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구팀 “지갑사정 안좋아질수록 기억력 빠르게 떨어져”
불행은 연달아 온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기억력 노화도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장년기 이후에는 '지갑 사정'이 나빠질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보스턴대·노스웨스턴대 공동 연구팀은 미국의 50세 이상 성인 7676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경제 상황 변화와 기억력의 관계를 확인했다. 경제상황은 2010~2016년을 기준으로 추적했고, 기억력 변화는 2016~2020년을 기준으로 추적했다.
연구팀은 개인의 경제 상황을 '단순 소득'이 아닌 종합적 지표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소득·생활비 부담 정도·자산 부족을 체감한 빈도·부족한 수입 때문에 약값을 줄인 경험 등을 모두 반영해 0~8점의 점수로 기록했다. 점수가 높을수록 재정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나타낸다.
기억력 역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단어 기억 테스트를 진행한 후, 이를 보호자 평가와 합산하는 방식으로 측정했다. 즉 참가자들의 개인 설문에 의존하지 않고 비교적 신뢰도 높은 표준화 점수를 마련한 셈이다.
조사 결과, 참가자들의 재정 상태가 나쁠수록 기억력이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점수가 1점 높아질 때마다, 참가자들의 노화 속도는 1년당 2개월씩 빨라졌다. 정상적인 노화 속도를 가진 사람이 1년치 늙을 동안, 점수가 1점 높아진 사람은 1년 2개월치를 늙었다는 의미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재정 상황이 큰 폭으로 나빠진 참가자들은 기억력 악화폭이 더 컸다. 분석 기간인 4년 내에 점수가 2점 이상 증가한 참가자들은 연간 평균 5개월의 추가 노화를 겪었다.
이같은 경향은 특히 65세 이상의 고령층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단, 연구팀에 따르면 반대로 경제 상황이 좋아진 참가자들에게 기억력이 회복되는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경제적 부담이 만성 스트레스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돈 걱정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 때문에 생각할 여유 자체가 줄어들며 뇌 기능이 빠르게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또 재정 부담을 겪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병원이나 약, 영양균형이 맞는 식단 등에 투자할 예산을 줄이면서 의료 접근성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도 유력한 이유로 지목됐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아디나 제키 알 아즈리 컬럼비아대 공중보건대 교수는 "개인의 경제사정이 인지 노화와 연관된 새로운 건강 결정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장기간의 재정적 부담은 부정적인 인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분석만으로는 인과관계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구진의 해석과는 반대로 기억력이나 인지 기능이 떨어진 노년층이 돈 관리에 문제를 보이면서 경제상황이 안 좋아졌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팀은 대규모 추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 질병 역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