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미역국 쳐다보기도 싫어요" 입맛 잃은 산모를 일으킨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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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의 지치고 힘든 마음을 음식으로 위로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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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님, 저 미역국은 정말 냄새도 맡기 싫어요."

작년 겨울, 한 산모의 집에 처음 방문하던 날이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주방을 보니 커다란 찜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미역국이었다. 산모는 병원과 조리원을 거치며 삼시 세끼 미역국만 먹다 보니 이제는 쳐다보는 것조차 고역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어머니가 정성껏 끓여놓고 가신 그 마음이, 산모에게는 차마 외면하기 힘든 무거운 숙제가 되어 있었다.

사실 미역국은 산모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보양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매일 반복되면 질리는 법이다. 나는 산모의 '미역국 거부 선언'을 충분히 이해한다.

출산 후 산모의 주방은 그 집의 형편과 속사정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거실에 놓인 화려한 축복의 꽃바구니 뒤로, 산후의 고단함과 서툰 부모의 막막함이 식재료의 선도만큼이나 선명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성이 담긴 음식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현장에서, 관리사의 가장 큰 숙제는 단연 식단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입맛이 도는 화끈하고 기름진 음식을 해주고 싶어도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기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모유의 영양을 생각하면, 자극적이거나 기름진 식재료는 철저히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분유 수유를 하는 산모는 일반식이 가능해 한결 수월하지만, 완모를 지향하는 집에서는 관리사의 고민이 깊어진다.

▲ 지쳐있는 산모

육아에 지친 산모가 입맛까지 잃고 지친 표정

ⓒ AI이미지 생성

'몸에도 좋고 입맛도 돌게 하는' 그 어려운 균형을 반찬 한 접시 위에서 찾아내야 하는 일은 7년 차인 내게도 매일 아침 주어지는 엄격한 시험대와 같다.

어느 날, 도저히 숟가락을 들 기운조차 없다며 고개를 젓던 산모를 위해 나는 냉장고 구석의 오이를 꺼냈다. 고춧가루는 최소화하고 식초와 설탕을 적절히 배합해 새콤달콤하게 무쳐냈다. 맵지 않으면서도 미각을 깨우는 상큼한 향이 주방에 퍼지자, 물끄러미 반찬을 바라보던 산모가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입맛이 조금씩 돌아오면 나는 다시 미역국을 끓인다. 대신 변화를 준다. 소고기 대신 황태를 넣어 시원하게, 혹은 조개를 넣어 깔끔하게 주재료를 바꿔가며 질리지 않는 영양을 연구한다.

▲ 오이 무침

입맛 잃은 산모가 새콤달콤한 오이무침으로 식욕을 되찾았다.

ⓒ AI 이미지

산모에게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접받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는 치유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치유의 식탁을 차려내기까지, 집집마다 주방의 풍경은 천차만별이다. 양가 어른들이 반찬을 넉넉히 보내주시는 집은 관리사의 손길이 한결 수월하지만,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 집도 적지 않다. 배달 음식이나 간단한 외식으로 끼니를 때워온 이들에게 산후의 식탁은 막막함 그 자체다.

정부 바우처 지원사업 지침에는 '산모가 관리사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은 정반대다. 퀭한 눈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산모에게 내 밥상을 요구할 순 없다. 정부 지침서 한 줄에 담기지 않는 그 막막한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산모의 고단함을 읽어내는 사람의 '헤아림'과 정성이다.

재료를 마련해두는 아기 아빠의 정성과 그것을 맛깔나게 조리하는 관리사의 노력이 만날 때 주방은 비로소 활기를 띤다. 배려의 마음이 오가는 주방에서는 종종 예상치 못한 감동을 마주하기도 한다. 유독 그 온기가 따스하게 남아 있는 어느 집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날도 일찍 퇴근한 아기 아빠가 주방에서 능숙한 손길로 식재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정갈한 손놀림에 평소 요리를 즐겨 하는지 물었더니,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아내보다 제가 요리를 조금 더 잘하거든요. 관리사님, 그동안 저희 가족 돌보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내일은 제가 식사 한 번 대접해 드릴게요."

다음 날, 나는 관리사가 아닌 '손님'이 되어 그가 정성껏 차려낸 따뜻한 밥상을 마주했다. 그 집의 공기가 유독 부드러웠던 것은 서로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작은 배려의 순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일도 타인의 주방으로 출근한다. 무엇을 해 먹일까보다, 이 사람이 오늘 한 숟가락이라도 더 편안하게 속을 달래고 기운을 차릴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미역국 냄새에 진저리를 치던 산모가 다시 기운을 차려 밥 한 그릇을 비워내는 곳.

주방은 내게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장소가 아니다. 고립된 육아의 섬에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다리를 놓으며, 무너진 엄마의 일상을 다시 세우는 가장 작은 현장이다. 그 밥상 위에서 비로소 엄마라는 이름은 자신을 향한 미안함을 내려놓고, 다시 기운을 내어 아기를 마주할 용기를 얻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헤아림을 확인하는 순간, 산모의 일상은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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