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공포영화 모티브된 예산 살목 저수지에 밤마다 차량 행렬... "시끄러워 잠 설쳐", "쓰레기 좀 버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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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살목지가 있는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마을에 걸린 현수막.
ⓒ 이재환
영화 <살목지>가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영화의 배경이 된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마을의 살목 저수지가 주목받고 있다. 밤이면 차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조용한 시골 마을은 '귀신 괴담'이 입소문을 타면서 말 그대로 '핫' 해졌다. 최근에는 밤마다 대리 마을에 수십여 대의 차와 오토바이가 줄을 이어 들어오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광시면 대리에 있는 살목지는 옆에 쌍둥이 저수지인 보강지가 있다. 살목지(9.3ha·약 2만 8천평)는 지난 1982년 농업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준공됐다. 예산 황새 공원이 있는 바로 그 마을이다. 저수지 준공 전 살목지 자리에는 살목리 마을이 있었다. 저수지가 생기면서 이 마을은 물에 잠겼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옛사람들은 사라진 살목리를 '살뫼기'로도 불렀다고 한다. 살뫼기의 정확한 뜻은 알 수가 없다.
기자는 지난 16일 살목지가 있는 예산군 광시면 대리 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는 보호수인 느티나무(수령 383년)가 서 있다. 느티나무 앞에는 '살목지 진입로는 차량교행이 어려우니 안전운행 바란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한낮인데도 살목지로 향하는 차들이 수시로 포착됐다.
마을이 귀신 괴담으로 뜨고 있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귀신 괴담에 대해 '금시초문'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마을 이장 조아무개씨는 "살목 저수지가 생긴 지 40년이 됐지만 귀신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살목지로 가는 길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시끄러워서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 A씨는 "밤낮없이 마을에 차가 다녀서 시끄럽다.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있다. 새벽 4시에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가는데, 뒤에서 차가 따라와서 공포심이 느껴진다. 새벽까지 오토바이들이 왔다갔다 해서 소음이 더 크다"라며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 보자마자 "귀신이 어딨어, 밥부터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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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살목 저수지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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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마을 주민들이 경로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 이재환
"이리 와요." 마을 주민의 안내로 마을 경로당을 찾았다. 주민 1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물과 두부조림, 계란찜 등 소박하지만 풍성한 밥상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한 주민은 이날 처음 본 기자에게 "귀신이 어딨어. 일단 밥부터 먹어"라며 밥 한 공기를 퍼 주었다. 또 다른 주민은 "귀신 얘기 말고 우리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신문에 좀 내 달라"라고 거들었다.
주민들 틈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기자는 '귀신 이야기'를 캐물었다. 주민 B씨는 "마침 오늘 아침에 우리 아이(자녀)가 전화로 '살목지에서 귀신이 나오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우리 마을이 전국에 소문이 다 났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주민 C씨는 "13일 밤에는 차가 90대가 왔었다고 들었다. 마을 길이 좁은데, 갑자기 차가 많이 다녀서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다. 공주 유구에서 시집와서 60년을 이 마을에 살았다. 마을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귀신을 보진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온 뒤로 저수지에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많아졌다. 산불이 날까 봐 걱정이다. 제발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고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살목지는 운동 삼아 다녀오는 익숙한 장소다.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살목지에 낚시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물고기가 거의 사라진 탓에 낚시꾼들도 잘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낚시꾼들 대신 '귀신 체험을 하겠다'며 사람들이 마을로 몰려오고 있다.
주민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귀신 괴담의 출처가 궁금했다. 일단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살목지 부근에서 휴대폰이 안 된다', '내비게이션이 살목지로 잘못 안내해 주더라' 등의 '카더라식' 소문은 배제했다. 마을을 잘 알고 있는 '지역 생태 활동가' 강동호씨에 따르면 살목지 안쪽은 예전부터 휴대폰이 잘 안 터졌다고 한다. 골짜기라서 전파가 차단된다는 것이다.
과거 살목지에서 발생한 '익사 사고' 대해서도 수소문해 봤다. 예전부터 익사 사고 지역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은 왕왕 있어 왔다. 예산군에 따르면 저수지가 생긴 뒤로 1건의 익사 사고가 있었다. 익사 사고와 귀신 괴담도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살목지 괴담'의 시작은 낚시꾼들 입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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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살목 저수지
ⓒ 이재환
다만 예산군청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에서 살목지 귀신 괴담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낚시꾼들이 살목지에서 자다가 가위에 눌렸다는 이야기가 괴담처럼 퍼져 있다. 또 수몰된 살목리 마을에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문헌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살목지 괴담의 출처는 한때 살목지를 오가던 낚시꾼들의 입소문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영화를 계기로 살목지 귀신 괴담이 확산되면서 대리 마을에는 밤새도록 차량들이 몰려오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마을 길이 좁은데다, 살목지에서는 차를 돌려 나올 공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관련해 예산군 관계자는 "차량은 (살목지 방죽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24시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살목지>와 예산 살목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영화가 예산군 살목지를 소재로 한 것은 맞다"라며 "한두 컷 정도는 광시면 살목지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만난 후 기자는 살목지와 살목지 옆에 있는 보강지까지 올라가 보았다. 이들 쌍둥이 저수지는 서로 닮은 듯 다른 풍경을 품고 있다. 오전에 예산군과 자원봉사자들이 살목지 주변 둘레길 쓰레기를 치웠지만, 그 사이에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남아 있었다. 대리 마을 주민들이 "쓰레기 좀 그만 버리라"고 당부한 게 괜한 소리는 아니었다.
마침 이날은 살목지에 핀 벚꽃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연초록 나뭇잎들이 푸른 빛깔의 저수지 물과 어울리며 봄의 기운을 한껏 뿜어냈다. 살목지는 '귀신 괴담'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와 볼 만한 곳이다. 살목지의 지척에는 예산 황새 공원뿐 아니라 광시 한우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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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목지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 마을 주민들은 살목지에 쓰레지좀 그만 버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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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살목지. 차량이 살목지 둑방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차단봉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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