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향 없는 차, 효능 없는 약…우리가 놓친 ‘본질’의 조건

¬ìФ´ë지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49. ‘관계적 존재론’으로 본 차와 약의 세계

"저는 자스민 차나무가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자스민 차가 자스민 꽃잎의 향기를 덮은 '녹차'라는 설명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놀라며 반응한다. 차나무는 단 한 종뿐이다. 만드는 제조법에 따라 여러 차로 나뉠 뿐이다. 자스민 차는 가향차(加香茶)의 일종으로 차에 자스민 꽃향기를 입힌 차다.

자스민(Jasminum sambac) 꽃은 인도·페르시아가 원산지다. 당나라 시기(7세기 전후)에 중국에 전래하였다. 녹차에 자스민 향을 입히는 기법은 송나라(960~1279) 때 기록에서 처음 나타나며, 본격적인 향차 문화는 명·청대(14~18세기)에 정착되었다.

명·청 시절 북경 문인들 사이에서 자스민 차는 시, 음악과 함께 즐기는 풍류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청나라 강희·건륭제 시대에 황실에서도 애용했다.

19세기 중엽, 자스민 차는 유럽, 러시아, 중동에도 알려졌다. 곧 유럽 상류층 살롱에서 유행되었다. 특히 차 산지와 떨어진 곳에서 자스민 차는 인기가 있다. 차 생산지에서 멀수록 차의 향을 유지하기 어려워 향을 더했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자스민 차의 향기

,

어떻게 스며드는가

?

자스민 꽃은 낮에는 닫혀 있다가 저녁에 피며 향을 강하게 발산한다. 따라서 오후 늦게 수확한 자스민 봉오리를 이용, 밤에 향을 배게 한다.

향배(香配, Scenting)는 찻잎과 자스민 꽃을 교대로 쌓아두어, 꽃이 피면서 발산하는 향을 찻잎이 흡수하는 과정이다. 보통 6~8시간 지속한다.

고급 자스민 차는 5~7회 이상 향배 과정을 반복한다. 향이 충분히 배면 꽃은 제거하고, 마지막에 극소량의 꽃을 장식용으로 남긴다. 향을 머금은 차를 다시 건조해 보관한다.

자스민 향의 주요 화학 성분은 꽃이 피면서 방출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들이다. 이들 분자는 꽃잎의 삼투압·효소 반응과 개화 시 대사 활성에 의해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찻잎은 기본적으로 폴리페놀, 단백질, 당류, 셀룰로스로 구성된 다공성 구조체이다.

이 구조가 향 분자를 받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에서 나온 휘발성 분자가 공기 중으로 확산하면 찻잎 표면의 극성 수산기, 단백질의 아미노기와 약한 수소 결합 또는 소수성 상호작용을 형성하여 향 분자가 잎 표면에 흡착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자스민 차와 꽃(Zest Tea), 자스민 향배(China Today), 관계의 존재론 설명 도식. 사진=유영현 제공

이 향은 물이 찻잎을 적시면 떨어져 나온다. 따뜻한 물을 부으면 찻잎의 세포벽과 세포 간극이 수분을 흡수해 팽윤된다. 이 과정에서 잎 속에 저장되어 있던 향 분자가 잎 내부에서 밀려 나와 표면으로 확산하고, 온도의 에너지가 향 분자-찻잎 성분 사이의 약한 결합을 끊어준다.

따뜻한 물 표면에서 향 분자는 기화(증발)한다. 대부분 향기는 차표면 위의 공기층(headspace)에 농축되어 우리는 코로 자스민 향을 맡게 된다. 일부는 물에 녹고, 차를 마시는 우리는 혀로 그 향기로운 맛을 느낀다. 후각과 미각이 동시에 자극되어 자스민 차 특유의 입체적인 감각이 형성된다.

차를 우리는 데는 언제나 온도가 중요하다. 가향차인 자스민 녹차를 우리는 데도 온도가 중요하다. 펄펄 끓는 물로 추출하는 다른 차종과는 달리 녹차는 차 성분을 부드럽게 용출하기 위하여 60~70℃ 물을 사용한다. 이 온도에서 카테킨과 카페인이 과도하게 우러나오지 않고 떫고 쓴맛이 너무 강하지 않다.

마침, 이 농도가 자스민 향을 적절히 용출하는 데 적합하다. 이 온도의 물로 찻잎을 적실 때, 자스민 꽃이 머금은 벤질 아세테이트와 리날로올 같은 향 분자들이 풀려나온다.

벤질 아세테이트와 리날로올은 끓는점이 210~250℃ 이상이다. 물 온도가 높을수록 이들 향 분자는 빨리 풀려나오지만, 너무 뜨거우면 향 분자가 급격히 휘발 확산하여 향 지속력이 짧아진다.

이 향 분자들은 분자량이 적어 60~70℃ 물에서도 휘발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온도에서 향 성분을 서서히 고르게 방출시킨다. 녹차 성분을 추출하는 온도에서 자스민 향도 서서히 분출되어 은은한 향을 내니 조화가 절묘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자스민차라 부르는 차는 60~70℃에서만 제대로 된 자스민 차인 셈이다.

