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은 멀쩡한데 배터리 성능 때문에 교체... '얼마나 오래 쓰는가'도 기술 평가의 중요한 기준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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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이어폰을 처음 샀을 때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예전에 유선이어폰을 쓸 때는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서 이어폰 줄이 엉키는 일이 많고 이어폰을 연결해서 사용할 때 걸리적거렸는데 무선이어폰은 그런 불편이 없었다. 학교 갈 때도,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도서관에서 인강을 들을 때도 그냥 케이스에서 꺼내 귀에 꽂기만 하면 됐다. 한 번 익숙해지고 나니 유선이어폰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만족감은 조금씩 답답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샀을 때는 한 번 충전하면 꽤 오래 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용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하루를 버텼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나가기 전부터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잠깐 음악을 듣고, 강의 영상을 조금 보고, 다시 이동하면서 쓰다 보면 벌써 배터리가 절반 가까이 줄어 있는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 더 신경 쓰였던 건 양쪽 이어폰이 똑같이 닳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둘 다 완전히 충전했는데도 어느 날은 오른쪽이 먼저 꺼지고, 어느 날은 왼쪽이 더 빨리 닳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오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것이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됐다.
그때부터 무선이어폰을 예전처럼 "그냥 편한 기기"로만 보지 않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용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소리가 갑자기 안 나는 것도 아니고, 외관이 망가진 것도 아닌데, 배터리 성능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체감 만족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답답했다.
특히 밖에서 오래 있어야 하는 날은 이어폰을 마음 놓고 쓰지 못하게 됐다. 예전에는 생각 없이 귀에 꽂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지금 들으면 나중에 인강 들을 때 배터리가 없지 않을까", "오늘은 좀 아껴 써야 하나" 같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편리함 때문에 산 제품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편리함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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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판매되는 무선이어폰
ⓒ spxclicks on Unsplash
더 답답한 점은 배터리 성능이 떨어졌을 때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은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받거나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식으로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무선이어폰은 구조가 너무 작고 복잡해서 배터리만 손쉽게 갈아 끼우기 어렵다.
내부 공간이 좁고 부품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어서 분해 자체가 어렵고, 접착 구조 때문에 수리 난이도도 높다. 결국 서비스센터를 찾더라도 비용이 애매하거나, 아예 교체보다 새 제품 구매를 권유받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분명 멀쩡히 소리가 나는 제품인데, 배터리 하나 때문에 사실상 수명이 끝난 것 같아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왜 무선이어폰은 시간이 지나면 유독 빨리 불편해지는지 궁금해졌다. 이유는 결국 배터리였다. 무선이어폰에는 보통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며 전기를 저장하고 내보내는 과정이 계속 일어난다. 이 작용이 반복되면 전극 표면의 상태가 달라지고 내부 저항도 커져, 일부 이온은 이전처럼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배터리 성능이 서서히 떨어진다. 우리가 느끼는 사용 시간 감소도 바로 이런 변화가 쌓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부터는 불편이 확실히 체감될 정도로 커지게 된다.
양쪽 배터리가 다르게 닳는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양쪽 이어폰을 완전히 똑같이 쓰지 않는다. 한쪽만 잠깐 빼는 습관이 있거나, 통화를 주로 한쪽으로 하거나, 이어폰 착용 상태를 감지하는 센서가 미세하게 다르게 작동할 수도 있다. 제품에 따라서는 한쪽 이어폰이 마이크나 연결 제어 역할을 더 많이 맡는 경우도 있다.
사소해 보이는 이런 차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누적되고, 결국 어느 한쪽이 더 빨리 닳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용자는 "왜 둘 다 같이 충전했는데 한쪽만 먼저 꺼지지?"라고 느끼지만, 기기 입장에서는 그동안 받은 부담이 같지 않았던 셈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단순히 "내 무선 이어폰이 오래 못 간다"는 불만을 넘어, 요즘 전자기기 전반의 방향을 다시 보게 됐다. 우리는 점점 더 작고, 더 가볍고, 더 편리한 제품을 원한다. 제조사도 그 요구에 맞춰 기능을 늘리고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일수록 수리와 교체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무선이어폰, 스마트워치, 무선 마우스, 태블릿 펜처럼 충전해서 쓰는 소형 전자기기들은 편리함이 큰 대신,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금방 가치가 낮아진다. 아직 사용 가능한데도 "애매하게 불편한 상태"가 되어 버리고, 결국 새 제품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건 개인의 소비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 보면 환경 문제와도 이어진다. 전자기기 하나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금속과 플라스틱, 희소 자원, 제조 에너지, 운송 과정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배터리 열화 때문에 아직 쓸 수 있는 제품을 자주 교체하게 되면 그만큼 전자폐기물도 늘어난다.
특히 소형 전자기기는 작아서 버릴 때 부담이 덜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배터리와 각종 부품이 들어 있어 처리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편리함의 비용이 당장 눈앞에는 보이지 않을 뿐, 사회 전체로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셈이다.
물론 무선이어폰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금도 무선이어폰을 자주 쓰고, 그 편리함을 분명하게 느낀다. 강의 사이에 짧게 음악을 듣거나, 복잡한 이동 중에 선 없이 통화할 수 있는 경험은 확실히 좋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음질이나 디자인만 보고 제품을 고르지는 않게 됐다는 것이다. 배터리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 충전 케이스를 포함했을 때 사용 패턴이 어떤지, 수리나 교체는 어느 정도 가능한지 같은 요소도 함께 보게 된다.
어쩌면 무선이어폰은 아주 작은 물건이지만, 요즘 과학기술 제품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우리를 더 편하게 만들었지만, 그 편리함은 완전히 공짜가 아니다. 배터리 수명, 수리 가능성, 자원 사용, 폐기 문제 같은 것들이 모두 그 뒤에 따라온다.
처음에는 단순히 "왜 이렇게 빨리 닳지?"라는 불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경험이 내 소비 기준 자체를 조금 바꿔 놓았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새롭고 편리한 기술이 무조건 좋은 것처럼 보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가"도 기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