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3> 중국 병마용갱
- 1974년 발견된 진시황의 유산
- 얼굴 다 다른 8000개 병사 모형
- 영원을 꿈꾼 황제 사후까지 호위
- 병마용갱 만들 만큼 엄청난 권력
- 역설적으로 후계 공백·약화 초래
중국의 백 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 천 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 삼천 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옛 장안)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한 시안은 인류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로, 중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도(古都)다. 1974년, 이곳에서 한 농부의 우연한 발견은 ‘장안의 화제’를 넘어 ‘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거대한 문명, 바로 20세기 최고의 발굴로 꼽히는 병마용갱(兵馬俑坑, 흙으로 빚은 병사와 말 등의 모형이 있는 갱도) 이다.
중국 시안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병마용갱. 진시황제의 사후 세계를 지킨 흙으로 빚은 수천 명의 병사와 전차, 말 등이 가득 채워져 있다.
▮진시황제 사후 지킨 수천 호위무사
살면서 단 한 명의 호위무사만 곁에 있어도 든든한데, 살아서도 죽어서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수를 거느리다니. 놀랍게도 시안에서 발견된 병마용은 진시황제의 사후 세계를 2000년 넘도록 지켜온 거대한 호위군이었다. 그 규모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갱도 안으로 들어선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진시황제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1·2·3호 갱도에서 발굴된 것은 병사 약 8000점, 전차 130기, 말 520점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 흙 속에 묻혀 있는 병마용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발굴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전체 규모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하니,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대륙이여~’라고 외쳤던 말이 실감 났다.
병마용갱 안의 병사. 흙으로 빚었지만 위엄 있는 표정과 정교한 갑옷 등이 생생하다.
대열 속 병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장대한 체격에 얼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 모습이 제각각인 것으로 보아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평균 키가 180㎝에 달한다고 하는데, 지금 기준으로도 큰 편이다. 실제 병사들이 그렇게 컸을 리는 없으니,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실제보다 크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모형의 위엄이 얼마나 강렬한지,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병사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경계 태세를 갖출 정도다. 무엇보다도 긴 세월 흙 속에 잠들어 있다가 방금 깨어난 병사들답게,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여전히 호령할 듯한 기세가 느껴진다. 누군가 명령만 내린다면, 당장이라도 일제히 걸어 나올 것 같은 긴장감마저 감도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일부 병사들에는 아직 채색의 흔적도 남아 있다. 본래는 실제 인물처럼 정교하게 채색되어 있었으나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며 외부 공기와 접촉하자 바래진 것이었다. 만약 색까지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두려워 감히 눈길조차 줄 수 있었을까.
병마용갱에는 실제 사람 같은 병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하와 궁중의 광대 등 궁궐 속 다양한 인물들의 모형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더 나아가 실물 크기의 청동 마차와 진시황이 길렀던 말, 정교하게 제작된 갑옷과 투구까지 발굴되었으니, 지하에 전투 세계는 물론 궁중 생활까지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말문이 막힌다.
발굴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연구 결과도 속속히 발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병마용 조각상의 팔이 쉽게 부러지는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몸통과 팔을 함께 빚은 것이 아니라 따로 제작한 뒤 접착하는 조립식 방식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병마 조각상에 남아 있는 지문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를 제작한 도공의 나이가 약 14세에서 16세 사이였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장교가 들고 있는 칼은 일반 병사의 것보다 길었고, 머리 모양과 갑옷의 형태 역시 계급과 역할에 따라 달리 제작되었다. 병사들의 배치 또한 엄격한 규칙을 따르고 있어 당시 군사 조직과 권위 체계를 이곳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병마용갱이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진시황릉의 위치와 규모, 건설 기간, 동원된 인부 수, 구조와 매장된 내용, 그리고 수많은 순장 사실까지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기’는 진시황릉이 완공된 후 약 한 세기가 지나 저술된 것이므로, 사마천이 황릉 내부를 직접 보고 기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할 때, 진나라가 멸망한 뒤 유방이 보관하고 있던 진나라의 문서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참고문헌은 필요하기 마련이고, 사마천 역시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했다면 신뢰성을 크게 의심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증거들이 일부 그의 기록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영원을 꿈꾼 황제, 흙으로 돌아가다
진시황제는 왜 호위무사들을 사후에도 곁에 두려 했던 것일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신앙 때문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죽지 않는다고 믿었으니, 영원히 권력과 생명을 이어가려는 욕망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그가 생전에도 불로초를 찾고 장생(長生)을 열망했다는 것은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로 자리 잡으며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제주도 정방폭포에는 ‘서불과차 (徐市過此)’라는 글씨가 남아 있는데, 이는 불로초를 찾기 위해 ‘서불’이 제주까지 왔던 흔적이라고 전해질 정도다. 다만 불로초 때문이 아니라 해외 시찰을 위해 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럼에도 진시황제의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영원한 삶을 꿈꾸던 진시황제는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장거리 시찰 중 과로 때문이라는 설과, 매일 수은을 복용한 탓에 간이 손상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과중한 업무와 장생에 대한 집착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불러왔을 것이다. 고대든 현대든, 만병의 근원은 결국 스트레스가 아니겠는가.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세는 십 년을 넘기지 못하고, 활짝 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하는데, 병으로 생을 마친 진시황,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해지는 권력의 추락은 겪지 않았으니 그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시황제가 사망한 뒤, 불과 몇 년 만에 그토록 강성하던 진나라는 기원전 206년 항우에게 멸망했다. 창업(創業)도 쉽지 않지만, 수성(守成)은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진시황제가 마련한 제도들은 이후 2000년 동안 중국 왕조들의 기본 틀이 되었고, ‘China’라는 이름도 진(Chin)에서 기원한 것이니,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력한 토대를 세웠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웠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말해 뭐하겠는가.
물론 창업자 진시황제로 인해 오히려 수성(守成)에 실패한 면도 있다. 진시황제의 무덤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병마용갱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지나치게 무덤에 힘을 쏟아부었다. 중국의 다른 왕들은 진시황제처럼 무덤을 지을 능력이 없었을까. 아니다. 병마용갱 규모로 건축하려면 엄청난 국가 예산은 물론 엄청난 시간까지 필요하다. 근접 국가들과의 전쟁으로 늘 긴장감에 있는 상황에서 그런 무덤의 건설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그리고 병마용갱을 건설할 만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권력을 어떻게 쓰는지 알지도 못한 다음 세대는 권력다툼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진나라는 무너지고 말았다. 권력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좋은 예다.
진시황제의 권력과 욕망이 빚어낸 병마용갱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인류문명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이를 역사의 아이러니라 해야 할까. 그러나 그가 찰나 같은 생이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였다면, 결코 가질 수 없는 불멸(不滅)에 매달려 단 한 번뿐인 귀한 시간을 공포 속에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병마용갱을 나오며 그런 생각이 스치자, 같은 인간으로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었던 것도 같다. 인생무상(人生無常), 권력무상(權力無常). 삶도 권력도 모두 덧없는데, 가진 것에 행복해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불행을 느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 ‘한국유적지기행’ ‘아시아유적지기행’ 저자, 유적지기행작가