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제작사, 제작비 적정성 인식 차이 커
톱스타 몸값이 전체 예산 32% 차지
정부 권고 '표준제작비'는 현장서 무용지물
드라마 촬영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가 쏘아 올린 출연료가 한국 방송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넷플릭스 등 거대 플랫폼이 톱스타 몸값을 회당 수억 원대로 끌어올렸고, 이는 곧 국내 시장의 '표준 단가'로 굳어졌다. 지상파와 종편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는 치솟은 출연료를 감당하지 못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0일 발행한 '2025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조사' 보고서는 방송 산업의 구조적 붕괴를 적나라한 수치로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32.5%)와 제작사(32.7%) 모두 드라마 제작비 총액에서 출연료 비중이 가장 높았다. 주연급 배우 한 명의 몸값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집어삼키는 기형적 구조였다.
방송사는 단가 하향 조정이 가장 시급한 항목으로 주저 없이 출연료(100%)를 지목했고, 제작사도 83.3%라는 압도적 비율로 이에 동의했다. 방송사 관계자 B씨도 "웬만한 주연 배우 출연료가 회당 2~3억원씩 되다 보니, 방송사 재원으로는 투자비 회수가 불가능하다"며 "미니시리즈를 제작하는 순간 적자를 떠안는 실정이라, 이제는 적자 폭을 얼마나 줄일지에만 초점을 둔다"고 밝혔다.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방송사는 결국 외주 제작사를 쥐어짠다. 제작사 관계자 A씨는 "제작비 150억원에서 주연 배우가 50억원 이상을 가져간다"며 "몇 년 동안 드라마에 매달린 제작사에 돌아오는 몫은 3억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불만은 설문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상파 드라마를 기준으로, 방송사는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가 충분하다고 봤다(5점 만점 중 4.33점). 제작사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하며(2.33점), 물가 상승분은 철저히 외면당한다(2.33점)고 반박했다. 두 집단 간의 인식 격차는 무려 2.00점에 달한다.
드라마 촬영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제작사는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가 적은 결정적 이유로 '제작 경비 단가가 현재 상황 대비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음'을 꼽았다. 1순위 상향 조정 항목으로 제작진 인건비(41.7%)와 기획료(33.3%)를 지목하며, 열악한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배우 몸값에 밀려 카메라, 조명 등 필수 기술 스태프의 인건비가 5~7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가 상생을 명목으로 권고한 '표준제작비 산정기준'은 현장에서 무용지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상파 방송사의 66.7%가 기준을 제시했다고 응답했으나, 사실상 면피용 행정 절차에 가까웠다. 톱스타 출연료가 예산 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조명·인건비 등 기술 스태프 단가는 시시각각 요동치는 상황에서 20년 전 수준을 맴도는 산정 기준표는 협상의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 관계자 C씨조차 "외주제작 가이드라인이 요구해서 준비는 하지만, 조명이나 인건비 단가가 유동적이고 특히 톱스타 출연료가 예산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산정기준대로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제도의 한계를 인정할 정도다.
결국 방송사는 낡은 시스템 안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제작사는 턱없는 예산 안에서 스태프들의 고혈을 짜내며 연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글로벌 자본에 종속된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방송사와 제작사가 벌이는 이 소모적인 '제작비 제로섬 게임'을 멈추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출연료 상한제 논의, 표준제작비의 현실화, 제작사 기술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등 현실적인 제작비 양성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