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서 재감염 가능성 확인…세균성 질염을 성매개 감염으로 볼지도 논쟁
최근 연구에서 남성이 증상이 없는 상태로 세균성 질염과 관련된 세균을 보유하고 있다가 성관계 과정에서 여성에게 다시 전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연구에서 남성이 증상이 없는 상태로 세균성 질염(Bacterial vaginosis, BV)과 관련된 세균을 보유하고 있다가 성관계 과정에서 여성에게 다시 전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동안 BV는 주로 여성의 질 내 세균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여겨져 왔지만, 반복 감염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남성 파트너를 통한 재감염 가능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재발성 BV를 겪는 여성 환자의 남성 파트너까지 함께 치료하는 방식이 일부 의료 현장에서 시도되고 있다.
비린 냄새와 가려움…여성 3명 중 1명꼴, 세계적으로 흔한 질 감염
세균성 질염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흔한 질 감염으로, 여성 3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한 비린 냄새와 질 분비물 변화, 가려움 등의 증상을 유발하며, 일부 연구에서는 불임이나 조산 위험과의 연관성도 보고돼 있다. 그동안 BV는 성매개 감염병이 아닌 질 내 세균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인식돼 왔다.
영국 일간 더선 보도에 따르면 런던 북서부 지역의 일부 성건강 전문의들은 재발성 BV 환자의 남성 파트너에게 항생제 치료를 제공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도입하고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성건강 및 HIV 전문의 샬럿-이브 쇼트 박사는 이미 약 12명의 남성 파트너 치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방식은 커플이 함께 항생제를 복용하고, 남성에게는 음경에 바르는 항생제 연고가 추가로 처방되기도 한다.
재발율 높은 원인 중 하나…남성 파트너 통해 재감염
BV는 재발률이 높다. 항생제 치료를 받은 여성의 절반 이상이 6개월 이내 다시 감염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의료진은 이러한 재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남성 파트너를 통한 재감염 가능성을 오래전부터 제기해 왔다.
연구자들은 BV와 관련된 세균이 음경 표면이나 남성 요도에 존재할 수 있으며, 성관계 과정에서 다시 여성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은 증상이 없어 자신이 세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도 최근 발표됐다.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진이 재발성 BV를 가진 여성과 그 남성 파트너 150쌍을 추적 관찰한 결과, 여성은 모두 항생제 치료를 받았지만 남성 파트너는 절반만 치료했다.
연구진은 3개월 추적 관찰에서 파트너 치료가 재발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자 연구를 조기 종료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학술지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됐다.
영국 지침, 남성 파트너 치료 권고 개정 작업 중
이 연구 이후 일부 의료진은 남성 파트너 치료를 시도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세인트조지스 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오스틴 우그우마두 박사는 해당 연구가 유망한 결과를 보였지만, 지침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큰 규모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파트너 치료를 일반화할 경우 많은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 이점이 잠재적 위험보다 분명히 크다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영국의 세균성 질염 진료 지침은 '영국 성건강 및 HIV협회(BASHH)'가 마련한 것으로, 마지막 전면 개정은 2012년에 이뤄졌다. 기존 지침에서는 남성 파트너 치료를 권고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연구 결과를 반영해 지침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며, 일부 상황에서 파트너 치료를 고려하는 방향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성매개 감염으로 분류 논쟁도
한편 BV를 성매개 감염으로 재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쇼트 박사는 BV가 불임과 조산, 다른 성병 위험 증가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질환을 더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BV가 성 활동과 관련될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성병처럼 파트너 간 직접 전파되는 질환으로 규정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런던 클리닉의 산부인과 전문의 헤만트 바카리아 박사 역시 현재 지침에서는 BV를 성매개 감염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지만, 향후 연구 결과에 따라 분류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