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 개인전 ‘새겨진 시간-울리는 소리’
27일까지 이웰갤러리…51점의 조각 전시
사용된 도구와 기억된 시간의 조형적 전환
박주현 '관계의 각도'(2026). 이웰갤러리 제공
박주현 '사막을 걷는 집'((2026). 이웰갤러리 제공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가 있어야 하듯, 조각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연장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망치이다. 특히 박주현 조각가에겐 그렇다. 한국조형예술고 시절부터 동아대를 거쳐 부산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밟은 뒤 지금에 이르는 동안 가장 익숙한 작업 도구였던 그 망치는 어느 순간 그의 작업을 대변하는 오브제로 변신했다. 물론 망치만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사물과 도구를 바라보며,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조형의 언어로 풀어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부산 수영구 이웰갤러리(망미번영로 110번길 7)에서 열리고 있는 ‘새겨진 시간-울리는 소리’ 박주현 개인전이다. 그는 조각이라는 행위를 넘어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며 다시 기록하는 중이다. 그의 손에 들어간 사물들은 깎이고 다듬어져 새로운 몸을 얻었으며, 기능을 넘어선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이웰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박주현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이번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기존 누군가 사용한 것들을 가져와 그분들의 이야기를 새겨 넣은 작업이었다면, 다른 한쪽은 작가가 아예 새로 만들어서 시각적 변화를 더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실제 망치를 더 동물적으로, 인간적으로 표현하다가 이제는 청동으로 망치 모양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박주현 'Red’(2026). 이웰갤러리 제공
청동과 나무, 철로 제작한 ‘레드’ ‘그린’ ‘스카이블루’를 보면, 90도로 꺾인 나뭇가지를 찾아서, 청동 주물 작업 과정을 거친 망치 모양 머리를 붙이고, 다리와 꼬리는 못을 구부려서 달았다. 그리고 레드, 그린, 스카이블루 색깔을 칠했다. 도구를 의인화한 초창기 작업에서 컬러링이 추가된 것이다. ‘거미줄 앵꼬’는 아파트로 짐작되는 은행나무 토막에 둥근 조각도로 일일이 거미줄 같은 결을 터치한 뒤 벽(아파트 혹은 돈을 상징)을 기어오르는 피규어 같은 청동 스파이더맨을 만들어 붙였다. 진짜 빨래판처럼 보이는 알루미늄판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그린 뒤 청동잠자리를 붙인 ‘하늘구름 잠자리’ 같은 작품도 있다. 빨래 노동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 어머니들이 파란 하늘을 한 번쯤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단다.
박주현 '거미줄 앵꼬(스파이더맨)'(2026). 김은영 기자 key66@
일상에서 사용되다 누군가의 삶을 떠난 사물은 작가가 ‘당근 앱’을 통해 구한 것들이 많다. 그는 “각각의 사물에는 이전 주인의 손길과 반복된 사용의 흔적, 말로 남지 않은 기억들이 층층이 축적돼 있다”며 “닳은 표면과 무게, 결함처럼 보이는 상처들은 사물이 지나온 삶의 기록이고, 이러한 시간의 밀도를 조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덕분에 갤러리에 들어서면 낙타, 코끼리, 사자, 호랑이, 소, 말, 기린, 하마, 돌고래,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고, 작가가 사전 녹음으로 들려주는 바람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코끼리의 낮은 울림, 사자의 포효, 늑대의 긴 울음이 야성의 흔적이자 생명의 기억처럼 작품 위에 내려앉는다.
박주현 '요리사의 고민'(2026) 일부. 김은영 기자 key66@
박주현 '요리사의 고민'(2026). 김은영 기자 key66@
박주현 '돌 위의 사유'(2026). 김은영 기자 key66@
제기도 많이 보인다. 이것 역시 당근 앱에서 구한 것들이다. 나무 제기와 다듬잇방망이를 활용한 ‘요리사의 고민’은 제사 음식을 장만하느라 힘들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노동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느라 셰프 옷과 모자를 쓴 채 고뇌하는 여인 모습을 조각해서 올렸다. 또한 룸비니 동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듯한 부처 형상의 ‘돌 위의 사유’는 램프로 변신해 불을 밝혔다. 사용을 멈춘 도구가 여전히 시간을 품고 있듯, 조각은 지나간 삶의 흔적을 현재로 불러낸다. 51점의 작품은 오는 27일까지 만날 수 있다. 월요일과 점심시간은 쉰다. 문의 051-755-4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