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엄마가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달면 몰래 뜯어먹었던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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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한소쿠리에 5천 원 주고 산 가죽나물... 엄마가 해준 그 맛이 아직 생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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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나섰다. 우리 집은 1층이라 현관문을 나서면 '초화원'이라는 작은 정원이 보인다. 눈앞에서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벚꽃과 목련이 떠나버린 자리를 황매화가 노랗게 오밀조밀 찾아왔다. 화단 여기저기에 빨간 철쭉이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몇 걸음 더 가면 보랏빛 구름처럼 피어난 수수꽃다리 향이 퍼진다. 눈보다 먼저 코에 와닿는 봄이다.

아파트 주변을 걸으려고 나갔는데 예쁜 꽃들을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두 손 가득 봄을 담아오고 싶어졌다. 남편도 마음이 통했는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산책하는 요량치고 시장에 가 볼까?"

재래시장까지 걸어서 가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왕복 1시간이면 산책 코스로도 적당하다. 햇볕도 따뜻하고 공기마저도 달랐다. 겨울의 메마르고 거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재래시장에 도착했다. 난전에는 할머니들이 엉덩이 의자에 앉아 봄을 팔고 있었다. 상추와 고추, 두릅을 지나자 내 눈길을 붙잡은 것은 막 올라온 가죽나물이었다.

▲ 가죽 나물

시장에서 싱싱한 가죽 나물을 사 왔어요.

ⓒ 황윤옥

"할머니, 가죽 얼마예요?"

"한 소쿠리에 5천 원이에요."

두 소쿠리를 사서 손에 봄을 담았다. 그 순간, 단순히 나물을 사는 게 아니라 봄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 봄이었다. 문경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 집 마당에는 가죽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돌아올 무렵 가죽을 한가득 따 왔다. 제법 많은 양이었다. 친구가 고기를 구울 때 가죽을 넣었는데 그 맛이 인상적이었다.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도 가죽을 넣고 고기를 구워줬다. 도시에서 자란 남편은 처음 먹어보지만, 너무 맛있다며 탄성을 자아낸 기억이 났다.

시장에서 손에 담아온 봄을 어떻게 요리를 할까 생각하다가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준 가죽 부각이 떠올랐다. 내가 자라던 곳은 시골이었다. 두메는 아니지만, 집마다 감나무와 가죽나무가 한 그루씩은 있었다. 우리 집에는 그 흔한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그때는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고 품앗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봄이면 가죽 나물을 이웃에게 얻어왔다. 새순은 데쳐서 먹고 억센 잎은 찹쌀풀과 고추장을 섞어 묻혔다. 그러고는 빨랫줄에 주렁주렁 널어놓았다. 막내 오빠와 나는 마당에 있는 마루에 앉아 있다가 가죽이 꾸덕꾸덕해지길 기다렸다.

지금처럼 군것질거리가 없을 때니 빨랫줄에 널린 가죽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간식이었다. 가위로 자르지도 않은 채 긴 가죽을 통째로 손에 쥐고 뜯어먹었다. 쫀득쫀득한 맛이 어린 내 입맛을 가득 채워주었다.

엄마는 들일을 마치고 돌아와 빨랫줄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반찬으로 만들어주려고 했던 걸 어린 자식 둘이 먹었으니 애가 탔겠지만, 타박은 안 했다. 엄마는 남은 가죽을 기름에 튀겨 반찬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반찬으로 먹은 것보다 그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엄마가 해 준 음식을 당연하게 여겼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엄마의 손맛이 귀하고 고마운 줄 몰랐다. 내 사는 것이 바쁘다 보니 돌아다 볼 틈이 없었다. 이제 엄마는 내 곁에 없고 내가 할머니가 되었다. 지금에서야 엄마의 음식은 사랑이자 희생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엄마의 사랑을 찾아,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는 딸이 되어 간다.

시장에서 가죽을 사다 놓고도 학교 시험 기간이라 요리를 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엄마표 가죽 부각을 처음 만들어보며 엄마를 가슴에 안아본다. 먼저 가죽을 끓는 소금물에 데친다. 데쳤더니 보랏빛 가죽 색깔이 진한 초록색으로 변했다.

찹쌀풀을 끓인 후 고추장을 두 숟가락을 넣고 섞어준다. 물기가 빠진 가죽에 찹쌀풀을 입히고 바깥 놀이터 벤치에 널어두었다. 주방 창문으로 보면 널어둔 가죽이 보인다. 햇빛이 바뀌는 장소에 따라 채반을 옮겨주느라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 데친 가죽 나물

끓는 소금물에 데치니 초록색으로 변했어요.

ⓒ 황윤옥

▲ 가죽나물

가죽 나물에 찹쌀풀과 고추장을 섞어 묻힌 후 채반에 담아 놀이터 햇빛이 드는 곳에 널었어요.

ⓒ 황윤옥

가죽 몇 줄기는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돌렸다. 남편에게 빨리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점심 먹으러 올 시간에 맞춰 덜 굳은 가죽 나물을 프라이팬에 구웠더니 장떡 같은 맛이 났다. 찹쌀풀이 모자라 양념을 묻히지 않은 가죽은 초고추장에 살짝 버무렸다. 된장찌개 하나만 끓여 밥상을 차려냈다. 맛을 본 남편은 향긋하고 부드럽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간소한 점심 밥상

된장찌개와 가죽 나물 반찬

ⓒ 황윤옥

엄마가 만들어 빨랫줄에 널어놓았던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어린아이처럼 손에 들고 뜯어보고도 싶다. 남은 것은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기름에 튀겨 먹으면 된다.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엄마의 맛이 내 삶에 하나 더 생겼다. 봄이 오면 나는 다시 가죽을 말릴 것 같다. 엄마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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