였다. 마루에프는 개발 당시 연구원들이 붙인 코드명이었다고 한다. 원을 의미하는 '마루'는 원만함, 행운, 영원함을 뜻하고 '에프(F)'는 원래 불사조의 영문명 '피닉스(Phoenix)'의 발음 첫 글자에서 따왔다.

그런데 일본 이름을 영어로 하려니 '마루피(Maru-P)'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불사조 대신 행운, 즉 포춘(Fortune)으로 정정하고 앞 글자 '에프'를 가져와 '마루에프'라는, 애교 섞인 수정을 감행했다.

기념품샵에 전시된 마루에프

ⓒ 윤한샘

영원한 불사조와 영원한 행운, 이름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마루에프는 출시 후 엄청난 히트를 쳤다. '부드러운 감칠맛'을 강조한 차별화 포인트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어필된 것이다. 주인공으로 올라선 마루에프는 이내 아사히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그런데, 잘 나갈 것만 같던 마루에프가 조용히 시장에서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한다. 마루에프의 몰락을 이끈 맥주는 기린도, 삿포로도, 에비스도, 산토리도 아니었다. 아사히의 친동생, '아사히 수퍼 드라이'였다.

아사히 연구진은 마루에프의 성공을 바탕으로 알코올 도수는 살짝 높지만, 청량한 목 넘김을 극도로 끌어올린 '아사히 수퍼 드라이'를 이듬해 출시했다. 이 맥주는 놀랍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삽시간에 맥주 시장을 석권했다.

삿포로, 산토리, 기린은 곧바로 뒤에 '수퍼 드라이'를 붙인 맥주들을 출시했지만, 원조를 따라 잡기엔 힘이 부족했다. 이후 맥주 이름에서 '드라이(dry)'는 극단적인 깔끔함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오비와 조선맥주가 '수퍼 드라이'를 내세운 맥주를 출시하기도 했다. 내 나이 정도의 세대라면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 뒤로 만화가 이현세가 등장했던 오비 맥주 광고가 컬러 TV처럼 단박 떠오르리라.

아사히 수퍼 드라이는 첫 해, 목표치의 3배가 넘는 1350만 상자를 판매했다. 심지어 넘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맥주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라는 광고까지 낼 정도였다. 아사히 수퍼 드라이의 성공으로 아사히는 삿포로를 밀어내며 1988년 2위로 올라섰고, 2001년에는 마침내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부활의 공을 쏘아 올렸던 마루에프는 생맥주로 조용히 연명하다 허망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마루에프를 불사조처럼 전설에서나 볼 수 있는 맥주라며 아쉬워했지만, 곧 아사히 수퍼 드라이의 연호에 묻히고 말았다.

이후 아사히는 성공 가도를 달리며 세계적인 맥주 회사로 발돋움한다. 2016년에는 에이브이인베브와 사브밀러의 합병으로 매물로 나온 필스너 우르켈, 런던 프라이드, 그롤쉬, 페로니, 코젤 같은 브랜드를 매입하며 전 세계 3위 규모의 기업이 되었다. 브랜드 하나가 만든 거대한 성장 스토리는 멀리 있지 않다. 편의점 냉장고 한 구석을 찾아보면 된다.

아사히를 먹여 살린 아사히 수퍼 드라이

ⓒ 윤한샘

0.5%의 차이

아사히 맥주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데스크에서 이름과 투어 시간을 확인했다. 투어비는 1000엔, 우리 돈으로 9500원 정도였다. 성인을 인증하는 노란색 팔찌를 차고 둘러보니 기다리는 건, 기념품 상점에서 눈을 초롱초롱 밝히고 있는 티셔츠, 키링, 병따개, 먹거리, 전용잔 그리고 맥주들이었다.

다양한 굿즈 중 단연코 나를 사로잡은 녀석은 '마루에프'였다. 아니, 마루에프가 있다고? 급하게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2021년 다시 출시되었다는 게 아닌가. 꼭 구매해서 마셔보리라 다짐을 하는 순간, 투어를 알리는 방송이 들렸다.

투어는 여타 맥주 박물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양조장 투어가 처음인 아들은 놀란 토끼 눈으로 두리번거렸지만, 세계 양조장 곳곳을 가본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산보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언제나처럼 맥주 시음 시간. 아사히 맥주 박물관은 생맥주 2잔을 마실 수 있었다. 맥주 종류는 생각보다 다채로웠다. 아사히 수퍼 드라이 엑스트라 콜드, 아사히 수퍼 드라이, 마루에프, 마루에프 흑맥주, 필스너 우르켈, 페로니 중 고르면 됐다.

아사히 수퍼 드라이 엑스트라 콜드

ⓒ 윤한샘

나의 선택은 당연히 마루에프 생맥주. 흑맥주도 마셔보고 싶었으나, 마루에프 페일라거와 영하 2도에서 서브되는 아사히 수퍼 드라이 엑스트라 콜드를 선택했다. 일본 라거 뿐만 아니라 카스나 테라 같은 한국 라거들은 0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서브 되면 더 맛있게 느껴지곤 한다. 낮은 온도는 탄산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 입 안에서 더 강한 청량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사히 수퍼 드라이 같은 맥주를 마신다면 꼭 냉동실에 잠시라도 넣었다가 마셔보자.

두 맥주 스타일은 동일하다. 쌀 전분이 들어간 아메리칸 라거로 아사히가 자랑하는 '이스트 No.318'이 들어간다. 이 효모는 당을 모두 먹어 치워 극도의 드라이함, 즉 깔끔함을 맥주에 선사한다.

마루에프와 아사히 수퍼 드라이의 차이는 알코올 뿐이다. 5% 알코올을 가진 아사히 수퍼 드라이 속 효모가 당을 더 소화하면서 0.5% 알코올을 더 녹여낸다. 4.5%와 5%, 단 0.5%지만 마루에프에서는 뭉근한 바디감이, 아사히 수퍼 드라이에서는 혀를 조이는 청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하나는 세계를 제패하게 했고, 다른 하나는 28년 간 동면에 들게 했다.

생맥주로 즐긴 마루에프

ⓒ 윤한샘

맥주를 마시며 우리 인생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찰나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기 마련이다. 그 작은 차이로 인생이 험로가 되기도 대로가 되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렇다 할지라도 부활할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는 것. 마치 마루에프처럼.

마루에프를 담은 잔에는 불사조 로고가 있었다. 화려한 수퍼 드라이보다 묵묵히 돌아온 마루에프가 더 달게 느껴지는 건, 내 인생도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위해 시원하게, 건배.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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