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빛나 예술감독, 2026 비엔날레 전시계획 발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병목과 회복 감각 함께 담아
계엄 이후 한국 사회 문제의식 반영
19일 공개된 2026 베니스비엔날레 제61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의 핵심어는 '해방공간'이었다. 최빛나 예술감독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관 전시 제목을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로 공개하고, 해방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고정하지 않고 지금도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상태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최빛나 한국관 예술감독이 1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2026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제61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감독은 지난해 겨울 비상계엄 사태와 그 이후 이어진 광장의 시간, 한국 사회를 가로지른 갈등과 불안을 이번 기획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해방은 이미 도달한 상태가 아니라, 지금도 다시 만들고 갱신해야 하는 공동체적 과제라는 것이다.
기획 무대는 베니스 자르디니의 한국관이다. 한국관은 오랫동안 협소한 규모와 독특한 건축 구조, 애매한 위치 탓에 한계를 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 감독은 그러나 이런 조건을 단순한 약점으로 보지 않았다. 여러 형태가 결합된 구조, 유리벽으로 인해 외부 환경에 민감한 성격, 일본관과 독일관 사이에 놓여 가까이 가야 존재가 드러나는 입지까지, 한국관의 물리적 조건 자체를 이번 기획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요새와 둥지'라는 부제도 여기서 나왔다. 방어와 경계의 감각을 지닌 요새, 머물고 쉬고 품는 장소인 둥지가 한 공간 안에 함께 놓인다는 설명이다. 최 감독은 한국관을 국가주의적 상징물로 세우기보다, 갈등과 애도, 기억과 회복이 중첩되는 임시적 기념비처럼 다루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해방을 하나의 승리 선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감정이 부딪히는 와중에도 다시 연결을 시도하는 불완전한 과정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최고은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2026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제61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간담회에서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 작가 최고은과 노혜리의 작업 구상도 함께 공개됐다. 최고은 작가는 "한국관 안팎과 자르디니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멈춘 흐름을 다시 열어젖히는 방향의 설치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기능을 멈춘 구조, 정지된 공간의 감각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노혜리 작가는 "투명한 재료와 얇은 막 같은 구조를 활용해 관객이 한국관 내부를 지나가는 속도를 늦추고, 공간을 몸으로 통과하게 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전시 계획에서 주목할 지점은 '해방공간'을 말하면서도 관객은 실제 전시에서 해방의 개방감보다 비좁음과 지연, 머뭇거림을 먼저 체감하게 되는 것 아닌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지연 자체가 의도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메시지에 곧바로 도달하게 하기보다, 몸의 감각과 머무는 시간을 먼저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해방을 선언처럼 제시하는 대신,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의 감각을 통과하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겠다는 답변이었다.
이 설명은 이번 한국관 기획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의 낙관을 앞세운 전시라기보다, 아직 해방되지 못한 감각과 쉽게 해소되지 않는 병목, 갈등 이후의 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상상할 것인가를 묻는 기획에 가깝다. 최 감독이 말한 해방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완결이 아니라 지속의 문제다.
Bearing-2026-Orlando Thompson-courtesy 2026 Korean Pavilion-2.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관 프로젝트는 전시장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시와 함께 펠로우십, 선집, 네트워크 활동을 병행하는 확장형 구조도 예고됐다. 초대 펠로우로는 김후주, 이랑, 한강, 황예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가 참여한다. 이 가운데 한강은 노혜리의 '애도하는 스테이션'에 함께 놓일 조각 작품 '퓨너럴'로 참여할 예정이다. 노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 첫 장면을 시각화한 작업"이라며 "자신의 조각과 한 몸처럼 결합해 전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은 개막식 참석 여부는 미정이지만 설치 과정에는 함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펠로우십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기억, 공동체의 상실과 회복을 여러 층위에서 다루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4·3, 탄핵 시위 이후의 광장 등 한국 사회의 구체적 장면들을 예술적 언어로 다시 호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본관과의 협업도 추진한다. 인접성과 긴장이 중첩된 두 국가관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의 움직임을 실험해보겠다는 취지다.
이날 간담회가 던진 질문은 선명했다. 베니스 자르디니의 좁은 한국관은 과연 어떻게 '해방공간'이 될 수 있는가. 이번 발표는 그 답을 완성본으로 보여준 자리가 아니라, 한국관의 협소함과 병목,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관계를 짓는 감각 자체를 전시의 핵심 언어로 삼겠다는 예고에 가까웠다. 내년 베니스에서 이 구상이 실제 공간과 관객 경험 속에서 어떤 설득력을 가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