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글래드스톤 연구소, APOE4 뇌 과흥분 경로 규명…"억제하면 정상 회복 가능성"
겉으로는 기억력에 문제가 없어 보여도 특정 유전자를 가진 경우 뇌에서는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0대 직장인 A씨는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뒤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결과지에 'APOE4 양성'이라는 표시가 찍혔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60~75%에서 발견되는 유전자. 지금 인지 기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안심해도 될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독립 비영리 생명과학 연구기관인 글래드스톤 연구소 연구팀의 대답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이다. 현재 기억력이 정상이어도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뇌는 이미 오래전부터 달라지고 있을 수 있다.
연구팀은 그 변화의 분자 수준 경로를 처음으로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그 변화를 되돌릴 가능성까지 확인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연구는 4월 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실렸다.
"이미 알고 있었다"…이번이 다른 이유
APOE4는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보유한 유전자 변이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한 유전적 위험 인자다.
APOE4 보유자의 뇌가 기억 이상 없이도 과활성 상태(뇌 신경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쉽게 흥분하고 계속 신호를 내는 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40세 미만의 건강한 보유자에서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활동이 더 활발하다는 연구는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이 과활성이 이후 기억력 저하를 예측한다는 점도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왜'였다. APOE4가 어떻게 뉴런을 과흥분 상태로 만드는지, 그 분자 경로가 무엇인지, 또 APOE4를 주로 만드는 별세포(성상세포)가 원인인지, 아니면 뉴런 자체가 문제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풀었다.
과활성의 원인이 별세포가 아닌 뉴런 내부의 APOE4임을 확인했고, 그 매개체가 'Nell2' 단백질이라는 점을 규명했다. 또 기억이 정상인 어린 시절부터 변화가 시작돼 노년기 기억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연령별 실험으로 입증했다.
공동 교신저자(연구 설계와 결과 해석을 총괄하는 책임 연구자) 미샤 질베르터 박사는 "연령대별로 뉴런 기능 변화를 직접 확인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시냅스는 뉴런 사이에서 신호가 오가는 접점으로, 이 신호가 과도하게 전달되면 뇌 회로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런 작아지면 왜 위험해지나
연구팀은 APOE4를 가진 어린 쥐의 해마에서 뉴런 크기가 더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포가 작아질수록 외부 자극에 더 쉽게 반응하게 되고, 이로 인해 뉴런은 불필요하게 계속 흥분하는 과활성 상태에 빠진다.
마치 민감해진 화재경보기가 작은 연기에도 계속 울리듯, 기억 회로는 불필요한 신호로 채워진다. 그 결과 중요한 정보 처리가 방해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회로 자체가 소진된다.
결국 뉴런이 작아질수록 뇌는 불필요한 신호에 더 쉽게 반응하고,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기억 회로 자체가 점차 망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이 어린 쥐를 장기간 추적한 결과, 이 과활성 정도는 노년기 기억력 저하와 관련이 했다. 어린 시절 뇌가 더 과하게 반응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 저하가 더 크게 나타났다.
공동 교신저자 야동 황(Yadong Huang) 박사는 "APOE4가 정상 노화 변화를 수십 년 앞당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범인은 Nell2
연구팀은 APOE4 뉴런에서 특히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를 단세포 RNA 분석으로 추적했고, 그 결과 'Nell2' 단백질을 특정했다. Nell2는 기존에도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APOE4와의 직접 연결고리는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결정적 단서는 제거 실험에서 확인됐다. 별세포에서 APOE4를 제거했을 때는 변화가 없었지만, 뉴런에서 제거하자 세포 크기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또 성체 쥐에서 Nell2 발현을 낮추자 줄어들었던 뉴런 크기가 회복되고 과활성도 사라졌다.
황 박사는 "성체에서도 변화가 역전된 점은 중요하다"며 "질환이 시작된 이후에도 개입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치매 위험이 나타나기 훨씬 전, 증상이 없는 단계에서도 뇌 변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분자 수준에서 처음 설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쥐 모델을 기반으로 한 결과인 만큼 인체에서도 동일한 경로가 작동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Nell2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 역시 임상 적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APOE4 보유 여부는 혈액 유전자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치매 가족력이 있다면 신경과 전문의와 상담해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또 유산소 운동과 충분한 수면, 혈압·혈당 관리, 인지 자극 활동은 뇌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을 낮추고 손상 환경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과 구조 변화가 뉴런 단계에서 시작됨을 보여준 이번 연구는 생활 습관 관리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된다.
[치매 유전자, 지금 무엇을 알아야 하나]
Q1. APOE4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반드시 치매가 생기나요?
A1. 그렇지 않습니다. APOE4는 치매 위험을 높이는 유전 요인이지만 발병을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증상이 없을 때도 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Q2. 기억력이 정상인데도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A2.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족력이 있거나 위험을 알고 싶은 경우 전문의 상담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유전자 검사는 심리적 부담이 클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Q3.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예방 방법은 무엇인가요?
A3. 유산소 운동, 충분한 수면, 혈압·혈당 관리, 인지 자극 활동은 뇌 과활성을 줄이고 치매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생활 습관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 셈입니다.
Q4. Nell2를 차단하면 치매를 막을 수 있나요?
A4. 쥐 실험에서는 뉴런 이상이 회복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다만 사람에서도 같은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고, 실제 치료제로 개발되기까지는 추가 연구와 임상시험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