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유전적 변이 가진 형의 줄기세포 이식으로 면역체계 재구성…HIV ‘지속적 관해’ 상태 확인
형의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이하 HIV)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환자 사례가 보고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형의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이하 HIV)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환자 사례가 보고됐다.
후천면역결핍증후군(AIDS)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공격해 방어 기능을 약화시키는 바이러스로, 현재는 약물 치료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제거하는 치료법은 아직 없다.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에 보고된 이번 사례의 환자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63세 남성이다. 이 환자는 2006년 HIV 진단을 받은 뒤, 2010년부터 여러 약물로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ART)를 시작했다. 환자는 이후 오랜 기간 혈액 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억제 상태를 유지했다.
혈액 질환 치료 과정에서 조혈모세포 이식 결정
하지만 2017년부터 피로와 함께 혈액세포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증상이 나타났고, 이듬해 환자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이 질환은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혈액세포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일부는 혈액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초기에는 약물 치료에 반응했지만 이후 재발하면서, 의료진은 결국 골수 이식(조혈모세포 이식)을 결정했다.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해 새로운 혈액과 면역세포가 생성되도록 하는 치료다.
HIV 저항 유전자에 주목…우연히 형에게서 확인
의료진은 HIV에 강한 저항성을 가진 기증자를 찾으려 했다. 핵심은 'CCR5 Δ32'라는 유전적 변이였다. CCR5는 면역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HIV가 세포에 침투할 때 이용하는 수용체다. 이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있으면 CCR5 수용체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두 사본 모두에 변이가 있는 경우(동형접합, CCR5 Δ32/Δ32)에는 대부분의 HIV 감염에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기증자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연구 공동저자인 마리우스 트뢰세이드 박사는 "형제 간 이식에 적합할 확률은 약 25%이며, 해당 변이를 두 사본 모두 가진 사람은 북유럽 인구에서도 약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조직형(HLA)이 일치하는 형이 골수를 기증하기로 했는데, 뜻밖에 시술 당일 검사에서 형이 이 변이를 두 사본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면역체계 재구성, HIV 흔적 사라져…약물 치료 중단 후 3년에도 재증식 없이 유지
이식 이후 환자는 이식편대숙주병이라는 합병증을 겪었지만 치료를 통해 안정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면역 체계가 자리 잡았다. 약 2년 뒤에는 혈액과 골수, 장의 면역세포까지 대부분 기증자의 세포로 대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은 HIV가 숨어 있는 주요 저장고로 알려져 있어, 이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밀 검사에서도 HIV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6500만 개 이상의 CD4 T 세포(HIV의 주요 표적이 되는 세포)를 분석했지만, 증식 가능한 바이러스는 확인되지 않았다.
환자는 이식 2년 뒤 약물 치료를 중단했고, 이후 약 3년 동안 바이러스 재증식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새로운 면역세포는 다른 바이러스에는 정상적으로 반응하면서도 HIV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새로운 면역 체계가 HIV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연구진은 "사실상 완치에 가까운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 상태를 완치로 단정하기보다는, 장기간 바이러스가 억제된 '지속적 관해(long-term HIV-1 remission)' 상태로 표현했다.
이번 사례는 의미가 크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니다. 골수 이식은 기존 면역 체계를 억제한 뒤 새로운 면역세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감염 위험이 높아질 수 있는 치료로, 보통 혈액암 등 다른 중증 질환이 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된다.
현재 HIV는 약물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지만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가 향후 약물 없이도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기능적 완치'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HIV가 정말 완치된 건가요?
A. 이번 사례는 바이러스가 장기간 검출되지 않는 상태로, 연구진은 '완치에 가까운 상태'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과학계에서는 이를 공식적인 완치보다는 '지속적 HIV-1 관해(long-term remission)'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2. 왜 줄기세포 이식이 HIV에 영향을 주나요?
A. 이식된 줄기세포가 새로운 면역세포를 만들어내면서 기존 면역체계를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HIV가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CCR5 수용체에 변이가 있는 경우, 바이러스가 세포에 들어가기 어려워집니다.
Q3. 이 치료를 일반 환자도 받을 수 있나요?
A. 어렵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위험 부담이 큰 치료로, 보통 혈액암 등 중증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만 시행됩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모든 HIV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치료법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