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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직격한 '원 배틀…' 오스카 6관왕…축제 뒤엔 매각·해고 '역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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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생애 첫 감독상

워너브러더스 배급작 강세 속 구조조정 암운

삼엄한 경비 뚫고 쏟아진 반전·반독재 메시지

韓 소재 애니 '케데헌'은 주제가상 등 2관왕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메인 테마곡 '골든'을 열창한 레이 아미와 이재, 오드리 누나.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을 배경으로 한 정치 스릴러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1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했다.

오스카와 인연을 맺지 못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감독상과 각색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각색상을 받으며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에 남긴 난장판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동시에 그들이 우리에게 상식과 품위를 가져다줄 세대가 되기를 바라는 격려를 담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한때 지하조직 일원으로 활동한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위기에 처한 딸 샬린(채이스 인피니티)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추격 액션 블록버스터다. 이민자 등 소수자를 향한 연대와 사랑을 외치는 내용이 강경한 이민자 정책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맞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카데미 역대 최다인 열여섯 부문에 후보로 오른 '씨너스: 죄인들'은 각본상(라이언 쿠글러)과 남우주연상(마이클 B. 조던)을 포함해 4관왕에 올랐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각색상을 받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AFP연합뉴스

두 영화를 모두 배급한 워너브러더스는 '슈퍼맨', '마인크래프트 무비', '웨폰' 등의 흥행에 이어 지난해를 최고의 해로 마무리했다. 이번 수상은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온 역설이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파라마운트에 약 1110억 달러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수천 명의 해고가 예상된다. 이미 뼈아픈 실직 사태로 휘청이는 업계에 더 큰 구조조정을 촉발할 전망이다.

'햄넷'에서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견뎌내는 여성을 연기한 제시 버클리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무대에서 영국의 어머니날과 수상 날짜가 겹친 점을 언급했다. "어머니의 마음속 아름다운 혼돈에 이 상을 바치고 싶다"며 "우리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창조를 이어가는 여성들의 계보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남우조연상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인종차별주의 군인을 연기한 숀 펜에게, 여우조연상은 '웨폰'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기괴한 분장을 한 마녀로 등장한 에이미 매디건에게 각각 돌아갔다. 영화 '밀크'와 '미스틱 리버'로 이미 오스카를 거머쥐었던 펜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잭 니콜슨, 월터 브레넌에 이어 오스카 3관왕에 오른 네 번째 주인공이 됐으나 시상식에 불참했다. 시상자로 나선 키에란 컬킨은 시상식을 꺼리는 그를 향해 "오늘 밤 이곳에 올 수 없었거나, 오기 싫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베테랑 성격파 배우인 매디건은 1985년 '인생이여 다시 한번' 뒤 처음으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그는 트로피를 가리키며 "40년이 지났는데, 그때와 지금 다른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작은 금빛 남자"라며 웃었다.

음악인 라이오넬 리치(왼쪽)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재에게 주제가상 트로피를 건네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시상식은 극장 박스오피스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화계가 게임과 유튜브에 익숙한 젊은 관객층의 공감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막을 올렸다. 또한 전 세계의 이목이 이란 전쟁에 집중된 상황에서 생중계됐다. 캘리포니아에 대한 이란의 드론 공격 가능성을 경고한 연방수사국 경보 탓에 레드카펫에 경찰견이 등장하고 상공에 헬기가 선회하는 등 보안이 그 어느 때보다 삼엄했다.

정치적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졌다. 방송인 지미 키멀 등 시상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다큐멘터리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을 꼬집었고, 스타들은 무대 위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대의를 주장했다. 특히 하비에르 바르뎀은 '센티멘털 밸류'에 국제장편영화상을 시상하며 "전쟁에 반대하고 자유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유 탄압을 다룬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데이비드 보런스틴 공동 감독은 독재의 폐해를 강도 높게 경고했다. 그는 "우리 영화는 어떻게 국가를 잃게 되는지에 관한 영화"라며 "이 영상을 작업하며 깨달은 것은 셀 수 없이 작고 사소한 방관의 행위들을 통해 국가를 잃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거리에서 사람들을 살해할 때, 우리가 침묵하고 방관할 때, 신흥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고 우리가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통제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국가는 무너진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의 최고 흥행작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메인 테마곡 '골든'으로 주제가상을 받았다. 매기 강 공동 감독은 이 작품의 수상이 다양성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강조하며 눈물을 삼켰다. 그는 "우리와 닮은 주인공이 이런 영화에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여기에 있고,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간절히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며 "이 상을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유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하비에르 바르뎀(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올해는 이정표가 될 만한 기록도 쓰였다. 커샌드라 쿨루쿤디스 캐스팅 디렉터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신설된 캐스팅상을 수상했다. 단편 실사 영화 부문에서는 '투 피플 익스체인징 살라이바'와 '더 싱어스'가 공동 수상하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씨너스: 죄인들'의 어텀 듀랄드 아카파우 촬영감독은 여성 최초로 촬영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방송인 코난 오브라이언은 2년 연속 진행자로 무대에 올랐다. 오프닝 독백에서 오페라와 발레를 깎아내려 논란을 빚은 티모시 샬라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에 실패한 넷플릭스 등을 겨냥해 조롱거리로 삼았다. 미국 내 정치적 격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진행할 때는 LA가 불타고 있었는데, 올해는 모든 게 아주 순조롭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어 "지금 전 세계 시청자들은 우리가 매우 혼란스럽고 두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며 "이런 순간일수록 오스카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밤 영화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예술성, 협력, 인내, 회복력, 그리고 오늘날 가장 희귀한 자질인 낙관주의에 경의를 표한다"며 "모든 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가올 더 나은 나날을 위해 일하고 희망하기에 함께 축하하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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