약효와 온도의 미묘한 관계

의약품도 '온도'라는 조건에 따라 효능이 다르다. 온도라는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약은 몸에서 작용해야 하니 대부분 사람 체온에서 활성화된다.

그런데, 약은 온도에 민감하다. 약은 섬세한 분자 구조이기에, 대부분 과열에 취약하다. 저장 온도에 따라 존재가 바뀌는 약들도 흔하다.

백신과 인슐린, 혹은 성장호르몬 같은 단백질 의약품은 차가운 온도에서 보관해야만 약으로 기능한다. 2~8℃의 차가운 온도에서 보관해야 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단백질이 변성되어 3차 구조가 붕괴하고 수용체와 결합할 수 없어져서 그 효능을 잃는다.

세포 치료제도 온도 관리가 핵심이다. 세포가 살아있어야 하므로 가열하면 죽는다. mRNA 백신은 -70℃ 초저온에서 보관하고 사용 전 2~8℃에서 해동 후 실온에서 주사한다. 만약 따뜻한 물로 빨리 녹이려 하면 mRNA가 분해되어 효력이 상실된다.

항생제 주사제의 경우 끓는 물에서 녹이면 약효를 잃고, 단백질 약물은 구조가 풀려 변성된다. 이 약들 모두 차가운 세계에서는 약물이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온도에 따라 존재론적 지위가 바뀐다.

어떤 약들은 뜨겁게 해야만 제 역할을 한다. 흡입 마취제가 대표적이다. 세보플루란, 할로탄 같은 약물은 상온에서는 액체이지만, 전용 기화기에 들어가 가열될 때 정확한 농도로 증기가 되어 폐를 통해 들어간다. 차에서 향이 피어오르듯, 이 약들은 열을 통해 기체가 되어야만 의식을 끊는 힘을 갖는다.

또 다른 예는 온열 민감성 항암제다. 리포좀 속에 담긴 독소루비신은 체내를 떠돌다가, 암 부위에 고주파 온열치료로 열이 가해질 때만 방출된다.

전통 약재도 마찬가지다. 인삼의 진세노사이드나 감초의 글리시리진은 끓는 물로 달여야만 제대로 추출된다. 고온의 불길이 아니면 감추어 둔 성분을 내어주지 않는다.

몸의 온도가 의약품을 다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39~40도의 체온을 가진 환자에서 간 효소의 활성도가 변하고 약물대사 속도도 바뀌며 단백의 결합 능력도 바뀐다. 같은 용량의 약도 효과가 약해지거나 독성이 강해진다.

이처럼 고열이라는 몸 환경 속에서 약의 효능이 달라진다. 패치형 약물의 경우 피부 온도에 따라 흡수율이 바뀐다. 피부 온도가 올라가면 혈류가 증가하고 약물 흡수 농도가 증가한다. 흡수율이 변하면 약물은 효능이 없어지기도 한다. 다른 존재가 되는 셈이다.

체온은 약의 작용 방식도 바꾼다. 마취 가스는 온도와 압력에 따라 기화 속도가 달라지므로 마취 깊이에 영향을 준다. 온도가 바뀜에 따라 같은 마취제는 더 강한 약이 되기도 하고 더 약한 약이 되기도 한다.

조건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

어떤 효능을 가지냐에 따라 우리는 "이 약은 혈압약", "이 약은 항생제"라고들 말한다. 일견 그 효능이 약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철학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에 따르면 존재는 사물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자스민차에는 자스민 향기라는 속성이 들어있고 약에는 고유한 효능이라는 성질이 들어있다. 향기도, 효능도 고정된 본질로 보인다.

그런데 차의 향기도, 약의 효능도 온도라는 조건이 맞아야 드러난다. 조건이 맞아야 본질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자스민의 향기도, 약의 효능도 모두 고정된 존재인지 의문이 든다.

약은 냉장고라는 온도, 37도라는 정상체온을 가진 사람의 환경, 열이 나는 몸, 따뜻한 피부 등 조건들과 관계를 맺으며 기대하는 약이 되기도 하고 기대하는 약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약의 정체성은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온도라는 환경과 맺는 관계 속에서 매번 새롭게 형성된다.

현대철학은 '관계적 존재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관계적 존재론은 개별 존재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들과의 상호작용과 연결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이룬다는 관점이다.

자스민 차의 향기든, 약의 효능이든 절대적 본질이 아니라 온도라는 조건 속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그 향기에 힘입어 행복하고 그 효능에 힘입어 치유되지만, 향기도 효능도 자스민 차나 약물 속에 내재하는 본질은 아니다. 온도에 따라 향이 날아가 버리거나, 약의 효능이 없어지니 이들은 고정된 본질로 보기 어렵다.

현대철학은 말한다. 행복도, 치유도 향기나 성분이 아닌, 관계의 결과이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¹ì‹ 2026´ëª…궁금˜ì‹ ê°€

지ê¸ë°”로 AI가 분석˜ëŠ” 가•교¬ì£¼ 리포¸ë 받아보세

´ëª… œë‚˜ë¦¬ì˜¤ •인˜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