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백온유 소설집 '약속의 세대'
백온유 작가가 25일 서울 마포구 카페꼼마 합정점에서 최근 출간한 첫 소설집 '약속의 세대'를 펴들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책이 제 마음에 들어서 너무 좋아요!"
첫 소설집 '백년의 약속'을 펴낸 백온유(33) 작가는 출간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2020년 장편소설 '유원'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보다 앞선 2017년 장편동화 '정교'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니, 9년의 시간을 녹여 만든 첫 소설집이다. "충분히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조판 단계로 넘어간 초교를 받아든 건 지난해 9월이다. "도저히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출간 일정까지 늦췄다. 책은 해를 넘겨 봄이 돼서야 우리 손에 들어왔다. 2021년부터 5년간 써온 단편소설 중 엄선한 7편을 묶었다. 말 그대로 거를 타순이 없다. 한 편 한 편 빠짐없이 재미있다. 책은 출간 하루 만에 중쇄를 찍었다.
수록작 대부분은 이제 성인이 된 주인공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10대 시절의 상처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과거에 매인 채 현재를 살아간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할머니 영실의 사라진 돈 5,000만 원의 행방을 쫓으면서 마땅히 가족을 위해 그 돈의 반의반의 반도 내놓지 않았던 할머니를 되레 원망하는 손녀딸 '현진'('반의반의 반')이 그렇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길러졌다는 부채감에서 할머니 간병을 자처했지만 속으로는 모종의 이유로 적개심을 품고 있는 20대 손녀 '연수'('의탁과 위탁 사이') 역시 마찬가지다.
약속의 세대·백온유 지음·문학동네 발행·352쪽·1만8,000원
25일 만난 백 작가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좋아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삶을 살더라도 과거의 결핍이 때로 트리거가 되듯 유년기의 기억은 한 사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며 "과거의 일들이 모여 한 사람의 겹을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청소년과 성인 소설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잘하는 것을 능숙하게 해냈다.
씨랜드 수련원 참사를 모티브로 한 수록작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화재 사고가 배경인 '유원'과, '의탁과 위탁 사이'는 돌봄을 다룬 또 다른 장편소설 '페퍼민트'(2022)와 각각 이어진다. 그는 "문학은 현실의 시뮬레이션이라는 말, 현실을 반영한다는 데 너무 공감한다"며 "못다한 이야기를 한다고도, 내가 성장하며 더 확장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고도 볼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작품집의 문을 여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작가의 유년기로부터 왔다. 집 밖으로 나서면 "누구네 집 딸 누구"라고 알아보던 경북 영덕의 시골 마을에서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그의 경험이 배어 있다. 소설 속 '영지'는 엄마가 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쫓기듯 떠났던 고향에 내려와 뜻밖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백 작가는 "살면서 가장 마감에 쫓기며 쓴 소설인데 기차 안에서 간신히 원고를 송고했다"며 "평소에는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하고 쓰지만 이 작품은 정신없이 쓰다 보니 내가 많이 들어갔다"고 했다. 그가 꼽은 '최애' 소설이다.
백온유 작가는 "만족스러운 책을 내기 위해 지난해 예정됐던 책의 출간 시기를 미뤘다"며 "(등단 이후 쓴) 더 많은 작품이 있지만 7편만 딱 선별해 실었다"고 했다. 박지연 인턴기자
도드라지는 작품은 '광일'이다.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미발표작. 그는 "청탁 없이 마음 내킨 대로 혼자 썼다"며 "독자들에게 선물받는 느낌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택시기사 광일의 하루를 오롯이 따라가는 이 소설은 기존 백온유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읽는 이의 허를 찌른다. 처음에는 아내를 사랑하고 책임감 있는 가장처럼 보였던 광일이 점점 섬뜩한 면모를 드러내면서다.
백 작가는 "세상에 나쁜 사람이 안 그래도 많은데, 굳이 소설에도 써야 할까 하는 마음에 알게 모르게 자기검열을 했던 거 같다"며 "이제는 악인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 믿는다"고 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겁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소설에 나오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집 제목은 수록작 '사망 권세 이기셨네'에 등장하는 '약속 세대'에서 따왔다. 약속은 7편을 아우르는 공통된 키워드이기도 하다.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세대'가 나온다는 점에서다. 백 작가는 "저마다 헌신하는 만큼 보상이 따를 거라는 기대, 인내하면 찬란한 미래가 당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약속에 매이지만, 그 약속이 자꾸만 파기당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약속의 세대로 묶을 수 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