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마다 반복되는 흙 작업 속에서 알게 된다... 삶도 그냥 두면 원치 않는 것들이 먼저 자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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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해지면서 옥상에 올라갈 일이 부쩍 늘었다. 옥탑 실내 수도에 감아두었던 열선을 걷어내고, 겨우내 내버려둔 고무통의 흙을 정리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우리 집 옥상 고무통에는 해마다 채소를 키울 흙이 담겨 있다. 다가구주택을 지었던 2011년부터 시작한 일이니 어느덧 15년째다. 처음에는 그저 소일거리였다. 마트에서 사다 먹는 채소 몇 가지를 내 손으로 길러보면 어떨까 싶어 시작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봄이면 으레 해야 하는 집안일이자 계절의 의식 같은 일이 됐다. 올해도 예년처럼 아버님이 드시는 푸른 상추와 우리 부부가 먹을 적상추, 청양고추와 아삭이고추, 깻잎, 가지, 방울토마토를 심을 생각이다.
하지만 봄철 채소 농사는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 일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먼저 겨우내 자라난 잡초를 뽑고, 흙을 뒤집고, 묵은 흙에 비료를 섞어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일부터 해야 한다. 좋은 것을 심기 전에, 먼저 비워야 할 것부터 비우는 셈이다.
흙 작업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옥상에는 지름과 높이가 각각 두 자쯤 되는 고무통이 열한 개 있다. 두릅만 심어놓은 화단도 있고, 소나무와 주목이 자리 잡은 화단도 두 개나 된다. 집 밖 베란다와 소공원 사이에 있는 화단, 주택 벽을 따라 길게 만든 화단까지 더하면 손이 가야 할 곳이 꽤 많다. 겨우내 실내로 들여놓았던 화초들을 다시 실외 베란다로 옮기고, 화분을 분갈이하고, 베고니아를 비롯한 여러 화초를 새로 심는 일까지 마쳐야 비로소 봄맞이 흙 작업이 끝난다.
잡초는 흙에서만 자라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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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측면 11m 철쭉 화단
ⓒ 이종범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면 옥상과 집 주변은 제법 그럴듯한 초록 공간이 된다. 하지만 장갑을 끼고 쪼그려 앉아 막상 흙을 만져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잡초 제거부터 만만치 않다. 겨울 동안 자리를 잡은 잡초들은 생각보다 훨씬 완강하다.
큰 잡초는 손에 잡히는 부분이 많아 그나마 쉽게 뽑힌다. 그러나 몇 포기 뽑다 보면 금세 알게 된다. 진짜 문제는 흙 속에 숨어 있는 잔뿌리라는 것을. 줄기만 잡아당기면 중간에서 뚝 끊어지고 손에는 잎 몇 장만 남는다. 뿌리는 그대로 흙 속에 남아 있으니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올라올 게 뻔하다. 결국 손가락으로 흙을 더 깊이 헤집어야 한다. 가느다란 뿌리까지 끌어내고, 엉긴 흙도 털어내야 한다. 장갑을 꼈는데도 흙은 손톱 밑으로 파고든다. 몇 번 쪼그렸다 일어섰다 하고 나면 허리와 무릎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작업이 쌓이면 몸은 금세 무거워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흙을 만지고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단순해진다. 뽑아야 할 것은 뽑고, 고를 것은 고르고, 남길 것은 남기면 된다. 눈앞의 일이 분명하니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줄어든다. 평소 같으면 괜히 떠올랐을 걱정도, 쉽게 정리되지 않던 생각도 흙을 헤집고 잡초를 뽑는 순간만큼은 잠시 힘을 잃는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는 이상한 경험을 이런 때 자주 한다.
올해도 잡초를 뽑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초라는 게 비단 흙에서만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마음속에도 손에 잡히지 않는 잡초들이 자란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두면 금세 번진다. 걱정이 그렇고, 불안이 그렇고, 미뤄둔 생각들이 그렇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대충 정리해서는 없어지지도 않는다. 흙 위로 올라온 잡초 줄기를 끊어냈다고 일이 끝나지 않듯, 마음속 문제도 겉만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흙의 잡초는 제초제라도 뿌릴 수 있지만, 마음의 잡초는 그렇게 말끔히 없앨 약이 없다. 결국 스스로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일이 어디 쉬운가. 내가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이 제일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한 번 올라온 생각은 금세 뿌리를 내리고, 제때 손보지 않으면 더 넓고 깊게 퍼져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소한 일을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든다. 텃밭의 잡초처럼 마음의 잡초도 방치하면 금세 자리를 넓힌다.
옥상 한켠 화단에 심어둔 두릅은 볼 때마다 번식력에 한 번 놀라고, 질긴 생명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특별히 손이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새순을 밀어 올리고, 어느새 가지를 뻗는다. 올해도 첫 수확으로 서른 개 남짓한 두릅을 땄다. 마트 진열대에 놓인 반듯한 상품처럼 매끈하지는 않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손으로 만지고 가시에 찔리며 직접 따낸 두릅은 이상하게 더 귀하게 느껴진다. 잘 자랐다는 사실도 반갑지만, 더 반가운 것은 그 두릅이 겨울을 무사히 건너 다시 올라왔다는 점이다.
상추와 고추, 깻잎과 토마토를 심기 위해 흙을 고르다 보면 지금 하는 이 수고가 결국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심지도 않았으니 열매는커녕 푸른 잎조차 없지만, 심을 자리를 만드는 일만은 지금 해두어야 한다. 잡초를 걷어내지 않고는 모종을 심을 수 없고, 굳은 흙에 비료를 섞어주지 않고는 채소도 튼실하게 자라기 어렵다. 좋은 것이 자라기를 바라면 먼저 비워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노후를 떠올릴 때 굵직한 계획이나 큰 결심부터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런 장면보다 훨씬 잘게 나뉜 일들로 이루어진다. 어떤 날은 베란다를 쓸고, 어떤 날은 묵은 화분을 정리하고, 또 어떤 날은 옥상에 올라가 잡초를 뽑는다. 남이 보기에는 그저 소소한 집안일일 뿐이지만, 그런 노동이 오히려 하루를 붙들어주는 시간이 될 때가 있다. 삶은 생각만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 단순한 사실이 더 또렷해진다.
요즘은 허리가 아파서 그런지 쪼그려 앉아 흙을 뒤집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고역스럽다. 그래서 올해는 고무통 위에 올라온 잡초를 걷어내고 흙을 고르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했다. 뽑아낸 잡초는 두 개의 상자에 담아 1층 소공원 쪽에 내려놓았다. 행정복지센터에 소공원 잡초를 정리해 달라는 민원도 접수해둔 상태다. 그렇게 하고 나니 옥상 위 고무통들은 비로소 채소를 심을 준비를 마친 얼굴이 되었다. 흙 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첫 단추는 분명히 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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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채소를 심기 위한 고무통 흙 잡초 제거 후 정리된 모습.
ⓒ 이종범
올해 들어 마음을 어지럽히는 변수도 적지 않았다. 줄어드는 소득에 대한 불안도 있었고, 가로주택정비사업처럼 내 뜻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도 가까이 와 있었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걱정은 그렇게 조금씩 마음속 자리를 넓혀갔다. 그렇다고 마음속 잡초를 한 번에 말끔히 뽑아낼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옥상 흙을 고르듯, 내 마음도 그때그때 들여다보며 손질하는 것뿐인지 모른다. 다 비워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무엇을 먼저 걷어내야 할지는 알아차리는 것. 아마 그것이 지금의 내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