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건강하던 22개월 여아가 갑자기 온몸이 돌처럼 굳으며 쓰러진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28일(현지시각) 외신 매체 미러에 따르면 영국 랭커셔주에 사는 생후 22개월 여아 레티는 어느 날 아침 식사를 거부한 지 단 한 시간 만에 구토하고 안색이 창백해지며 쓰러졌다. 아버지 잭의 품에 안긴 레티의 몸은 순식간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레티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의료진은 처음에 열성 경련을 의심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피부가 보라색으로 얼룩덜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입원 4일 후 진행된 검사 결과 레티는 무증상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였다. 다만 증상은 코로나19 자체가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한 급성 괴사성 뇌병증(ANE) 때문이었다.
ANE는 독감 등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 뇌 질환으로, 면역계의 과도한 반응으로 인해 뇌에 심한 염증과 부종이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감각과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핵심 부위인 시상 등을 포함해 뇌간, 기저핵, 소뇌 등이 손상될 수 있다. 레티 역시 이들 부위에 손상이 발생한 상태였다. 잭은 “손상을 일으킨 건 코로나19 자체가 아니라, 레티의 자가면역 체계가 과민반응을 일으켜 스스로를 공격한 것이라고 한다”며 “의사들이 ANE가 극히 드문 질환이며 생존 확률이 약 50%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레티는 100일 이상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지난해 11월에 퇴원했다. 현재는 뇌 손상으로 인해 잃었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물리·작업·언어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거듭한 결과 아직 혼자 움직일 수는 없지만 한 손으로 물건을 잡거나 고개를 드는 등 빠른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NE의 증상은 대개 고열이 발생한 이후 반나절에서 3일 사이에 빠르게 진행한다. 구토, 경련, 의식저하, 뇌압 상승 등의 증상으로 급격히 진행되며, 뇌부종 및 다발성 병변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ANE 환자 중 일부는 완전히 회복되지만, 진단이나 치료가 늦어질 경우 ▲발달 지연 ▲발작 장애 ▲운동·협응 능력 저하 ▲인지·행동 장애 등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ANE는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수록 장기적인 후유증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희대의대 영상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연구팀에 따르면 ANE의 정확한 발병 기전은 아직 불분명하나, 세포 간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작은 면역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혈액뇌장벽이 손상되고 뇌 조직에 염증과 괴사가 생기는 기전이 가장 유력한 가설로 꼽힌다. 인플루엔자가 ANE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바이러스지만, 코로나19를 유발하는 SARS-CoV-2 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엔테로바이러스 등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