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흥행에 촬영지 성지화…심야 방문객 몰리며 안전 우려도
[데일리안 = 류지윤 기자] 최근 영화의 흥행이 실제 관광 수요로 직결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단순히 촬영 장소를 방문하는 장소 탐방 단계를 넘어, 관객들이 영화 속 명장면을 직접 재현하거나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등 소비 방식이 더욱 능동적이고 다층적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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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살목지’는 개봉 10일째인 이날 1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영화의 인기를 동력으로 촬영지인 충남 예산 ‘살목지’ 저수지를 찾는 방문객도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방문 인증샷과 실시간 상황이 잇따라 공유되고 있으며, 한 네티즌이 살목지를 목적지로 설정한 차량이 100대를 넘은 내비게이션 화면을 캡처해 화제가 됐다. 새벽에 줄지어 선 차량 행렬을 찍은 게시글까지 등장하며 현장의 열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심야 시간대 방문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공포 장르 특유의 분위기를 체감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관객들은 스크린 속 공간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현실 공간에서 재현하며 영화의 일부가 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방문객 증가에 따라 지역 사회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예산군은 화제성을 지역 브랜딩의 기회로 삼아 영화 예고편을 패러디한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동시에 안전사고 예방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산군은 소방, 경찰, 한국농어촌공사 등 유관 기관과 합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 차량 출입 통제, 위험구역 안내, 순찰 인력 확대, CCTV 설치 등 안전 대책을 시행 중이다.
이 같은 흐름은 '왕과 사는 남자' 신드롬이 만들어낸 영월의 사례와 맥을 같이한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 단종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영화 속 배경인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와 단종의 묘가 있는 장릉을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단종 유배 당시 그를 보필한 충신 엄흥도의 묘가 있는 대구시 군위군까지 주목받는 등 영화 한 편이 촬영지를 넘어 역사적 연고지 전반으로 관심을 확산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영월군은 오는 4월 24일 개막하는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앞두고 영화 흥행으로 방문객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대규모 인파에 대비한 준비에 나섰다. 이번 단종문화제에는 장항준 감독도 참여할 예정이다.
다만 '왕과 사는 남자'가 역사적 서사와 배경을 따라가는 이야기 중심 관광이었다면, '살목지'는 공포의 감각을 체험하려는 방문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극장에서 시작된 감정이 SNS를 통해 증폭되고, 다시 현실 공간 방문으로 이어져 또 다른 콘텐츠로 재생산되는 순환 구조 속에서 영화는 스크린을 넘어 하나의 경험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콘텐츠가 지역 관광의 기폭제가 되는 구조가 점차 공고해지는 가운데, 이 같은 흐름이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 효과로 이어지려면 일시적 화제성에 기댄 대응을 넘어 체계적인 콘텐츠 관광 인프라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