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2000개 다시 뚫었던 그가 이번엔 ‘지필공’ 막힌 곳을 말하다
부산 센텀종합병원 박남철 병원장(비뇨의학과)이 최근 현미경적 미세 정관복원술 2000례를 달성했다. 단일 시술자 기준으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기록이다. 부산대병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그는 대한남성과학회, 대한남성갱년기학회, 대한성학회 등을 이끌며 한국 남성의학과 남성 난임 분야를 오래 지켜온 의사이기도 하다.
미세 수술 2000례가 말해주는 것은?
미세 정관복원술(Vasovasostomy)은 수술 현미경 아래에서 매우 가는 정관을 다시 잇는 고난도 수술이다. 주로 정관절제술을 받은 뒤 다시 임신을 원할 때 고려한다. 목표는 자연임신 가능성 회복이다. 하지만 단순히 끊어진 부위를 다시 연결한다고 끝나는 수술은 아니다.
"정관의 안쪽 통로는 워낙 가늘어 수술 현미경 없이는 정밀한 복원이 쉽지 않습니다. 미세 봉합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에요. 정관만 막힌 것인지, 부고환까지 2차 폐쇄가 생긴 것은 아닌지도 두루 살펴야 하죠."
정밀 현미경을 통해 가느다란 정관을 복원하는 수술을 하고 있는 박남철 병원장(왼쪽). 비뇨의학과 전문의로 그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해온 정관복원술가 최근 2000례를 넘어섰다. 사진=센텀종합병원
의사 손기술만 좋다고 되는 수술이 아닌 것.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며 쌓인 경험이 필요하다. 수술 중 정관액 상태와 정자 통과 가능성을 읽는 판단도 따라야 한다. 그래서 그의 2000례는 단순한 누적 건수라기보다, 고난도 술기를 오래 붙들어 온 시간의 축적에 가깝다.
하지만 이렇게 난도가 높은 수술도 의료제도 안으로 들어오면 전혀 다른 문제와 만난다.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고 숙련된 술기가 필수지만, 보상 구조는 그만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비와 인력을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데, 실제 수가 체계가 그 노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남성 난임엔 왜 우리가 무관심할까?
게다가 남성 난임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은 또 다른 문제다. 그는 "지금의 초(超)저출생 상황은 국가적 위기"라며 "하지만 정작 남성 가임력 보존과 난임의 조기 진단·치료는 여전히 정책과 사회 인식의 바깥쪽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사실 여성 난임은 상대적으로 많이 논의된다. 반면 남성 난임은 여전히 덜 말해진다. 그래서 남성은 가임력 저하 문제가 있어도 너무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산대병원 시절부터 남성 난임 클리닉과 정자은행 운영에 오랜 시간 힘을 쏟아왔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남성 난임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지 않으면, 절반만 보고 가는 셈"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 무겁게 들린다.
박남철 병원장. 사진=센텀종합병원
"
사람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그가 보기엔 한국 의료 전반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지역의료, 필수의료, 공공의료, 즉 다들 '지필공'을 얘기하지만 "의사가 부족하다"는 쪽으로만 화제가 모이는 현실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오히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 더 진짜 문제"라 했다.
"어떤 진료과에, 어떤 보상으로, 어떤 수련 구조를 통해 의사를 길러내고 남게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죠. 밤을 새며 중증 수술을 하는 의사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분야의 보상이 거꾸로 설계돼 있다면, 필수과 기피는 당연한 결과 아니겠어요?"
미국 사례도 들었다. "중증 환자를 다루는 외과계 의사들에게는 그만큼 높은 보상이 주어지고, 상대적으로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분야는 보상 구조가 다르다"고 했다.
일본 이야기도 꺼냈다. "한때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이 심했을 때, 일정 영역에서는 수련 기간이나 과정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하거나 단기 재교육으로 현장을 보강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이미 개원해 있는 일반 의사들에게 필수응급의료 재수련이나 참여 기회를 폭넓게 제공한다면, 지금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새 의사를 길러내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인력을 다시 훈련하고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방식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포괄2차, 응급의료와 지역의료의 허리 역할 하려면?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역의료 구조로 옮아갔다. 박 병원장은 대학병원이 모든 것을 떠안는 구조로는 지역의료가 건강하게 굴러가기 어렵다고 봤다. 대학병원은 교육과 연구의 중심축이어야 하고, 일반 병원에선 하기 어려운 고난도 중증(重症)질환이나 복합(複合)질환, 또는 난치성 질환에 집중해야 한다. 반면, "실제 지역 주민의 의료 수요를 받아내는 필드의 허리는 시립병원과 공공병원, 그리고 역량 있는 지역 종합병원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그리고 서울대병원이 서울시 위탁으로 운영하는 서울시립보라매병원 관계도 하나의 참고 모델이 된다. 대학병원이 교육·연구의 중심을 잡고, 시립병원이 지역 공공의료와 현장 진료를 책임지는 구조다. 역할이 비교적 분명하니 협력도 시스템 안에서 굴러간다.
박 병원장은 부산에서도 한때 그런 모델을 고민했다고 했다. 부산대병원과 부산의료원이 협력병원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공의료와 지역 필수의료를 함께 받쳐주는 형태.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람과 예산, 책임 구조가 함께 맞물리지 않을 때, 좋은 구상만으론 시스템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박남철 병원장(가운데)은 지역 보건의료 발전과 학술 활동, 사회봉사 공로로 지난해 4월, '제26회 부산문화대상'을 받았다. 사진=센텀종합병원
응급의료 문제를 보는 그의 시선도 비슷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단순히 구급차가 늦거나 병상이 없어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고 그는 봤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적 판단과 조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병원이 먼저 보고, 어디까지 안정화한 뒤, 어떤 병원으로 넘길지 누군가는 판단해야 한다.
그는 과거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 체계'처럼 의료기관이 중심에 서서 환자를 분산하고 조정하던 기능을 떠올리며, "지금은 119가 들어와 환자 이송 체계는 더 좋아졌다지만 의료적 컨트롤타워는 오히려 취약해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포괄2차', 간판보다 중요한 것은?
센텀종합병원 같은 지역 종합병원의 공공재적 역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고 그는 본다. 상급종합병원과 1차 의료기관 사이에서, 지역에서 발생하는 중증 환자를 안정적으로 수용하여 응급 상황에서 가능한 선까지 의료적 문제를 우선 해결해주는 중간 허리 말이다. 정부가 "이들 '포괄2차종합병원'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도 결국 이런 기능을 살리려는 방향일 수 있다.
다만 간판만 붙인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24시간 응급 대응 체계, 적정 보상, 1차~2차~3차 병원 간 아낌없는 진료협력, 공공과 민간의 역할 조정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박 병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남성 난임과 정관복원술을 30년 이상 외골수처럼 파고든 임상의였고, 부산대병원장을 두 차례 지낸 행정가였으며, 국내외 학회를 이끈 학계 리더이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지역 종합병원 현장에서 묵묵히 환자를 보고 있다.
그러니 그가 지역의료를 말할 때, 그것은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여러 자리에서 같은 문제를 반복해 경험해 본 임상의가 내린 '현장 진단'에 가깝다. 아무리 의료기기가 좋아져도, 심지어 AI가 들어와도 경험 많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며, 만지며, 얘기 나누며 내린 대면 진료의 가치를 우리가 특별하게 존중하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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