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공 1차의료 36곳 무작위 임상…팀 기반 관리로 120 달성 확인
집에서 혈압을 재고 있는 고령 남성. 약을 먹더라도 수치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약 용량이나 생활습관을 제때 조정하는지가 결과를 가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혈압약을 10년째 먹고 있다. 집에서 재도 140을 넘는 날이 많다.
합병증이 없는 고혈압의 목표는 140/90mmHg 미만이다. 틀린 관리는 아니다. 하지만 심뇌혈관 위험을 충분히 낮추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고혈압은 증상이 거의 없어 방치되기 쉽지만, 혈관 손상을 누적시키며 뇌졸중과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간 연구에서 수축기혈압(심장이 수축할 때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 10mmHg 높아질 때마다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이 증가하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대한고혈압학회가 내놓은 2022년 진료지침에서도 심혈관질환이나 당뇨가 있는 고위험군의 목표 혈압은 130/80mmHg 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다. 기존 치료로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던 저소득층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목표를 120까지 낮추는 시도가 효과를 보였다. 이 연구는 공공 1차의료기관에서 진행됐다.
10년 약 먹어도 140, 왜 그대로일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미국심장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성인 약 47%가 고혈압으로 분류된다. 약 1억 명이 넘는다. 한국 역시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준으로 성인 약 30% 내외가 해당된다.
더 큰 문제는 치료를 받고 있어도 목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한고혈압학회가 발표한 2024년 자료(2022년 기준)에 따르면 치료 중인 환자 가운데 목표 수치(140/90mmHg 미만)에 도달한 비율은 59%에 그친다.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수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약의 문제가 아니라 측정과 치료 조정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복약이 일정하지 않거나 짠 음식, 음주, 흡연, 비만, 수면무호흡병 등이 영향을 준다.
생계를 위해 폐지 등을 파는 고령층에서도 약을 복용하고도 혈압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기 어렵고, 집에서 측정하거나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과정이 지속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가 함께 집에서 혈압을 재고 있다. 혼자보다 측정과 관리가 끊기지 않기 쉬워 수치 변화에 대응하기 유리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목표 120, 실제 진료에서도 가능했다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오도넬 공중보건대학원 장 허 교수 연구팀은 미국 루이지애나·미시시피주 공공 1차의료기관 36곳을 대상으로 무작위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4월 8일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의료기관을 개입군(18곳)과 대조군(18곳)으로 나눴다. 개입군에는 의사·간호사·지역사회 보건요원이 함께 참여하는 팀 진료, SPRINT(수축기혈압 목표를 120mmHg 미만으로 낮춘 임상시험) 기반 방식, 주 3회 이상 가정 측정과 의료진 공유, 복약과 생활습관 점검, 측정 결과에 맞춰 치료를 바꾸는 과정이 적용됐다. 대조군은 기존 지침 교육과 표준 측정만 받았다.
참여 환자 1272명 가운데 73%는 연소득 2만5000달러 미만, 76%는 실업 상태였으며 63%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평균 나이는 59세였다.
18개월 뒤 개입군의 수축기혈압은 평균 16mmHg 낮아졌고, 대조군은 9mmHg 감소했다. 두 그룹 간 차이는 7mmHg였다. 이 정도 차이는 뇌졸중과 심근경색 발생 위험을 낮추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중대한 부작용 발생률은 두 그룹 간 차이가 없었다.
목표를 낮추는 것만으로 끝나는 과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 목표를 따라가는 방식이 성과를 낳았다.
장 허 교수는 "의료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도 효과가 확인됐다"며 "확장 가능한 관리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관리가 어려운 집단에서 효과가 확인된 만큼, 기존 치료로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환자라면 정기적인 진료와 측정이 이뤄질 경우 목표를 더 낮추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120 효과는 이미 확인, 현장은 왜 멈췄나
수축기혈압을 120mmHg 미만으로 낮추는 전략의 효과는 2015년 NIH 주도의 SPRINT 임상시험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다. 해당 연구에서는 목표를 120으로 낮춘 집단에서 심혈관 사건 위험이 약 25%, 전체 사망 위험이 약 27% 감소했다.
다만 당뇨병 환자와 뇌졸중 병력 환자가 제외됐고, 자동 측정 환경에서 평가해 실제 진료실보다 수치가 낮게 나올 수 있다는 점, 저혈압·실신·급성 신손상 증가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로 인해 실제 진료 환경에서 적용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번 임상시험은 그 질문에 답을 제시했다.
그간 고혈압 진단 기준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2017년 미국심장학회는 성인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혈압 기준을 130mmHg로 낮췄지만, 유럽고혈압학회는 2023년까지 140mmHg 기준을 유지했다.
유럽도 방향을 바꿨다. 2024년 가이드라인에서는 대부분의 성인 고혈압 환자에서 수축기혈압을 120~129mmHg 수준으로 낮추는 전략을 기본으로 제시했다.
약이 아니라 방식이 수치를 바꿨다
고혈압은 만성질환이어서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다만 초기이거나 체중 감소, 염분 섭취 조절,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으로 혈압이 안정된 일부 환자에서는 의사 판단에 따라 약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나이가 많거나 당뇨·심혈관질환이 동반된 환자라면 지속적인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혈압이 안정돼 보여도 치료 효과로 유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번 임상시험이 보여준 핵심은 단순하다. 약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자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맞춰 치료를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차이만으로도 취약 집단에서 혈압이 더 낮아졌다.
결국 혈압이 140에 머무르는 이유는 약 자체보다, 목표를 실제로 따라가게 만드는 관리 방식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