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52. 의학과 차에서 만난 벌레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Die Verwandlung)의 첫 문장은 차갑고 단호하다.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위에서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주인공이 갑작스레 벌레로 변신하는 이 장면을 통해 작가는 갑작스러운 자아와 육체의 분열,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세계,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비합리성과 공포, 그리고 인간 내면 깊은 무의식의 절규가 펼쳐질 것임을 담담하게 시사한다.
문학 속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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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는 이 설정은 문학사에서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이다. 카프카는 의도적으로 벌레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는 출판사에 독자의 상상이 중요하므로 어떤 벌레도 그려 넣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벌레의 정체에 대해서 광범위한 논쟁이 벌어졌다. 후대의 해석자들은 카프카가 사용한 독일어 단어를 근간으로 벌레가 딱정벌레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는 바퀴벌레였고 실제 출판에는 표지디자인에 바퀴벌레가 자주 등장하였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카프카의 '변신' 소설 표지(삼성출판사),절지동물들 (블로그 - 다니엘 생명과학이야기), 충수 (Research Gate), 차벌레가 찻잎을 갉아 먹은 부분 (CNN travel), 좀벌레가 보이차 포장지를 갉아 먹은 모습 (공부차). 사진=유영현 제공
벌레라는 말의 감정적 무게
벌레는 엄격한 생물학적 기준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가늘고 기다란, 다리 없는 생물 혹은 기어다니는 생물"을 포괄하는 일상어다. 보통 벌레라는 단어에는 인간의 감정이 실려 꿈틀거리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가진 불쾌하고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생물을 뜻한다.
벌레와 worm에는 한국과 영미권 모두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함께한다. '벌레 같은 놈', '벌레만도 못한 놈'에서 벌레는 비하나 혐오에 사용된다. 영어로 'a worm in the brain'은 고통스러운 생각을, 'you worm'은 비열하고 비굴한 사람을, 'worm-eaten'은 타락하거나 부패한 상태를 의미한다.
벌레는 작고 미미하고 혐오스럽지만 고유한 가치와 역할도 가진 존재이다. 생태계의 분해자, 먹이사슬의 연결 고리로 지구에서 생명이 순환되는데 필수 구성원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하나하나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벌레 전체는 미미하지 않다. 지구상 벌레 모두를 모으면 포유류 수백 배 무게에 이른다.
절지동물과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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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벌레의 경계
흔히 벌레가 곤충이라 생각하지만 벌레는 곤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벌레는 생물의 분류체계에 의하면 절지동물의 일부를 의미한다. 절지동물은 몸이 분절되어 있고, 마디(절)로 되어 있는 동물을 의미한다. 곤충은 절지동물에 속하지만, 모든 절지동물이 곤충은 아니다.
절지동물문(
Phylum Arthropoda
)에는 곤충강, 거미강, 갑각강이 포함된다. 곤충강은 다리 여섯 개를 가지며, 파리, 나비, 개미, 매미 등을 포함한다. 거미강은 다리 여덟 개를 가지며 거미, 진드기, 전갈 등을 포함한다, 갑각강은 다리가 10개 이상으로 게, 새우, 가재 등을 포함한다. 이 중 게와 가재를 벌레라 부르지는 않는다.
의학 전공자들이 공부 초입부에 만나는 벌레는 충수이다. 충수(蟲垂, Appendix)의 어원은 '첨가물', '부속물'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충수는 맹장에 '덧붙여 있는' 부속물이다. 이 충수가 벌레 모양으로 생겨 vermiform appendix(벌레 모양 부속물)라 불린다. 한자어 충수는 벌레가 수직으로 드리워져 있는 모양을 표현한 용어이다.
의학에서 만나는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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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수와 기생충
충수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는 오랜 논란이 있었다. 다윈은 충수를 식물성 섬유 소화에 필요했던 기관의 진화적 잔재로 보았다. 그의 설명대로 육식성 동물에서는 충수가 거의 퇴화한 반면, 초식동물에서는 맹장과 충수가 크다. 영장류 중에서도 풀 위주 식사를 하는 침팬지와 고릴라에서 맹장과 충수의 크기가 크며 잡식성인 인간에게서는 맹장과 충수가 작다.
기껏 충수염이나 일으키는 장기로 여겨졌던 충수는 21세기 들어 면역·미생물 조절 등 일부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2007년 듀크대학 연구팀은 충수가 장내 유익균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발표하였다.
의과 대학생들은 벌레를 기생충 수업에서도 만난다. 숙주에 의존해 생존하면서 몸에 해를 끼치는 생물을 기생충(parasite)이라 총칭한다. 기생충은 생물분류가 아닌 생활사 특징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다양한 기생충이 사람 몸에서 질병을 일으킨다. 최근에는 기생충 감염이 현저히 줄었지만, 기생충 감염은 여전히 주요한 의료 문제이다.
기생충에는 한자로 벌레라는 뜻의 충(蟲)자가 들어있다. 기생충 중 벌레라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은 절지동물 중 기생성 곤충들을 들 수 있다. 벼룩, 이, 진드기들은 체외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며 곤충들이다.
