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이해하려는 엄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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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 들어와도 돼 엄마. 나 혼자 잘게."
딸이 방문을 닫았다. 쿵. 바람이 그런 거라고 다시 닫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 시간이 힘들었다. 하루를 다 쓰고 난 몸으로 아이 침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일. 아이의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그래서 몇 살 때 어땠어, 하고 내 어린 시절까지 소환됐다. 책은 한 권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고, 이상적인 이십 분은 어느새 한 시간을 기본으로 넘겼다.
자카르타에서 산 지 십 년이 넘었다. 자카르타 학교엔 급식이 없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도시락 싸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밤 아홉 시면 이미 정신이 혼미했다. 가장 피곤한 그 시간에 집중해서 아이 말에 응대하고 감정을 나눠야 했다. 때로는 아이보다 내가 먼저 잠들었고, 때로는 그 아름다운 밤을 협박으로 마무리했다. 언제쯤이면 "엄마 나 재워줘" 소리를 안 할까. 그날을 그토록 기다렸다.
두 달 동안은 실감이 안 날 만큼 좋았다. 아이가 아홉 시가 되면 방에 들어가 혼자 잠들었다. 밤에 자유시간이 생겼다. 낮에 해도 될 일을 밤에 하면 더 좋았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낮보다 밤이 더 잘 됐다. 세 달째가 되니 몸은 편한데 어쩐지 아주 조금씩 그리워졌다. 똑똑. 내가 노크를 하고 물었다. "엄마 네 침대에 누워도 돼?"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니요 나가세요."
내가 한 거절만큼 거절을 당하는구나. 사춘기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나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에 입문하는 딸을 이해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는 어떤 감정을 많이 느낄까. 부모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 나이의 고민은 도대체 뭘까.
검색을 해보았다. 사춘기를 검색하면 온갖 설명이 쏟아진다. 감정이 예민해진다거나, 부모와 거리를 두려 한다거나. 다 알고 있는 말들이었다. 주변에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도, 남의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그때 나는 어땠더라. 한동안 잊고 있던 공책을 꺼냈다. 삼십 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의 일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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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 6 일기장. 오래 잊고 지냈던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 전세정
나는 사춘기가 없었다고, 온순하게 자랐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기억이 잘못되었나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답답해의 느낌표마저도 저렇게 무거웠던 걸까. 가끔 묘한 울적감이 찾아왔다. 인도네시아에 오면서 생긴 줄 알았다. 아니었다. 원래 있던 거였다. 인도네시아야, 그동안 억울했겠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이를 불러 일기장을 보여줬다.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같은 반에 이런 애가 있으면 친하게 지낼 것 같니?"
"아니 엄마. 이런 애는 감당 안 돼. 그냥 혼자 둬야 돼. 어차피 다른 사람 말 안 들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자, 딸아이가 턱을 아래로 내리더니 다시 말했다.
"근데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럴 때가 있잖아 그냥."
딸은 이미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쿵. 어이가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조금 위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