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성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
2007년 국내 첫 도입 후 누적환자 6000명 돌파
간암·식도암·안구암 등 정밀 타격해 부작용 최소화
카자흐스탄에 기술 전수하며 '의료한류' 확산
2028년 차세대 치료기 가동으로 '제2의 도약'
암 치료 분야에서 '입자치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치료의 목표가 단순히 생존 기간을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치료 이후 삶의 질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대형 병원마다 차세대 방사선기기 도입과 투자에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2007년 국내 최초로 양성자치료를 시작한 국립암센터는 장기간의 치료 경험과 독보적인 치료 성과를 바탕으로 암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문성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이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간암, 식도암, 안구암 등에 대한 양성자치료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문성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은 23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우리 병원에서 양성자치료를 받은 환자가 누적 6300여명, 치료 건수는 11만8000건을 넘어섰다"며 "연간 치료 환자도 초기 150명 수준에서 최근엔 560명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 전체 입자치료는 약 2만7000건, 이 가운데 37%(9900여건)가 국립암센터에서 이뤄졌다.
입자치료는 크게 양성자(수소 원자핵)와 중입자(탄소 이온)로 구분한다. 양성자치료는 '입자의 물리적 특성(브래그피크·Bragg peak)'을 이용, 방사선이 종양에 도달하는 지점에서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방출돼 암에는 높은 선량을 전달하고 정상 조직의 손상은 최소화한다. 문 센터장은 이를 "암을 정확히 겨냥해 때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뇌, 신경, 눈 주변처럼 민감한 부위의 암 치료에 유리하고, 어린 소아암 환자의 경우 치료 후 성장장애나 2차 암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문 센터장은 "양성자는 입자가 가벼워 조절이 매우 정밀하다"며 "안구나 뇌 주변처럼 예민한 부위의 암을 치료할 때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사용된 치료법이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35만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도 쌓여있다.
중입자치료는 양성자보다 12배나 무거운 탄소 이온을 가속해 암세포 DNA를 더 강하게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양성자치료 시설보다 6~7배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장비 가격도 2500억~3000억원(치료기 2기 기준)으로 3~4배 더 비싸다. 또 양성자치료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본인 부담이 약 150만~250만원 수준이지만, 중입자치료는 비급여로 5000만~7000만원에 이른다. 문 센터장은 "중입자는 난치성 암에 대해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지만 아직 임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며 "반면 양성자는 오랜 기간 검증된 안전성과 풍부한 임상 경험이 강점"이라고 했다.
국립암센터는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성이 낮은 난치암과 희귀암 치료에도 집중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간암이다. 수술이나 고주파치료가 어려운 조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양성자치료와 기존 치료를 비교한 임상연구를 진행한 결과, 5년 국소 제어율이 90%, 5년 생존율이 60~80%로 수술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진행성 간암 역시 항암치료만 시행할 경우 평균 생존 기간이 7~8개월이지만, 양성자치료를 병행하면 15~20개월까지 늘어났다.
조기 식도암 환자는 증상이 거의 없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수술하면 식도를 크게 절제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문 센터장은 "이런 환자에겐 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는데, 양성자를 이용하면 심장이나 폐에 들어가는 방사선량을 줄여 장기적으로 부작용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소아암, 척추종양, 맥락막흑색종(안구종양) 등 고난도 치료 분야에서 양성자치료는 그 효과를 입증해 왔다.
문성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이 흉부종양 환자의 양성자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장비보다 더 중요한 전문가 양성 …해외 기술 전수까지
양성자치료는 장비만 갖췄다고 가능하지 않다. 방사선종양학 전문의뿐 아니라 의학물리학자, 방사선사, 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인력이 치료 장비의 선량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환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국립암센터는 2005년 국내 최초로 '의학물리 아카데미'를 설립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한 약 40명의 전문가들이 현재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병원에서 핵심 인력으로 활동 중이다. 문 센터장은 "방사선치료는 장비만큼이나 이를 운용하는 의학물리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이같은 핵심 인력 양성이 앞으로 국내 입자치료 발전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국립암센터의 치료 경험과 노하우는 글로벌 암 치료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엔 카자흐스탄 국립암연구센터(NROC)가 중앙아시아 최초로 양성자치료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문 센터장을 비롯한 국립암센터 전문가들이 직접 건너가 장비 검증과 치료계획 수립 등을 지원하고 입자치료 기술을 전수했다. 문 센터장은 "처음 양성자치료를 시작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의 안정적인 치료 시스템 구축을 돕고 있다"며 "앞으로도 국제 협력을 통해 한국 의료의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는 내년 차세대 독립형 양성자치료기 '프로테우스원(Proteus ONE)'을 도입할 예정이다. 회전형 치료 기술 등 최신 기법을 통해 치료 시간을 단축하고 종양 주위의 정상 장기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비가 2028년 가동되면 해마다 약 250명의 환자를 추가로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 센터장은 "장비가 소형화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입자치료는 앞으로 더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며 "국립암센터는 국가 차원의 치료 표준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성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이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하고 있다. 국립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