회충이나 촌충 등 일부 기생충은 사람이 직관적으로 벌레라 인식하는 모양을 가졌다. 영어로 회충을 round worm, 촌충을 tape worm이라 부르니 벌레 같은 동물이다. 모양이 벌레와 같아 '기생성 벌레'라 불리는 이들은 절지동물은 아니다. 이들은 연충류(Helminths)이다.
차나무와 차벌레의 공생 관계
차(茶)나무에도 벌레가 산다. 차를 마시면 자벌레에 관한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찻잎에 기생하는 대표 차벌레(Tea leafhopper)는 학명이 작은초록잎매미(
Jacobiasca formosana)
이다. 곤충강-매미목-노린재아목 잎벌레과에 속하는 벌레로 크기 약 2~3mm에 불과한 작은 생물이다. 차밭에 서식하며 차나무의 어린잎과 줄기 주변에 기생하며 찻잎에서 즙을 빨아 섭취하는 곤충이다.
차벌레가 차나무 잎의 즙을 빨아들인 상처에 침을 남기면, 침에 포함된 소화효소, 산화물질, 타액 내 반응성 단백질은 차나무에게는 화학적 공격으로 인식된다. 차나무는 즉시 방어 물질을 낸다.
차나무에서 나오는 방어 물질들은 ▲상처 반응 및 2차 대사 활성을 유도하는 식물 방어 호르몬인 자스몬, ▲꽃과 과일 향의 주성분인 방향족 물질인 테르페노이드, ▲장미향, 복숭아향 등의 휘발성 방향물질인 벤젠계 화합물 페닐프로파노이드, ▲해충을 방어하는 물질로 쌉싸름한 맛을 내는 피롤리딘 알칼로이드, ▲산화 후 향 변화에 이바지하며 떫은맛을 내는 플라보노이드 등이다.
그뿐만 아니라 침 투입 부위에서는 폴리페놀 산화 효소와 페록시다제 등이 활성화되어 찻잎이 미세한 산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에 따라 부분산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타닌 농도는 감소하고 향기 성분(리날룰, 게라니올 등)은 증가하여 맛이 부드러워지고 맛의 복합성이 증가한다. "벌레 먹은 잎이 더 달다"는 차산지 농부들의 경험은 이제 차벌레가 차나무의 화학적 방어 시스템을 자극한 때문으로 설명이 된다.
"
벌레 먹은 잎이 더 달다
":
차의 화학적 변화
차벌레가 차 맛을 좋게 한다는 경험을 쌓은 차 제작자들은 일부 품종에서 차벌레 피해를 일부러 유도한다. 농약을 치지 않아 벌레를 유도하거나 벌레가 많은 해에 수확한 찻잎으로 특정 차를 제작한다. 우롱차 중 동방미인(Oriental Beauty)에서 꽃향기, 과일향, 꿀향을 발생시키며, 백차의 하나인 백호은침과 윈난 우롱차들에서도 독특한 향기를 의도적으로 발생시킨다.
작은 초록잎매미가 차나무에서 향기롭고 고급스러운 풍미를 일으킨다는 과정은 자연적 미세 발효 또는 화학적 예술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관계는 기생(寄生)이라기보다 공생(共生)에 가깝다. 하긴 자연계 모든 기생이 일면 공생이다.
애벌레나 성충이 갉아 먹은 찻잎을 사용하여 만든 차도 있다. 이를 蟲蝕茶(충식차)라 부른다. 식(蝕)은 갉아 먹는다는 뜻이다.
찻잎을 먹은 벌레의 배설물로 만든다는 충시차(蟲屎茶)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시는 똥, 배설물을 의미한다. 충시차는 실제 존재하지 않으며 충식차에 대한 오해라는 한 차 전문가가 쓴 글을 본 적 있다. 가끔 충시차가 판매되기도 하는 현실에서 이 논란은 내 판단의 한계를 넘는다.
경험이 만든 필연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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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가르쳐준 철학
좀벌레 또는 책벌레들은 차를 싸는 종이나 풀을 갉아 먹는다. 벌레 먹은 종이로 싸인 차는 보기에 흉하지만 차 품질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처음 이런 차를 접했을 때 맛있는 차에 이런 벌레들이 서식한다는 설명을 보았다. 차가 맛있다는 말에 현혹되었다. 한동안 포장지가 벌레 먹은 차를 보면 우선 사들였다. 그때는 이 설명이 벌레 먹지 않은 좋은 차들을 부정한다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이 설명과 내 반응에서 인식의 오류를 찾았다. 필연처럼 보이는 것은 종종 반복된 경험이 만든 해석일 뿐이다. 우리가 필연이라 믿는 것은 해석을 굳힌 것일 뿐이다.
철학은 말한다. 경험의 일부를 보편으로 확대하면, 그 판단은 필연을 가장한 편견이 된다.
차벌레가 비웃으며 내게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얼렐레! 우리 같은 벌레 때문에 인간이 차를 사고팔 때 헷갈렸단 말이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