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의 회고록 《내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진정한 역사는 시대의 풍파를 맨몸으로 견딘 목격자들의 상처투성이 취재수첩 속에서 숨 쉰다. 자유당 독재 시절부터 4·19 혁명, 5·16 쿠데타, 유신 체제와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변곡점마다 기자로서 현장을 지켰던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그의 회고록 《내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는 개인사를 넘어 우리 현대사의 잃어버린 퍼즐을 맞추는 기록에 가깝다. 신문 대장을 들고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으러 다녔던 젊은 기자는 어느덧 원로 언론인이 되어 지난 60여 년의 세월을 담담히, 그러나 뜨겁게 술회한다.
내 도전은멈추지 않는다┃심상기 지음┃서울문화사 펴냄┃460쪽┃1만6500원
취재수첩에 담긴 '날것의 진실'
책에는 '날것의 진실'이 그대로 담겼다.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방북 비화부터 신군부의 서슬 퍼런 언론 통제까지, 예민한 역사적 장면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혼란의 역사를 신문 지면에 온전히 담아낼 수 없어 취재수첩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시대. 구속과 해직의 공포 앞에서도 진실을 추구해야 했던 기자의 고뇌는 빛바랜 흑백사진을 컬러 영상으로 복원하듯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중앙일보 편집국장 시절의 기록이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거대 자본의 압력에 동시에 노출돼 있던 시절, 저자는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려놓지 않았다. 기사 방향을 바꾸라는 외부의 요구와 회유가 이어질 때마다 그는 편집권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결국 자신의 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으로 이어졌지만, 그는 그 결정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 회고록의 진정한 울림은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실패의 기록에서 나온다. 대개의 자서전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데 그치는 것과 달리, 저자는 정치부 기자 시절의 쓰라린 낙종 경험, 일요신문 정간 처분, 막대한 손실을 남긴 학습지 사업의 실패까지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실패를 해봐야 성공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 한마디는 그의 인생 철학을 관통한다. 정권의 압력에 의해 펜을 꺾고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경영인으로 변신한 그는 《우먼센스》와 《아이큐 점프》를 성공시키고, 일요신문과 시사저널을 되살리며 맨땅에서 서울미디어그룹을 일궈냈다.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근성'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인간적 성찰도 인상적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서와 포용'을 회고하는 대목은 삶과 사람을 대하는 깊고 넓은 시선을 짐작하게 한다. 자신을 탄압했던 세력마저 품어 안았던 정치 거목의 정신은, 취재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을 이들에게 사죄를 구하는 저자의 엄격한 자기 성찰과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오늘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를 비롯해 여러 난관에 부닥친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이기도 하다.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60여 년 언론 외길을 걸어온 노기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내보이며 위로를 건넨다. 좌절은 끝이 아닌 전환점이며, 실패는 또 다른 출발선일 뿐이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묵직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도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도전을 멈추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넘어짐이 두려워 뛰어나가기를 주저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