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타고 유럽] 동화 같은 노이슈반슈타인성, 절벽 위 리히텐슈타인성
3월 1일부터 9일까지 중부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대중교통 대신 렌터카를 선택해 다양한 지역을 달렸습니다. 여정 중 만난 인상적인 풍경과 이색적인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여행이 끝이 가까워질 무렵,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즈니 성의 모델로 잘 알려진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을 향해 차를 몰았다.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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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과 주변 약도
ⓒ 최한결
리히텐슈타인 파두츠에서 약 2시간 정도 달려 독일 퓌센에 도착했다. 이윽고 울창한 숲 위로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뾰족한 탑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성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길었다. 대부분 방문객들은 셔틀버스나 마차를 이용하지만, 나는 다소 늦은 오후에 도착한 탓에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약 30분 정도 숲길을 따라 올라갔을까, 마리엔 다리(Marienbrücke)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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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경과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내는 노이슈반슈타인성
ⓒ 최한결
그리고 마침내 마리엔 다리에 올라섰을 때 마주한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새하얀 외벽과 뾰족한 탑, 드넓은 들판과 마을, 다리 밑 폭포와 자연 풍경까지,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완벽한 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디즈니 성보다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마리엔 다리는 다소 흔들리고, 틈 사이로 절벽이 보여 아찔했지만 이내 황홀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곳곳에서 커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다리에는 사랑의 자물쇠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처럼 로맨틱한 풍경과는 달리,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성은 19세기 중반,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2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는 현실보다 낭만을 좇았고 건축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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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습의 노이슈반슈타인성
ⓒ 최한결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의 상상 속 성을 현실로 구현하고자 했지만 막대한 건축 비용으로 정치적 압박을 받았고 정신 이상 판정을 받으며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그는 3일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으며 성의 완공을 보지 못했다.
특히 그는 이 성이 관광지로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 뒤 성을 철거해달라는 뜻을 남겼지만, 사후 불과 6주 만에 성은 관광지로 개방되었다. 지금은 매년 130만 명이 찾는 독일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고, 2025년에는 '루트비히 2세의 궁전: 노이슈반슈타인, 린더호프, 샤헨 및 헤렌힘제'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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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방향에서 바라본 노이슈반슈타인성
ⓒ 최한결
어쩌면 그가 자신의 삶을 모두 쏟아부었기에, 이처럼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엔 다리에서 내려와 성 쪽으로 가까이 가자 그 거대한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랐다. 현재의 모습은 초기 계획의 약 3분의 1 수준이라고 하던데, 원래 계획은 얼마나 거대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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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 방향에서 바라본 호수와 호엔슈반가우성
ⓒ 최한결
한편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아이브제 호수 방향을 바라보면 노란색 성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호엔슈반가우성(Schloss Hohenschwangau)'이다.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즐겨 찾던 별궁으로, 루트비히 2세 역시 어린 시절 이곳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성을 바로 맞은 편에 지은 것이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 위 리히텐슈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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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성 정문
ⓒ 최한결
노이슈반슈타인성의 감동을 안은 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리히텐슈타인성으로 향했다. 일정은 더 남아 있었지만, 튀빙겐에 사는 지인을 만나야만 했고 그 전에 짧게 들를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다. 튀빙겐과 슈투트가르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성이다.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지만, 리히텐슈타인 공국과는 관계가 없다. 리히텐슈타인성은 Lichtenstein, 공국은 Liechtenstein으로 철자가 다르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소개하는 영상이나 글에 이 성의 사진이 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혼동을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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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성
ⓒ 최한결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입구를 지나자마자 인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800m 높이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성. 규모는 작지만 그 위치만으로도 강렬한 풍경이었다.
리히텐슈타인성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중세 성을 모방해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이다. 이 성은 1826년 발표된 독일 소설 '리히텐슈타인'에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 소설에 감명받은 빌헬름 폰 우라흐 백작이 1837년 이 부지를 매입하고 1842년까지 성을 건설했다. 이후 1869년부터는 우라흐 가문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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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성에서 바라본 마을
ⓒ 최한결
규모는 노이슈반슈타인성보다 훨씬 작지만, 두 성은 방어 목적이 아닌 순수한 '아름다움'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한참을 머물며 바라보게 만들었고, 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성을 지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게 했다. 이곳을 처음 찾아봤을 때 봤던 '라푼젤에 나오는 성 같다'라는 표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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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를 듯한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는 리히텐슈타인성
ⓒ 최한결
이러한 독특한 매력 덕분에 리히텐슈타인성은 '슈바벤 알프스의 작은 보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유럽의 귀족들이 휴가를 위해 종종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면, 리히텐슈타인성은 작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곳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과 리히텐슈타인, 비록 두 성의 형태는 달랐지만 절벽 위 자리한 그곳에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향한 낭만과 동경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여전히 두 성은 '동화 속 성'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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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과 리히텐슈타인성
ⓒ 최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