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욱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대표]
호텔 경험 가치 결정하는 것은 '디테일'
식음료에 사활… '흑백2' 후덕죽 출연 설득도
“마음 움직이는 디테일은 AI보다 사람의 일"
조정욱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대표가 16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나연 기자
인공지능(AI)이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온 시대, 끝내 대체되지 않을 직업은 무엇일까. 일찍이 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는 "몸을 쓰는 일, 사회적 관계와 연관된 직종은 대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예측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최근 책 '디테일리즘'을 펴낸 24년차 호텔리어인 조정욱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 대표는 "AI가 인간의 직관까지는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난 손님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호텔 객실에서 어떤 부분이 불편할지 찾아내는 능력만큼은 인간이 AI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에서 판매되는 디저트 세트 '아라비안 나이트'. 김나연 기자
16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풀만호텔에서 만난 조 대표는 자신이 기획한 디저트 세트 '아라비안 나이트'를 내주며 디테일의 차이를 설명했다. "아랍 커피는 진하고 건더기가 있는데, 한국인 취향을 고려해 건더기를 뺐고, 한국 커피와 블렌딩했어요. 대추야자 씨는 손님이 모르고 씹을 수 있으니 제거하고 대신 견과류로 채웠습니다. 카이막 크림은 원래 단단한 쿠키에 샌드했는데, 씹으면 크림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쿠키를 빵으로 바꿔 질감을 맞췄어요."
조 대표는 호텔의 디테일이 경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는 신라호텔에 재직하던 2013년 '미니바 회의'에서 찍은 사진을 아직도 휴대폰에 간직하고 있다. 새로 설치할 미니바 샘플 앞에 대표가 웅크리고 앉아 미니바의 소음과 조명, 높이, 문이 열리는 각도 등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오전 1시 10분에 찍은 사진이에요. 대표님은 2시간을 이렇게 앉아 계셨어요. 미니바 하나를 만들 때에도 그만큼 고민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편할지를." 호텔의 품질을 위한 고민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조 대표의 또 다른 철학은 국내 호텔의 핵심은 식음료(F&B) 부문이라는 것이다. "객실 투숙객은 외국인이 70%지만, F&B 업장을 이용하는 손님 99%는 내국인이에요. 이 고객들에게 '고급 호텔'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은 레스토랑의 고급화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직원 개인을 적극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은 후덕죽 셰프가 이끄는 중식당 호빈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후 셰프는 지난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사실 내성적인 후 셰프는 처음 흑백요리사 섭외가 들어왔을 때 "지면 창피할 것"이라며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한다. 그를 끝까지 설득한 것은 조 대표였다.
"세 번째 만나러 간 날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죠. 툭 까놓고 얘기해서, 여경래 셰프가 유명합니까, 사부님이 유명합니까. 후덕죽이라는 이름, 중식계에 남기고 가셔야 할 것 아닙니까." 여 셰프는 66세, 후 셰프는 77세. 제자뻘 셰프의 이름이 나오자 후 셰프는 멈칫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이튿날 돌아온 대답은 "한번 나가보겠다". 자존심을 자극한 조 대표의 전략이 통한 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알리는 데에 자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조 대표의 지론도 들어맞았다. 그는 "호빈 매출은 방송 출연 전후로 2배 이상 늘었다"고 웃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서 후덕죽(오른쪽) 셰프가 함께 대결을 펼친 후배 요리사를 안아주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식당부터 청소까지 호텔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고민하지만, 그는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조 대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발빠르게 출시하고, 완벽을 향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 디테일리즘"이라고 설명했다. 완벽한 것만 고집하면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어렵다. 조 대표는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격려하면서 발전시킬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고 한다. 언제든 새로운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 대표는 "다시 태어나면 호텔리어는 하기 싫다. 너무 힘들다"고 웃었다. 서비스업 특성상 감정노동의 강도가 높고, 평생을 을(乙)로 살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조 대표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완벽을 향해 다듬어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는 "다시 태어나면 셰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일이잖아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혁신과 변화의 주체는 사람이에요. 소스 하나만 바꿔도 메뉴가 바뀌는 셰프의 세계처럼, 창의적인 일은 매력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