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질문들> 마지막편을 보고... "AI한테 없는 건 망설임, 인간의 결함이나 한계가 개성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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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MBC 손석희 <질문들> 시즌 4 마지막 게스트로 김애란 작가가 나왔다. 내가 너무 애정하는 작가의 출연 예고에 그 하루, 모든 시간은 이 장면만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내 문학 사랑에 지평을 열어준 김애란 작가라 그 시간이 더 기대되었던 것 같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주는 위로
작가님도 방송 출연이 긴장되셨을까? 처음 내게 들려오는 작가님의 목소리에 작은 떨림이 함께 전달되었다. 다만 그 떨림과 파동은 괸장히 자연스럽게 닿았다. 가벼운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손석희 앵커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AI를 쓰신 적이 있으시죠?"
자료를 조사하는 용도로 AI를 사용해 보았다는 김애란 작가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 후 AI와 사람의 다른 점은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볼륨을 높이고 더 귀 기울였다.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김애란 작가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 유투브 캡쳐
질문들의 한 장면
ⓒ MBC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게 하나 있었어요. 망설임인데요. 누군가의 고민이나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가 있더라고요. 그 주저함에 힘겹게 서 있는 배려나 품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위로가 된 적이 있었어요."
요즘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AI와 고민을 나누고, 적절한 위로를 얻기도 한다. 최근 인공지능과 속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매끄럽게 받아치는 인공지능의 공감적 대화가 어쩌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태도를 살피지 않아도 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불러낼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일인가? 심지어 그 친구가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거침없이 쏟아내고 구석구석 얼룩진 마음까지 닦아 낼 수 있다면 분명 두 손들고 환영할 일이다.
인공지능이 내어 놓는 위로는 유창하고 깔끔하게 들린다. 학습된 데이터가 많이 축적될수록 이용자의 기분을 보듬는 단어는 막힘없이 앞을 향해서만 직진한다. 좌우를 살피고 깜빡이를 넣을 필요가 없다. 완벽과 완전을 향해 뱉어낸 문장의 수준은 심지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다만 AI가 사람을 위로하는 영상을 다시 봤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어쩐지 그 풍경이 기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기다렸다는 듯 즉각적인 위로와 다정의 문장이 튀어나오는 막힘없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문장 속에는 살아낸 흔적이 없다. 그 자리에 가보아야 알 수 있는 연대와 공감은 빠져 있었다.
인공지능의 그것은 마치 공갈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풀어서 풍성해 보이고 둥글둥글 매끄러워 먹음직해 보이지만, 정작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느껴지는 허탈감과 공허, 그 텅 빈 느낌. 그래서일까? AI와의 대화는 어쩐지 언제 부서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태함으로 다가왔다. 겉모양은 완벽해 보이지만 속 빈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솔직히 충전만 놓쳐도, 배터리만 빼도 그냥 꺼지는 게 인공지능 아닌가?
손석희 앵커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던 장면
어렵게 꺼낸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심하는 투박한 침묵, 섣불리 내뱉은 단어에 상처 주지 않을까 고뇌하며 조심스레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 어떤 대답을 건네야 할지 몰라 애태우며 숫자 1을 지우지 못하는 망설임이 나에겐 인공지능의 유려한 문장보다 좋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위로와 위안이 여기에 있다. 인간의 불완전한 여백과 머뭇거리는 고백에서 더 찬란하게 빛난다. 마치 우리 시대에 극복 서사보다 연약함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처럼, 딱 떨어지게 성공한 이야기보다 실패와 무너짐의 시간을 보듬고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다시 걸어간 이야기가 묘한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느리지만 미숙하고 빈틈 많은 그 자리에 '인간다움'이 있다.
▲ 손석의 아나운서
손석희 아나운서의 망설임의 순간
ⓒ mbc
김애란 작가는 손석희 앵커가 뉴스를 진행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손석희 앵커가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부고 앞에 완벽해 보이는 손석희 앵커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던 장면이 소환되었다.
뉴스 말미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던 침묵을 아마 AI는 방송사고로 혹은 프로답지 못한 진행으로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안다. 그 망설임은 미처 끝맺지 못한 애도, 끝내 보내기 힘들었던 동갑내기 친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인간의 결함이나 한계가 사실 우리의 미덕일 수 있고 개성일 수 있다는 김애란 작가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전히 사람이 선택하는 투박한 침묵에 나는 위로를 얻는다. 무거운 삶을 짊어진 사람의 불완전한 파동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처럼 존재를 흔들고도 남음이 있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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