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필 의학원장 “190만 ‘암 생존자’, 이들 위한 후속 대책 필요”…포괄2차 대응과 방사성동위원소, 입자치료로 확장
정승필 신임 의학원장. 사진=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환자의 싸움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를 무사히 마친 뒤에도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쉽게 지치고 통증은 남는다.
폐나 심장 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환자는 5년을 넘긴 뒤에도 다시 재발하고, 어떤 환자는 다른 장기에 새 암이 생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정승필 신임 의학원장이 가장 먼저 꺼낸 화두도 바로 이 지점. 그는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기존 암 진료 방식 너머의 재활과 후유증, 재발 감시, 2차암 점검, 통증, 호스피스 전 단계 돌봄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보자"고 했다.
이른바 '암 전(全)주기 관리'다. 그는 특히 "고령층 암일수록 치료가 1~2년 단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주기에 걸쳐 이어져야 할 필요가 더 크다"고도 했다.
5
년 살아있으면 완치(완전관해)됐다고?
정 원장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지금의 암 진료 체계는 진단과 급성기 치료에는 강하지만, 그 뒤의 긴 시간을 붙들어 두는 데는 빈틈이 적지 않다는 것. '5년 생존율'이라는 기준이 통계상 의미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환자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기 때문.
그는 "6년, 7년, 8년째 재발하는 환자, 암 치료 뒤 떨어진 심장·폐 기능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다시 입원하는 환자, 또 다른 장기에 새 암이 생기는 환자들"을 함께 언급했다. 그러면서 "치료가 종료된 '암 생존자'가 전국에 190만 명"이라며, "부울경만 놓고 봐도 35만 명 정도는 될 것"이라 했다. 이어 "이들 가운데 일부라도 시범사업 형태로 등록해 추적검사와 후속관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환자, 지역에서 암 치료 이어가려면?
여기엔 지역 현실도 있다. 정 원장은 "최근 5년 동안 부산·울산·경남 주민 가운데 서울 주요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은 암 환자가 약 25만 명이고, 이 가운데 40%가 65세 이상"이라 했다. 직접 진료비만 1조 원 수준, 보호자 교통비와 숙박비 등을 합치면 2조~3조 원 정도가 든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에서의 치료 이후엔 그 병원과 연결이 끊어져 버린 뒤다. 지역 병원에선 가능하면 이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갖는 의미가 나온다. 이 병원은 2015년부터 다학제 통합진료를 운영해 왔다. 내과와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등 여러 전문의가 환자의 병기와 전신 상태, 체력, 재발과 합병증 가능성을 함께 보고 치료 방향을 정하는 구조다.
한 번의 수술이나 항암 처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 환자군에 더 적합한 모델. 전주기 관리가 말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결국 이런 협진 기반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가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을 지원한 까닭은?
그가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공모에 지원한 이유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원래 정년 이후에는 쉬면서 다른 공공의료 활동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주위 권유로 공모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원자력'과 자신이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홈페이지와 자료를 살펴보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으로서 연구개발 기능이 강하고, 병원 진료와 연구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평소 중입자(carbon ion), 양성자(proton) 같은 '입자 치료'에 관심이 컸고, 이를 노인 암 환자 치료와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꾸준히 유지해온 것도 한몫 했다. 그런 활동 덕분에 2024년 과기부 장관상도 받았다.
사진=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이력도 독특하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면서 서울대에서 예방의학 석사와 임상역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렇게 임상과 연구를 함께 해온 경력이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독특한 구조와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암 치료에 특화한 종합병원 기능에다 방사선 의학 연구 기능, 방사선비상진료 기능이 함께 있는 구조여서다.
포괄2차 지정 이후, 병원 역할 어떻게 달라지나?
이번 '포괄2차' 지정도 그런 흐름과 맞물린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지난해 7월 정부로부터 포괄2차종합병원으로 선정됐다. 전국 175곳, 그중 부울경은 30곳이다.
정부가 포괄2차 병원에 요구하는 것은 적합질환(DRG-B군) 중심 진료, 24시간 응급 대응, 상급종합병원~포괄2차~지역 병·의원 진료협력, 지역완결형 필수의료다. 중등도 질환 중심의 필수 의료를 하면서 응급의료, 지역의료의 핵심과제들을 풀어갈 주력으로 이들을 선정한 것이다.
정 원장의 '암 전주기 관리'는 결국 이 병원이 "암을 잘 치료하는 기관"을 넘어 "치료 이후의 회복과 연계 진료까지 책임지는 지역 거점"으로 역할을 넓혀가는 접점일 수 있다. 암 특화 공공병원이면서도, 포괄2차 병원으로서 지역 안에서 환자를 더 오래, 더 넓게 책임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사성동위원소에 중입자, 양성자 치료까지...암치료 메카 노린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앞으로 방사성의약품 치료와 입자치료 연계에서도 잠재력을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와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를 활용한 치료는 이미 시작했다.
특히 플루빅토 치료는 비수도권에선 처음이다. 기존 치료에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된다. 정 원장은 이를 두고 "단순한 신기술 도입을 넘어 지역 치료 접근성을 넓히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방사성동위원소 치료 역량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Ga-68 PSMA PET/CT 검사 인프라를 갖추고, 진단-치료-콜 축적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지역 대학병원들까지 잇따라 찾아와 이를 견학할 정도다.
하지만 더 큰 잠재력은 2027년 오픈할 서울대병원 중입자치료센터.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바로 옆에 들어선다. 환자들이 서울로 가지 않더라도 이 지역에서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현재의 카드, 미래의 카드…지역 의료의 새 과제로
정 원장은 이에 중입자치료 전후의 진단과 입원, 후속 치료를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맡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다 양성자 치료까지 더해지면 부산 기장군 일대는 전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권 방사선의학 클러스터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방사성동위원소 치료와 플루빅토가 현재의 카드라면, 입자치료 연계는 앞으로의 카드다. 여기에 암 치료가 끝난 뒤에도 다시 환자를 받아내고, 재발과 후유증, 통증과 돌봄까지 길게 책임지는 '암 전주기 관리'가 더해진다면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미래상은 뚜렷해진다. 그가 그리는 청사진이 단순한 병원 비전 차원을 넘어 지역 의료의 새로운 과제로 읽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