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6일부터
청령포·장릉·자규루 등을 8폭에 담아
단종의 마지막 자취를 담은 ‘월중도’의 제2도 청령포도. 고갯길 넘어 굽이치는 물길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고, 영조가 세운 어제 비각이 중앙에 그려져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 단종의 마지막 자취를 조선 왕실의 시각에서 복구한 ‘월중도’(越中圖)가 특별 공개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이달 16일부터 경기 성남시 연구원 내 장서각 전시실에서 보물 ‘월중도’ 8폭 전면을 전시한다고 13일 밝혔다.
1457년 음력 6월 세조(재위 1455~1468)는 상왕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수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로 유배를 보내는 교지를 내렸다. ‘상왕이 종사(宗社·종묘와 사직을 일컫는 말)에 죄를 지었으니 편안히 거주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당시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아버지이자 판돈녕부사를 지낸 송현수(?~1457) 등이 반역을 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린 조카인 단종(재위 1452~1455)의 지위까지 강등한 것이다.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은 몇 달 후 생을 마감했다.
200여년이 지나 숙종(1674~1720) 대에 단종을 ‘충신을 낳은 군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복위가 논의되고 1698년 공포됐다.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단종과 충신의 사적을 복구하면서 ‘월중도’도 완성됐다.
단종의 마지막 자취를 담은 ‘월중도’의 제4도 자규루도. 단종은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저녁이 되면 자규루에 올라 시름에 잠긴 채 시를 읊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단종의 무덤인 장릉, 유배지인 청령포를 실경으로 그린 산수화, 청령포에 홍수가 발생하자 거처를 옮겨 머물고 사약을 받아 숨을 거둔 관풍헌, 애처로운 마음을 담아 시를 지었다고 전하는 자규루(당시 매죽루), 단종에 절의를 지킨 사육신 등을 배향한 사당 창절사 등이 담겼다.
1763년 영조가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비문을 써 단종의 집터에 세운 비각(碑閣)도 그려져 있다.
장서각 관계자는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라,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와 그를 기리는 조선 왕실의 기억을 담은 기록화”라면서
“조선 왕실의 회화와 기록문화를 직접 살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